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나 파이다!
에나 파이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7.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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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하승립
며칠 전에 지방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사무실 안에만 있다 보면 계절의 변화도 잊고 지내게 됩니다. 그냥 출퇴근 시간의 쌀쌀한 날씨를 보면서 가을이 깊었구나 하고 ‘생각’하는 거지요.

 

기차로 이동을 했는데 중간에 밀양에서 환승을 하느라 10여 분 간 내려서 다음 기차를 기다리게 됐습니다. 참 둔하게도 그제서야 가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플랫폼에서 그냥 기차를 기다리는데 가을 냄새가 일탈을 부추기더군요.


출장이고 뭐고 그 길로 역사 밖으로 나가 밀양 송림에 앉아 가을 강의 정취나 느끼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시달렸습니다. 생각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가을은 그렇게 짧지만 강한 인상을 새겼습니다.

사실 떠나고 싶다고 마음먹은 대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그건 용기와 여유가 함께 있을 때 가능한 일이겠지요. 용기는 있으나 여유가 없는 사람, 여유는 있지만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그저 마음 속 일탈이지요.

 

환승을 한 곳이 밀양이고 목적지가 창원이다 보니 기차 안에서 들리는 목소리들은 경상도 사투리가 대세였습니다. 참, 경상도 사투리라고 다 같은 사투리가 아닙니다. 우선 남도와 북도가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외지인들에게는 부산 사투리나 대구 사투리나 다 같은 경상도 말일 뿐이지만 ‘본토 사람들’이 들으면 충청도 사투리와 전라도 사투리만큼이나 다릅니다. 바다에 접한 부산은 억양이 거칠고 톤이 높은 반면, 내륙인 대구는 상대적으로 부드럽습니다.

 

남도와 북도 내에서도 차이가 심합니다. 북도는 주로 남북의 차이가 있죠. 강원도에 가까운 안동 지역으로 가면 또 전혀 다른 사투리를 듣게 됩니다. 남도는 동서로 차이가 있는데 부산과 진주가 또 다르지요.


경상도 다른 지역에서는 쓰지 않는데 진주 인근에서만 쓰이는 특이한 표현이 있습니다. ‘에나’라는 것인데 ‘진짜’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끝을 약간 높여 ‘에나가’라고 하면 그건 ‘진짜냐?’라는 질문입니다.

경상도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쓰이는 말 중에 ‘파이다’는 말도 있습니다. ‘안 좋다’ 혹은 ‘나쁘다’는 뜻이지요. 경상도 머스마들의 무뚝뚝함을 나타내는 것 중 마음에 안 들면 ‘치아라’ 한 마디 한다는 얘기도 있지요. ‘치아라’라고 할 때는 ‘파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사 마음 먹기에 달린 일이지만 ‘에나 파인’ 일들이 참 많군요. 유쾌한 뉴스를 접하고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점점 더 거칠고 각박한 세상으로 바뀌는 거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밀려듭니다. 

 

어쩌면 ‘에나 파인’ 세상을 만드는 건 바로 우리 자신들인지도 모릅니다. 비굴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독선적이지 않고 넉넉하게, 우리부터 그렇게 살아간다면 세상이 달라지겠지요. 가을 바람에 싱숭생숭해져 괜한 넋두리를 늘어놓습니다.


참, 그런데 ‘에나’와 ‘파이다’를 함께 쓰기도 하나요? 진주 지역도 ‘파이다’는 단어를 쓰는지 잘 모르겠군요. 고향 떠나온 지 오래 되니 가물가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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