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법제화만으로 해결 못해
비정규직, 법제화만으로 해결 못해
  • 참여와혁신
  • 승인 2007.08.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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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적 자세로 법의 조속한 정착과 문제점 개선해야

정형우
노동부 비정규직대책팀장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부터다. 위기의 파고를 넘는 과정에서 많은 기업이 해고의 용이성, 비용절감을 위해 비정규직을 양산했던 것이다. 그 결과 비정규직이 전체 임금근로자(1535만명)의 35.5%인 546만명에 이르게 되었고, 임금수준은 정규직의 62.8% 수준에 불과(2006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 하다는 것 등 차별과 남용의 문제가 커다란 이슈로 대두됐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의 독특한 문제는 선진국과는 달리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고용보호가 강한 유럽연합(EU) 국가 등에서 해고의 용이성을 목적으로 기간제 등을 쓰고 있는 것과는 확연히 다른 현상이다.

 

 

진짜 비정규직을 보호하는 길은?

일부에서는 2007년 7월 1일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법의 효용성을 문제 삼거나 심지어 법개정까지 제기하고 있다.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제한하고 그 기간도 1년으로 줄이고 파견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 과연 이들 주장대로 따르면 비정규직 문제가 모두 해소될 수 있을까?


먼저 사유제한 문제와 관련해선 프랑스가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프랑스는 이례적으로 사용사유와 더불어 기간도 제한하는 독특한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다. 프랑스 정부는 청년실업률이 20% 이상에 이르고 신규채용이 부진하자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해소해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조치로 EU헌법이 부결된 2005년에 신고용계약제도(Contrat Nouvelles Embauches; CNE)를 도입한 데 이어, 비록 실패하기는 했지만 2006년 최초고용계약제도(Contrat Premiere Embauche; CPE) 도입을 시도했다.

 

오늘날 OECD는 물론, EU에서도 한결같이 고용창출을 최대의 가치로 세우고, 이를 위한 전제로서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완전히 거꾸로 가자는 얘기다. 전체 고용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는 말인가?

 
두 번째로 일부 노조는 현행 제도 하에서는 2년 단위 계약이 반복돼 고용이 대단히 불안해 질 것이라고 하면서 기간제 사용기간을 1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대로 사용기간을 1년으로 제한할 경우 11개월 30일짜리 계약이 넘쳐나지는 않을까?

 
마지막으로, 파견법을 없애면 어떻게 될까? 그 경우 우리 사회에서 가장 열악한 용역과 도급 형태의 계약이 넘쳐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파견을 허용하고 있고, 더욱이 파견대상 업무에 대해 제한을 가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 추세인데, 우리는 왜 거꾸로 가는 길을 택해야만 할까? 문제가 있다면 이를 보완·개선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는 점진적 사고방식이 아쉽기만 하다.

 
실제로 지난 7월 13일에는 노사정 대표가 함께 모여 법 제정 당시의 대화와 협력을 통한 상생의 정신을 되살려, “지금은 법 개정을 거론할 때가 아니라 서로가 힘을 합쳐 법의 조기정착을 위해 노력할 때”라는 내용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는 소모적이고 국론 분열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의미를 가진다.

 

전체 인력의 효율적 사용이 핵심 과제

비정규직법의 핵심조항은 크게 보아 2가지이다. 그 하나는 비정규직을 2년까지는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허용하되, 2년을 초과해서 계속 사용한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2년간의 자유로운 비정규직 사용에는 비정규직에 대해 불합리한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가 두 번째 핵심조항이다.

 

인적자원의 축적과 역량 발휘가 국가발전의 초석이 되는 시대상황을 고려할 때, 상시적 업무는 정규직화 하여 고용을 안정시키고, 이를 통해 경험의 축적과 생산성 향상을 기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인사관리 접근이 될 것이다. 또한 지금의 무한경쟁 체제는 고부가가치 제품과 서비스의 질로서 승부를 거는 전략으로의 탈바꿈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기업의 경쟁력은 우수한 인적자원의 확보에 좌우될 것이며, 사람에 대한 투자가 장기적인 승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세상은 무엇보다 전체 인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핵심 과제이며, 이는 OECD는 물론, EU에서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고령화의 속도가 최고 수준이고, 출산율은 OECD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인적자원을 소중히 여김은 물론 지속적으로 능력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당위성을 일깨워 주는 대목이다.

 

차별과 남용으로 얼룩져, 사기와 의욕, 생산성이 떨어진 인력으로는 이 같은 미래 도전에 대응하기 힘들다. 따라서 전체 인력의 효율적 활용을 위해서도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차별시정과 고용안정이 전제가 되며, 이들 가치를 기본 취지로 하는 비정규직법이 우리 사회에 조속히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갈등을 넘어 화합의 마당으로

비정규직법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남용과 차별, 그로 인한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 그와 동시에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안정성의 조화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새로 도입된 차별시정제도는 생산성을 하회하는 왜곡된 임금체계 개선을 통해 정당한 보상체계를 회복하고, 노동시장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이제 제도가 시행된 지 1달여 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 효과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가 운용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비정규직보호법을 조기에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노와 사가 서로 양보하고 협력하며, 무엇보다 단계적으로 접근해 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은행 등에서 보여주었듯이 정규직도 일정부분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며, 비정규직 근로자도 단번에 모든 것을 다 얻겠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회사 사정을 감안하면서 점진적으로 처우를 개선 받겠다는 단계적 태도가 요구된다.

 

기업 또한 장기적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차별시정 및 정규직화를 통해 근로자의 애사심과 사기를 높이고 생산성 향상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비정규직보호법의 시행을 전후로 금융, 유통, 제조업 등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처우개선 등 수많은 수범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최근에는 보건의료노조에서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및 차별시정을 위해 임금인상분의 1/3을 내놓기로 합의한 바도 있다.

 

이 모두가 비정규직보호법의 긍정적인 효과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이랜드 그룹의 문제를 마치 전체의 모습인 양 호도하고, 심지어는 비정규직보호법으로 인해 근로자가 해고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거와 같이 아무리 계약이 반복·갱신되어도 그저 비정규직일 뿐인, 그런 상태를 원하는가. 차별받아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불합리한 상황을 그리는 것인가.

 
비정규직 문제는 법제화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복합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법만이 아니라 비정규직의 직업능력개발을 통해 정규직으로의 이동통로를 확대하고 고용서비스를 강화하며,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등 작년 9월 발표된 비정규직고용개선종합계획의 내실 있는 집행을 통해 하루빨리 ‘비정규직의 덫’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노사정위원회에 설치된 「비정규직법후속대책위원회」를 활용, 비정규직법의 시행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해 문제점에 대해서는 차근차근 개선해 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 노사도 참여해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동반자적 자세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