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거들랑, 지거들랑, 지거들랑
지거들랑, 지거들랑, 지거들랑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7.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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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하승립
진해 도심에 온통 벚꽃이 흐드러졌었답니다. 쌍계사 지나 산수유마을에는 노란 산수유의 흔적만이 남았겠지요. 광양의 매화도 봄눈보다 아름다운 꽃잎이 지천에 널렸었을 겝니다. 제주의 유채도 봄을 자랑했을 테지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좋은 봄날, 그 아름다운 봄꽃들 한번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무에 그리 바쁜지 정신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어느새 봄을 잊고 말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 종일 ‘지거들랑’이란 단어가 입안에서 맴돕니다.

 

지거들랑, 지거들랑, 지거들랑…. 가만히 입안에서 곱씹다 보니 괜히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봄꽃이 지거들랑, 너무 아쉬워하지는 마십시오. 내년에도 또 꽃은 필 테니까요. 다만, 잠시나마 우리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던 그 봄꽃의 아름다움은 기억해야겠지요.


봄햇살이 지거들랑, 너무 우울해하지는 마십시오. 내일 또 햇살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다만, 봄햇살의 따사로움이 우리에게 불어넣었던 그 생기는 기억해야겠지요.


삶의 짐을 지거들랑, 너무 무거워하지는 마십시오. 짊어진 그 짐만큼 우리 걸음은 더 신중해질 테니까요. 다만, 그 짐이 내게 지워진 의미는 기억해야겠지요.

 

계절은 봄인데 들려오는 소식들은 봄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대학 구내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로 생떼 같은 목숨을 잃었다고 하고, 국내에서도 흉흉한 범죄 소식이 헤드라인을 장식합니다.


정부가 나서 자화자찬에 바쁜 한미 FTA가 장차 나라꼴을 어떻게 만들지 알 수 없는 상태고 서민들의 먹고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은 여전합니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벌써부터 대통령 선거를 겨냥한 편 가르기 외에는 관심이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박질에는 아군도 적군도 없는 물어뜯고 상처내기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로서는 그저 ‘참 국민 노릇 하기 힘들다’는 신세 한탄에 소주 한잔으로 봄날의 아쉬움을 달랠 밖에요.

 

참, 선거에만 목매달고 있는 정치인도 선거에서 지거들랑, 너무 가슴 아파하고 그러지 마십시오. 그리고 선거에 이겼다고 너무 우쭐해 하지도 마십시오. 그러기보다는 대체 왜 국민들이 왜 정치인들을 벌레 보듯 하는지, 국민들 마음에 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런지를 생각하는 게 훨씬 생산적이지 않을까요? 아, 물론 별 기대는 안 합니다만.

 

그래도 이거 하나는 기억하세요. 봄이 가고 여름을 지나 가을을 보내면 겨울이 오고, 그리고 나면 다시 다음해 봄이 오는 이치처럼 세상은 제자리걸음 하는 듯 해도 늘 그렇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