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살아있는 부정(父情)?부정(不正)?
이 시대의 살아있는 부정(父情)?부정(不正)?
  • 이승욱_심리학 박사
  • 승인 2007.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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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노릇 '우아하게' 하기 힘든 세상

이승욱 심리학 박사
납부타의 숲 상담클리닉 원장
한화 김승연 회장 폭력 사건을 다룬 뉴스를 보면 송강호씨가 출연한 <우아한 세계>라는 영화를 현실로 보는 것 같다. 신문과 뉴스를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해 주니 박진감마저 느낄 정도다.

영화에 나오는 조폭세계의 중간보스와 40대 중반의 가장으로 살아가는 주인공이 겪는 세상은 결코 우리가 사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주인공은 조폭이라는 직업 타이틀만 가지고 있을 뿐 그가 몸담고 있는 세계는 우리 같은 ‘민간인’들이 겪고 있는 세상의 메커니즘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폭 세계=우리 사회


우리 민간인들이 회사라는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처세하는가? 주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충성 다하기, 조직에서 낙오되지 않게 권모술수 마다하지 않기, 동료나 라이벌 뒤통수치기, 때로는 서슴없이 불법 저지르기, 봉투 찔러주고 사바사바하기, 내 뜻대로 안되면 힘과 욕설로 기선제압하기, 가정까지 포기 하면서 회사에 열정을 다 바치기 등 의 행동을 하며 조직생활을 한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일해도 결정적일 때는 결국 오너에게 냉정하게 정리해고, 다운사이징이라는 이름으로 잘리는 게 바로 조직이라는 곳이다.

 

이게 조폭들의 세상과 뭐가 다른가? 물론 한 가지 확실히 다른 점이 있긴 하다. 우리는 회칼을 쓰지 않는 다는 것.

 

하지만 기업들은 M&A라는 점잖은 이름으로 ‘조직 흡수’를 하고 필요할 때는 업무협정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연대(담합)’를 한다. 어디 그뿐인가? 광고를 통해 판촉‘전쟁’과 야구와 축구 등의 스포츠를 통해 ‘나와바리’를 정하고(요즘 대기업은 전국구다) 또는 요즘처럼 이렇게 가끔씩 ‘오야붕’이 나서서 직접 조무래기들을 손봐주는 쇼도 한다.

 

북창동 한화 ‘나와바리’에서 금쪽같은 자기 아들을 봉변 준 조무래기들을 제대로 손보지 않았는가. 그것도 ‘오야붕’께서 직접 나서 야구 방망이와 권총까지 허리춤에 차시고 나타나 한 ‘따까리’ 하셨다니 한국 대기업의 조폭적 생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큰 형님(대기업 오너)이 나타나시면 길거리에 죽 늘어서서 90도로 인사하면서 승용차 호위병으로 뛰어다니는 치들이 명문대 나온 대기업 엘리트 사원들이란다. 이게 한국의 조폭형 대기업 문화인데 우리 사회 어디에서 우아한 세계를 찾을 수 있을까.

▲ 영화 <우아한 세계>

 

김승연 회장이 욕을 먹는 '진짜' 이유


우아한 세계는 어디에도 없지만 우리는 우아하게 살고 싶다. 물론 불가능 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이번 일을 보고 ‘이 시대의 부정을 살리셨다’라는 한화 측의 멘트가 가슴을 때린다. 여기서 부정이란 父情인지 不正인지는 독자가 알아서 잘 판단하리라 생각한다. 부정축재, 불공정거래행위 그런 건 몰라도 ‘부정 살리기’는 제대로 한 것이 맞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나는 김승연 회장이 부럽다. 만약 내 아들이,금쪽같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내 아들이 어디서 얻어 맞고 와 얼굴이 찢어 졌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내게도 김승연 회장 같은 힘이 있고 조직 그리고 돈이 있다면 솔직히 말해 나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나라의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김승연 회장을 욕하는 것이 행위에도 잘못이 있지만 그가 가진 권력과 힘이 부러워서 그를 욕하는 것 같다. 

 

마치 “내겐 없는 것을 너는 가졌고, 그것이 사실은 나한테도 있으면 너무 좋겠고, 그래서 유사시에 언제든지 내 새끼들을 위해 그런 힘을 발휘하는 힘 있는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나는 그게 없는 데 너에게는 있나?”라는 부러움 섞인 절규를 듣는 것 같다.

 

그러니 제발 부탁이다. 이 나라에서 돈 있고 힘 있고 권력가진 아버지들은 제대로 살아 달라.

 

계급장 떼고 보면 우린 다 같은 아버지다. 힘없고 빽 없는 아버지들의 자식사랑이 김승연 회장의 그것보다 덜 할리 없다. 가진 사람들, 권력 있는 사람들이 먼저 제대로 살아 달라. 만약 김승연 회장이 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을 찾아가 “다 큰 놈이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새벽까지 술 퍼 마시고 돌아다니다가 시비가 붙은 모양인데 잘 때려 줬다. 앞으로 정신 차리고 살라고 나 대신 매 때린 것으로 생각하겠다. 고맙다.” 이렇게 말하고 돌아갔다고 가정해 보자. 아버지로서의 진정한 부정은 사회적 정의, 겸손, 교훈까지도 담고 있어야 함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자식 앞에서 애비는 항상 잘 나고 싶다. 그런데 돈도 있고 힘도 있으면서 조폭 기질도 많은 이 땅의 아버지들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 노릇하기도 힘들어 진다. 애비로서의 김승연 회장의 부정(父情)과 부정(不正), 김승연 회장한테 개 맞듯이 맞은 그 가해자이자 피해자의 아버지들의 애통함과 울분을 생각하면서 글을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