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 것인가? - What is to be D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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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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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정책 역량 갖추고 ‘현장’에서 다시 시작하자

선명성 경쟁→정책 전문성 경쟁

경제적 실리주의→사회적 연대

철학의 빈곤→미래 비전 제시

 

총연맹 지역본부의 임원 L씨는 요즘 착잡하다.

87년부터 노동운동의 중심에 있던 그다.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희망을 잃어본 적이 없다. 감옥에서도 절망에 잠겨 본 적이 없다. 더디 가도 제 갈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 믿음이 자주 흔들린다. 중앙 단위 회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언제나 무겁다. 이번 달의 회의는 지난 달 회의를 그대로 녹취해서 다시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논리로 공박을 계속하고,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만 맴돌고 있다.

돌파구가 안 보인다.

 

연맹 임원 P씨는 요즘 답답하다.

주변으로부터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진실하다는 평을 들어온 그다. 십 수년의 노동운동 경력에 훈장처럼 따라붙은 위장병에 허리통증까지 그의 성실함을 막지는 못했다. 누구보다도 먼저 출근해서 하루를 열고, 남들이 놓치는 작은 사업들까지도 꼼꼼하게 챙기면서도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요즘 들어 그는 출근하기가 두렵다. 사분오열 나뉜 사람들은 더 이상 ‘진실’을 믿지 않는다. 분파를 극복하자는,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가자는 주장도 또하나의 분파로 여기는 분위기다.

노동운동은 자꾸 뒷걸음질 치고 있다. 전환점이 보이지 않는다.

 

환경변화를 못 따라 가는 노동운동
노동운동의 위기는 이제는 하도 되뇌어져서 고루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러나 아직도 위기의 원인과 해법은 제대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노동운동을 ‘남의 일’로 여기고, 그보다 열 배나 되는 비조합원들은 기득권 집단 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L씨도, P씨도 노동운동이 ‘희망이어야’ 한다는 대명제는 놓지 않고 있다. 지금의 위기와 고통이 ‘성장통’이 되기 위해서는 진단과 해법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새로운 물꼬를 터야 한다.


L씨는 요즘 5년 후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단다. 종이호랑이로 전락해 버린 노동운동, ‘그들만의 리그’에서 조합원들의 경제적 이익만 챙기는 수준의 노동운동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노동운동이 그 ‘막다른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느낌이 L씨를 섬뜩하게 만든다.


내부적 위기 원인은 이미 분명하다. 비판을 수용하지 않는 폐쇄성, 민주주의 없는 민주 조직, 전투주의적 외형과 경제적 실리주의의 부조화, 노동운동이 사라져 버린 계파중심주의가 바로 ‘내부의 적’이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문제는 노동운동이 외부 환경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운동의 방향성 상실을 동반한다. 길 잃은 노동운동은 곧 고립을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지금,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

 

정치적 변화 - 지방분권화

우리 사회는 개발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효율성과 강력한 지도력을 위한 중앙집권 방식에 익숙하다. 그러나 이제 시대의 흐름은 지방분권에 있다. 정부부터 우선 지방분권을 통한 지역 균형 발전을 국정 목표로 삼고 있다.


노동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오히려 중앙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비효율적이다. 산업이 지역을 중심으로 편재되어 있고, 각 지역의 산업적 특성에 따라 노동시장도 달리 형성된다. 포항은 철강, 울산은 자동차, 화학, 경주는 자동차부품, 창원은 기계, 여수는 화학, 구미는 화섬, 전자 등과 같이 지역적 특성이 분명해 지고 있다.


따라서 교육훈련이나 취업, 산업공동화 문제 등도 지역에서 해법을 찾아 나가야 한다. 이같은 명제는 더 이상 정부나 기업만의 몫이 아니다. 노동계가 좀더 적극적으로 산업적 문제에 개입하지 않으면 개별 기업 내부로 역할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미 비정규직, 주5일제 등 개별 기업에서 해결할 수 없는 한계들을 지켜본 바 있다.

 

경제적 변화 - 세계화, 고용불안
세계화의 흐름은 노동운동에는 또다른 딜레마로 다가온다. 예전과 같이 기업이 국경을 분명히 하고 있을 때는 노사관계가 기업 성패를 가르는 핵심적인 변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기업이 언제든지 국경을 넘나들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투자가 늘어나는 데도 고용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줄어드는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를 만들었다.


더구나 최근 들어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행보가 빨라지면서 노동운동의 위기는 더욱 가중되고 있다. 당장 한일 FTA가 체결될 경우 자동차와 기계산업은 20% 안팎의 고용조정 칼바람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노동운동은 FTA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화가 확산되면서 고용불안은 이제 상시적인 것이 되었다. IMF와 같은 국가적 위기상황이 아니더라도 언제든지 고용조정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고용을 지키는 방법은 세계화에 대한 명확한 전략을 가지고 산업의 흐름에 직접 개입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사회적 변화 - 고령화, 양극화
한국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유엔경제사회국의 발표에 따르면 2050년에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당장 생산 현장의 고령화도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같은 고령화는 임금과 생산성의 불일치를 가져오게 되고, 이는 고용불안은 물론 생산 현장의 세대 갈등을 낳을 가능성도 높다. 그렇기 때문에 고령사회에 대비할 수 있는 임금체계 개편이나 교육훈련 등에 노동조합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양극화 또한 노동시장 전체를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정규직-비정규직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는 노동계급 내부의 계층분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양극화는 노동운동의 사회적 연대를 결정적으로 약화시키고 분배교섭 중심의 경제주의를 강화시킬 수밖에 없다.

 

문화적 변화 - 노동윤리 약화
노동계에서는 ‘공식적’으로는 기아차 사태와 같은 문제가 부분일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많은 기업에서 노동조합 활동가들을 ‘돈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투적이라는 집행부마저도 회사와의 정기적인 ‘룸살롱 미팅’을 갖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조합원의 실리주의와 계파간 경쟁 체제 속에서 어떡하든 많은 성과를 얻어 다음 선거에 당선되기 위해서 ‘뒷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단지 도덕성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가 비전을 갖지 못한 채 단기적인 권력획득에 골몰하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포지티브한 정책역량이 필요하다
이같은 외부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 부재로 인해서 노동운동이 방향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책무와 연대의식을 잃어 버리고 노동계 내부, 그리고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또한 지불능력과 동원능력이 있는 일부 대기업 노동조합 중심의 노동운동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게 된다.


노동운동의 위기는 기업으로서도 좋아할 일이 아니다. 노동운동의 위기가 바로 기업의 위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경제환경 변화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신속한 노사합의, 원활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

 

따라서 기업이 노동조합에 대한 계파관리에 힘쓸 것이 아니라 선명성 경쟁을 넘어선 정책 전문성 경쟁이 가능하도록 인사, 노무관리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현재의 노동운동의 문제점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배규식 연구위원은 “포지티브한 전략과 정책 제시가 없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공세적이고 적극적인 정책 제시가 아니라 정부나 기업의 정책에 대한 반대를 중심으로 해서는 고용유지도, 노동운동의 사회적 역량 강화도 힘들다는 분석이다.

현장을 소외시키는 상층부 중심의 운동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공공부문 노동조합 간부 S씨는 “사회적 교섭 문제도 그렇고, 총연맹이나 연맹 단위에서 요즘 그 흔한 여론조사 한 번 실시하지 않은 채 자기들이 옳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어서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지금은 일선 노동조합들도 임단협을 앞두고 조합원들의 생각을 정확히 읽어내기 위해서 조합원 의식 및 실태조사를 실시하는데 그같은 노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합원이 움직이지 않는 노동운동이 지속되기 때문에 “실력도 없으면서 허풍만 앞선다”는 비난에 직면한 것이다.

철학의 빈곤도 문제로 지적된다.

 

한국노동혁신연구소 이문호 소장은 “한국 노동조합에서는 미래사회에 대한 총체적인 비전을 찾아보기 힘들다. 미래사회의 건설은 자본 또는 정부에 맡겨 놓은 듯하다”고 비판하고 “철학의 빈곤에서 나오는 노조의 ‘자발적 배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철학의 빈곤으로 인해 아무런 기준 없이 임기응변식 단기 이익에 매달리게 된다는 비판이다.

노동운동이 한국 사회 발전의 한 축이자 민주주의의 수호자임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노동운동의 새로운 발전방향 모색이 필요한 것이다. 노동운동이 몰락하거나 약화되는 것을 원한다면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두면 된다. 그러나 노동운동의 성장과 발전을 원하기 때문에 따가운 비판과 성찰을 요구하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레닌이 백년 전에 던진 화두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희망은 바로 노동운동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그 대답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