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日也放聲大哭
是日也放聲大哭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7.04.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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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하승립
기어이, 정말 기어이 한미 FTA 협상이 체결되고 말았습니다. 국회 비준이라는 절차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정부는 어떤 형태로든 비준 동의를 이끌어낼 태세입니다. <참여와혁신> 4월호 인쇄에 들어가기 직전에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져 왔습니다. 그리하여 원래 들어갈 예정이었던 편집장 칼럼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이렇게 다시 글을 씁니다.

 

정부는 협상 시작 이래 14개월 동안 꾸준히 한미 FTA가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변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근거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급하게 만들어진 보고서는 곳곳에서 허점을 보였고, 한미 FTA 협상 체결이 한국 경제에 치명상을 입힐 것이라는 연구와 보고는 무시됐습니다.

 

마치 정부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령’에 홀린 듯, 오로지 한미 FTA만이 살 길이라며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했습니다. 백번 양보해 정부의 주장대로 그렇게 중요한 협상이라고 칩시다. 그렇다면 국가 경제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협상을 이렇게 서둘러야 할까요?

 

미국의 각종 기관들은 이미 한미 FTA 체결시 자국에 엄청난 이익이 올 것이라는 보고서들을 속속 내놓은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협상이 늦어지더라도 목을 맬 쪽은 미국 아니던가요. 우리가 급한 일이라면 서둘러야겠지만 상대방이 하겠다는 일에 장단을 맞추며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려간 이유가 대체 뭘까요.

 

이 협상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갈 여지가 만에 하나라도 있다면 시간을 끌면서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될 일이었습니다. 전략도 전문가도, 명확한 분석도 없는 협상이 이렇게 끝이 나고야 말았습니다. 

 

이 협상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외치던 사람들의 주장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렇다 할지라도 허겁지겁 달려온 협상의 과정만은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흐른 다음에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일이 없도록 국회 비준 과정에라도 제대로 신중하게 검토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제발!

 

1905년 11월 20일, 장지연 선생은 ‘시일야방성대곡’이라며 통탄했습니다. 다시는 되풀이하기 싫은 역사입니다.

 

…… 아, 4천년의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남에게 들어 바치고, 2천만 생령들로 하여금 남의 노예되게 하였으니, 저 개돼지보다 못한 외무대신 박제순과 각 대신들이야 깊이 꾸짖을 것도 없다 하지만 명색이 참정대신이란 자는 정부의 수석임에도 단지 부(否)자로써 책임을 면하여 이름거리나 장만하려 했더라 말이냐.

김청음처럼 통곡하여 문서를 찢지도 못했고, 정동계처럼 배를 가르지도 못해 그저 살아남고자 했으니 그 무슨 면목으로 강경하신 황제 폐하를 뵈올 것이며, 그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와 얼굴을 맞댈 것인가.

…… 아! 원통한지고, 아! 분한지고. 우리 2천만 동포여, 노예된 동포여! 살았는가, 죽었는가? 단군. 기자 이래 4천년 국민정신이 하룻밤 사이에 홀연 망하고 말 것인가.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