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슬아슬 24시간 ‘경비원은 괴로워’
아슬아슬 24시간 ‘경비원은 괴로워’
  • 정유경 기자
  • 승인 2007.02.05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시간 노동·저임금보다 더 서러운 건 입주민들의 냉대와 무관심

▲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군인이 나라를 지켜서 밤에 편히 잠을 잔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일터에 가고 학교에 갈때 마음 편히 아파트를 비울 수 있는 것은 24시간 근무 중인 경비원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서 몇 백 세대 집단속을 하는 경비원의 하루는 바람 잘 날이 없다. ‘혹시 자리를 비우면 도둑이 들지 않을까’ 화장실 한 번 마음 놓고 못가고,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주차문제로 주민들의 강력한 항의에 몸둘 바를 모르게 된다. 더구나 올해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제로 인해 곳곳에서 들리는 해고 소식과 입주자들과의 관리비 갈등으로 주름살은 하나 더 늘었다.

 

혼자라서 더 서러워
최저임금을 바라보는 경비원의 시선은 아파트 사정에 따라 각각 다르다. 기반이 튼튼한 건설회사의 넓은 평수 아파트 경비원에게 최저임금 보장 소식은 관심 밖의 이야기다. 이미 오래전부터 최저임금보다 높은 임금을 받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보통 월 50~90만원을 받는 작은 규모나 서민아파트 경비원들에게는 100만원이 넘는 그들의 월급은 꿈 같은 이야기다. 몇십만원의 월급으로 생활하고 있는 서민아파트 경비원에게 밥을 사먹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거나 지하의 작은 주방에서 직접 밥을 해먹는다. 그래도 3~4명이 함께 근무하는 경비실은 상황이 나은 편. 동에 하나씩 경비실이 붙어있는 경우에는 자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세끼를 꼬박 혼자서 밥을 먹는다. “의자를 놓고 둘이 앉기도 좁은 경비실에서 라디오를 들으며 밥을 먹을 땐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고 말한다.

“밥 먹을 때라도 여럿이 먹으면 좋으련만 관리사무실에서는 그것도 용납을 안 해요. 돈도 조금 줘, 그렇다고 이야기 할 동료도 없어, 밥도 혼자 먹어. 무슨 재미가 있어야 일을 하지. 저쪽 큰 아파트는 돈도 돈이지만 오순도순 밥도 같이 먹고 일도 같이 하더라고. 일 할 맛이 나겠지, 아마.”

 

재활용과 택배는 ‘경비원의 적’
그나마 동료와 잠깐이나마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쓰레기장이나 분리수거장이다. 원래는 아파트 부녀회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경비원이 떠맡게 됐다. 도와주지 않으려면 방해는 하지 않아야 할 텐데 어젯밤에 깨끗이 정리했다던 분리수거장은 그야말로 가관이다.

플라스틱 병 자루에는 우유팩이, 유리병 자루에는 쓰다만 식용유 병이 들어있고, 터진 음식쓰레기봉투가 분리수거장 앞에 버젓이 놓여있다. 그걸 본 경비원은 새삼스런 일이 아닌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치우기 시작한다. “그래도 겨울은 좀 나아요. 여름에는 땀이 뻘뻘 나는데도 고약한 음식쓰레기 냄새 때문에 마스크 쓰고 치운다니까.”

▲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할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순찰과 주차 정리는 기본 임무이고 주변 청소, 겨울에는 눈 쓸고, 여름에는 화단에 잡초를 뽑는 일도 경비원의 몫이다. 뿐만이 아니라 인터넷쇼핑과 홈쇼핑이 생활화 되면서 택배를 받아주는 일도 당연시 됐다. 처음엔 택배 받아주는 것쯤이야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머리가 지끈거리는 골칫덩어리가 돼버렸다.

“택배 받아 주는 것은 괜찮아. 택배원하고 잠깐 이야기라도 하니까. 그런데 경비실로 찾으러 오지 않으면 가져가라고 인터폰하고 직접 갖다 주기도 해. 어차피 잃어버리면 내 책임이니까.”

“일한 지 두 달 됐을 땐데 잠시 경비실 비운 사이에 누가 택배물을 들고 가버린 거야. 알고 보니 30만원짜리 디지털 카메라래. 경비실 단속 못한 내 잘못이라 30만원 물어줬지. 월급이 80만원인데 말야. 그 이후로 나갈 때는 꼭 문을 잠그고 다녀”라며 짓는 웃음이 허탈해 보였다.

 

최저임금보장은 말로만? 일자리 잃을까 더 걱정
경비원들의 현실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이를 해결하고자 최근 최저임금제가 도입됐다. 그러자 최저임금제보다 적은 임금을 지급했던 아파트 입주자들과 관리사무소는 부랴부랴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경비원에게 주는 임금이 늘어나면 관리비도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다.

부담은 되지만 어쩔 수 없이 순순히 바뀐 법을 따른 아파트도 있지만 관리비를 올릴 수 없다는 주민들도 상당히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관리비를 올리지 않고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방법이 모색됐다. 그 방법은 크게 2가지로, 경비원을 해고해서 인원을 줄이는 방법과 휴게시간을 늘려서 근무시간을 줄이는 방법이다.

언뜻 봐도 예순은 훌쩍 넘어 보이는 아파트 경비 경력 5년째인 김모 씨는 “100% 시행도 아니고 70%만 시행해서 더 손해를 보고 있어요. 1월부터 근무시간에 포함되어 있던 저녁 먹을 1시간과 새벽 순찰 후의 3시간이 휴게시간으로 바뀌어 버렸거든요. 도와주려면 확실히 도와주지 괜한 기대만 갖게 했어요”라며 울분을 삼켰다.

그는 또 “그래도 우리는 그나마 나은 편이죠. 이 근방 S아파트는 벌써 3명이 그만 두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나이 먹은 우리들도 해고될까봐 불안하긴 마찬가지죠. 최소인원이라고는 하지만 내년에 80%로 적용되면 또 모를 일이에요”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 자체적으로 관리하는 경비원과 용역업체 소속의 경비원의 사정도 차이가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나는 용역업체 소속이어서 더 걱정이 지. 용역업체는 아무래도 주민들과 관리소장의 소리에 벌벌 떨거든. 관리비 못 올린다고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나가라고만 하지 않으면 말이야”라며 저임금보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를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형편이다.

 

주민들과 따뜻한 인사 주고받는 게 작은 바람
최저임금 적용 이후 관리비 때문에 등을 돌린 주민들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섭섭할 때가 있다. 바로 경비원을 인격적으로 무시할 때다.
“한번은 담배꽁초를 줍고 있는데 위에서 뭐가 떨어지는 거야. 자세히 보니 담배꽁초더라고. 위를 보니 2층에서 내 손자뻘 되는 학생이 담배꽁초를 버린 거야. 내가 꽁초 줍는 것이 뻔히 보였을 텐데. 정말 기분이 상하더라고. 그래도 참았지 별 수 있어? 밥 먹고 살려면.”

정이 담긴 따뜻한 인사는 아니더라도 눈이 마주치면 외면해 버리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다. 늘 마주치는 데도 택배 찾으러 올 때가 아니면 무시를 하는 주민들 때문에 더 마음이 상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나 같아도 요즘 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 관리비 올려달라고 하면 싫을 거야. 하지만 어떻게 하나. 300세대가 경비원 한 명을 먹여 살리는 데 도와줘야지. 내가 300세대를 살릴 수는 없지” 라고 주민들이 입장을 이해하는 경비원의 모습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묵묵히 일해 온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아파트에서 마침 한 경비원이 급여명세서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총 지급액 80만원 남짓 되는 금액이 적힌 명세서를 들여다보고 있는 얼굴표정이 밝다.

▲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최저임금이 적용돼도 휴게시간이 늘어나 급여 차이는 얼마 없어요. 그래도 주민들이 힘들게 벌어서 준 돈인데 고맙게 받아야죠.”

대부분 나이 50이 넘어서 시작한 직업이지만 경비원들은 첫 직장처럼 생각하고 오늘도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하고 있다. 일할 때만큼은 최저임금제로 상한 마음도 다 잊고 친절하게 주민 한사람 한사람을 대하려고 애쓴다.

남들은 아무나 할 수 있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들에게는 오랜 시간 쌓아온 노하우가 있고 경비직에 대한 신념도 있다.

경비원들은 오늘도 내일 새벽까지 꼬박 밤을 새야 한다. 그러나 내일 교대까지 아무 일 없이 무사히 넘어간다면, 그것이 지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