아줌마가 독하다고?
아줌마가 독하다고?
  • 이현주 기자
  • 승인 2007.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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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어달리기'가 보여주는 2007년의 여성 노동자

 

▲ ⓒ 김창기 기자 ckkim@laborplus.co.kr

 

“애가 눈에 안 밟혀? 아줌마 독하다!”
“너도 좀 떽떽거리지만 말고 나긋나긋 해봐라.”
“신랑 밥은 차려주고 나왔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었나요?
이 사회에 만연한 노동현장에서의 여성차별에 대해 일침을 가하는 만화 ‘이어달리기’가 나왔다.
“변화까지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성차별의 심각성과 여성의 일이 본인의 생계, 그리고 사회적 가치 실현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사회가 인식하는 것만 해도 큰 성과라고 봐요.”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최상림 대표는 ‘이어달리기’는 여성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화두를 던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여성의 노동현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의 화두던지기는 사람들의 호응을 불러왔다. ‘이어달리기’ 만화 출간과 6일 동안의 전시회는 여성에게는 공감대 형성과 위로를 주었고, 남성에게는 문제에 대해 자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어달리기’ 블로그(http://blog.naver.com/womenrun)에는 네티즌들의 여성노동자 현실에 대하여 깨달았다는 감상후기가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 배진경 기획국장은 “‘이어달리기’라는 제목은 어머니의 노동현실이 세월이 지나 딸에게 그대로 이어지는 현실을 꼬집었죠. 알고 보면 세월이 지났어도 여성의 노동현실이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겁니다.”라고 독자들의 반응을 설명했다.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의 반응도 네티즌과 별반 다르지 않다.  
“전시회 기간 중 기억에 남는 커플이 있어요. 아주 다정하게 손을 잡고 관람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군대에 대한 경력인정문제로 심각하게 대화를 하면서, 남성은 여성이 직장에서 차별 받으며 일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여성은 남성이 우리 사회가 매우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놀라워하더군요. 처음에 싸우던 커플은 한참 의견을 주고받더니 서로의 경험을 이해하려 애쓰며 현실에 대한 인식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죠.”
배진경 기획국장은 전시회에서 일화를 말하며 조금씩이라도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이어달리기’의 진정한 가치라고 했다.

 

성차별을 없애는 것은 너와 나의 힘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이어달리기’의 힘은 ‘평등의 전화’의 상담 내용을 종합한 주제선정과 철저한 현장 취재로 생생한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담아낸 것에 있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2년의 기간이 걸렸지만, 그 속엔 수십여 년의 여성노동자의 목소리가 담겼다.
그러나 ‘이어달리기’가 현실을 가감 없이 반영했다 해도, 그것은 단지 대표적인 한 예일 뿐이다. 어머니, 딸, 누이 등 여성이 사회에서 겪는 성차별로 인한 고통은 매우 다양하고, 교묘해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기도 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추궁하여 제2, 제3의 심적 고통을 주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 내에서 성희롱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해도 “조용히 일이나 하라”고 다그치는 사회분위기는, 남녀의 성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이고 또한 사회를 존재하게 하는 원리원칙의 문제이기에 이것을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지 않을까.
“여성의 길고 험난한 노동 역사에 비해 이제야 겨우 한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이 사회가 얼마나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등한시해왔는지 알 수 있는 반증이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이어달리기’가 이 사회의 여성노동에 대한 새로운 가치창조의 시발점으로 자리 잡기 위해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는 꾸준한 홍보활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를 이용한 여성노동자의 현실 알리기 사업은 이후로도 계속할 겁니다.” 배진경 기획국장의 말처럼 늦은 감이 있지만 갈 길이 멀기에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번 ‘이어달리기’에는 여성장애인, 이주여성 노동문제 등이 다뤄지지 않아 아쉬운 만큼, 한 발 더 내딛는 내일을 기약한다.

  

 

INTERVIEW

이어달리기’가 만들어진 과정과 후일담 등을 살짝 들여다보자. 기획에 참여한 만화작가 9명 중 4명과 ‘이어달리기’ 인터뷰를 해봤다.

 

‘몸살’의 원혜진 작가

투박하기에 더욱 끈끈하게 다가오는 우리 어머니들의 삶
‘이어달리기’를 접하기 전에도 사회문제를 다루는 활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전에 ‘푸른학교’라는 공부방에서 선생님으로 2년 정도 있을 때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됐죠.
처음엔 겁도 났습니다. 여성노동자분들께 오히려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심리적 중압감, 다른 분들을 대표해서 펜을 들었다는 생각에 사회적 책무감도 느꼈습니다. 또 작품이 완성되고 나서는 짧은 페이지 안에 어머니들의 고된 삶, 노조결성과정 담아내기에 부족하지 않나. 너무 무겁지 않았나. 이야기가 원론적으로 흐르지 않았을까. 아쉬운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참동안 책을 읽은 분들에게 감상을 묻지 못 했지만, 주위에서 이 책을 읽고 여성노동과 노동조합활동에 대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하였다는 감상 평을 듣고 기획에 참여하기를 잘했다고 확신했습니다.


‘저 아이 가졌어요!’의 정광숙 작가

작가의 경험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직장맘의 육아전쟁을 유쾌하게 그린 이야기
여성노동자라면 어머니가 된다는 가능성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저 역시 엄마입니다. 이 땅의 여성노동자라면 누구나 안고 있을 육아문제를 저도 겪었습니다. 육아문제 다루는 4컷 만화를 연재하면서 17개월 된 아이를 놀이방에 맞기고 출근했죠. 이 때 아이가 놀이방 적응을 못하고 몹시 심하게 아팠어요. 그래서 사무실 출근은 포기하고 집에서 야간작업을 했습니다. 임신과 육아문제를 선택했던 것은 제게 현실이었고 따로 취재랄 것도 없어요. 제 나이또래가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당사자들이라 늘 듣는 이야기였으며 대화의 주제였으니까요. 남성분들의 적극적인 관심은 이끌어내지 못한 듯해서 아쉬운 것도 있었지만, 여성노동자 문제를 다룬다는 기획자체가 뜻 깊고, 참신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호응도 있었고, 차츰 이러한 활동들의 파급효과가 사회적 변화로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엄마의 사회생활로 인한 아이의 정서발달 문제 다뤄보고 싶습니다. 직장여성 대부분이 출산휴가는 쓰지만 동료들 눈치에 육아휴가는 쓰지 못합니다. 이로 인하여 애착관계를 맺지 못한 아기는 정서발달에 영향을 받게 되는데, 상담을 받아서 개선이 되기도 하지만 그 시기를 놓쳐 안타까운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런 뜻 깊은 기획을 자주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나는 사랑으로 달린다’ 의 문흥미 작가

KTX 여승무원의 실상과 마음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는 가족들의 안타까움
제가 제일 늦게 ‘KTX 비정규직 여성승무원’건을 의뢰받고 ‘이어달리기’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KTX 비정규직 여성승무원’에 대해서 언론보도 이상은 모르고 있다 자료를 받아서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죠. 단지 ‘KTX 비정규직 여성승무원’문제가 아니라 전체 비정규직,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말입니다. 시위현장에 함께 하지 못 했지만 그들의 심정을 공감합니다. 저는 만화가로 프리랜서이지만, 한 명의 여성노동자이기도 하니까요. 어떤 분야이든 여성노동자들의 권리와 능력을 위한 사회적인 문제들은 진지하게 해결되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가정이나 직장에서의 인식변화로 말이죠. 현실적인 대안이란 제 입장에선 어려운 얘기지만, '이해'라는 게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여성분들, 모두 함께 분발하시길!


‘난 싱글맘’의 장차현실 작가

혼자라도 괜찮다는 싱글맘의 홀로서기 담백하게 담아내
‘이어달리기’ 기획을 처음부터 함께 하면서 싱글맘으로 살았던 10년의 경험 살리고 싶어서 주제를 선택했습니다. 돌쟁이 아이 돌보면서 만화그리기 힘겨웠던 점만 빼면 특수고용직 싱글맘 취재를 하면서 새로운 경험도 했고 즐거웠어요. 그런데 책이 나오고 나서 보니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성노동자의 문제가 다 닮아 있었습니다. 어느 한 분야의 개인의 노력으론 힘들고 사회구성체 모두가 함께 나서서 움직여야 합니다. 우리의 딸들이 좀더 나은 노동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양육과 집안일, 직장 일을 같이 하면서 많은 여성분들이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여성임을 포기하게 되는데, 스스로를 가꾸는 노력을 포기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럴 수 있도록 기업, 사회, 가정이 함께 하는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