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의 보이지 않는 위력 '돈'
자본의 보이지 않는 위력 '돈'
  • 최영순
  • 승인 2007.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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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의 폭력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

최영순
한국고용정보원 선임연구원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선뜻 돈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을 속물로 취급할지 모르지만 사실 돈의 중요성은 우리의 삶이 팍팍해 질수록 더 절실해집니다.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벅참을 느끼기도 하고 돈 때문에 가슴아파하거나 절망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자본주의에서 돈의 가치와 위력은 상상 그 이상입니다. 가난과 부를 가르는 잣대가 되기도 하지만 열심히 노력한 성공의 대가로 당당히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돈’ 이야기

돈과 관련한, 돈이 모티브를 제공하는 영화적 줄거리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합니다. 돈을 쫓는 이들의 허황된 꿈을 풍자하는 영화에서부터 액션이 난무하는 영화까지 장르 역시 다양하지요. 

 

하지만 항상 우리 곁에서 우리를 통제하는 돈의 보이지 않는 위력을 세밀하게 그린 영화를 찾기는 드뭅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거장 감독인 로메르 브레송 감독의 유작인 <돈>은 돈이 가지는 폭력성 앞에서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인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영화는 1983년에 제작된 영화이고, 더군다나 프랑스 영화의 특성상 국내에 그리 많이 알려진 영화는 아니지만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방영돼 뒤늦게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 <돈> (로메르 브레송 감독, 1983)


위조지폐에 얽힌 한 남자의 기구한 운명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일련의 영화들이 그러하듯 이 영화 역시 사소한 일상에서 출발합니다.

 

중산층 가정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노베르는 용돈이 부족하여 500프랑 위조지폐를 장난삼아 만들게 되고 친구들과 함께 가게에 가서 이 지폐를 사용합니다. 가게 주인은 나중에 위조지폐임을 알게 되지만 석유배달원인 이본에게 다시 이 돈을 지불합니다.

 

위조지폐범으로 궁지에 몰린 이본은 결국 재판에까지 가서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지만 가게 종업원의 위증으로 패소하게 되고 감옥에 갇힙니다. 그동안 이본은 일자리를 잃고, 딸과 아내가 떠나는 등 그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가 버립니다. 절망에 빠진 이본은 설상가상 살인을 저지른 후 피신을 하게 되는데 그 집의 일가족을 살해한 후 자수하는 것을 끝으로 영화는 다소 엉뚱하리만큼 성급하게 마무리가 됩니다.

 

‘돈은 살아 있는 신이고, 나는 그를 위해 경배한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이 영화에서 돈은 철저히 신격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본은 후에 자신의 의지대로 강탈, 살인을 저지르는 등의 행동을 통해 돈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인가를 추구하려고 했지만 결국 자본주의에서 신으로 군림하는 돈 앞에서 더욱 나약해질 뿐입니다.

 

영화에서 돈을 건네고 다루는 사람들의 손놀림을 클로즈업하거나 사람들의 표정을 최대한 절제하여 표현함으로써 감독은 돈의 위력을 간접적으로 묘사하고자 하였습니다.

 

톨스토이의 중편소설인 <위조지폐>를 모티브로 하여 제작된 이 영화는 거장 감독이 남긴 수많은 영화 가운데 가장 명작으로 손꼽힌다고 하니 ‘돈’의 악마성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영화 속 이 직업>  위폐감식전문가
얼마 전 발행된 신권 지폐를 받기 위해 한국은행 앞에서 밤을 새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새 지폐는 크기가 작아졌을 뿐만 아니라 보다 정교한 위조방지요소들이 숨어 있어 위폐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조폐공사의 오목판인쇄를 그대로 따라한 지폐까지 등장하고 있어 위조의 기술도 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에는 10여명의 위폐감식전문가들이 한국조폐공사와 외환은행이 2곳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조폐공사의 위조방지센터에서는 국내화폐를, 외환은행에서는 외국화폐를 주로 감식하고 있으며 일반 금융기관에서는 이들 기관에 의뢰를 하거나 해외 위탁업체에 감식을 맡기기도 합니다.

위조지폐 여부는 일단 감식기에 의해 1차로 살펴 본 후 이들 전문가들이 육안으로 보거나 돋보기, 광학현미경 등을 이용하여 정밀하게 진위여부를 판단합니다. 이 과정에서 위폐감식전문가의 꼼꼼한 관찰력, 집중력, 세밀한 촉감 등이 필수적입니다.

위폐로 적발된 지폐는 한국은행으로 보고가 되는데 2005년 총 6360장의 위조지폐가 적발되어 매년 그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위폐감식전문가는 현재 별도의 양성과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조폐공사의 경우 기술직으로 채용되어 감식업무를 하고 있으며 외환은행의 경우 일반 업무 경험을 쌓은 후 능력을 인정받아 감식업무를 담당한다고 합니다.

주의력, 세밀함 등이 이들에게 요구되며 외국화폐의 경우 그 종류가 많고 변화주기가 짧아지고 있어 화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업무의 중요성에 맞게 전문가 양성도 늘어날 것 같지만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위변조 방지요소 이외에 공개되지 않은 보안사항들이 있어 위폐감식전문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며 새로운 전문인력양성에도 소극적이라고 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