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문제의 올바른 해법은 무엇인가
비정규직 문제의 올바른 해법은 무엇인가
  • 참여와혁신
  • 승인 2007.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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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전환’ 강제는 고용기피 부른다

최재황
한국경영자총협회 정책본부장
비정규직보호법이 시행된 지 100일이 조금 넘었지만 많은 혼란과 갈등이 있었다. 법 시행을 전후하여 비정규직 처우 개선 등 긍정적 효과가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법 자체의 실효성 여부는 물론 외주화 규제까지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나아가 일자리 상실 등을 이유로 한 법 개정 요구가 수없이 제기되기도 한다. 일자리 감소가 경영계에 의해 입법과정에서 이미 제기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안정적인 법 정착을 위해서는 노사 모두에게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바라보거나 때로는 자신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위해 비정규직 문제를 이용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서는 비정규직이 증가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와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임금, 고용창출능력의 감소 등 우리 노동시장의 현황 및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이라는 대의명분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이제 와서 모든 문제를 잘못된 법률 탓으로 돌릴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안고 있는 내적·외적 문제는 무엇이며, 이러한 고민을 통해 구성원 모두의 이해와 양보를 도출하기 위한 냉철한 판단과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노동시장의 기본적 문제는 무엇인가

최근 세계 경제의 호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낮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상승률에 그 원인이 있다. 미국·일본·대만 등 주요 선진국 및 경쟁국은 2006년도 1인당 GDP 대비 임금수준이 1987년에 비해 하락하였으나, 우리나라는 1987년 1.45에서 2006년 1.78로 크게 증가한 반면 생산성 증가는 동반되지 못해 국가경쟁력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


또한 취업증가율을 경제성장률로 나눈 고용탄력성은 지난 1991년~2000년 0.38에서 2001년~2004년 0.32, 2005년 0.31, 2006년 0.26으로 하락하는 중이다. 고용탄력성의 하락은 우리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이다. 즉 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상승은 기업의 해외이전을 부추기고 고용을 늘리기보다는 자본을 늘리는 노동절약적 투자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나아가 고용 유연성이 OECD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신규 인력의 노동시장 진입은 물론 노동시장 내 이동 자체가 어렵다는 점 또한 주요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비정규직 증가의 원인은 무엇인가

노동시장의 유연성 강화와 고용형태 다양화는 세계적인 추세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엄격한 해고제한 규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엄격한 해고제한 규정으로 인해 한 번 채용한 근로자를 내보내기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에서 고용형태를 정규직으로 통일하자는 것은 기업 활동을 그만두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핵심업무/부수적업무, 계속적업무/일시적업무 등 상황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인력 사용은 경쟁력을 넘어 노사 모두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 요구이다. 

노동시장 내에서 비정규직의 존재나 근로조건의 격차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이를 정책적으로 해결하는 것 또한 한계가 있다.


일부에서는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와 이기주의가 비정규직 증가의 큰 원인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 또한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비정규직 보호를 외치면서도 비정규직의 노조 가입을 대의원회대회에서 거부하는 경우도 많이 보아 왔다.  노사가 나눠가질 수 있는 빵이 한정되어 있다면, 이들의 양보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합리적 절충점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는 것이 근본적 해법인가

최근 노동계는 물론 정부 또한 ‘비정규직은 존재해서는 안 될 일자리’라고 인식하면서 ‘무조건적 정규직화’를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당초의 입법취지는 차별 해소와 고용의 유연성을 균형있게 조화시키는 것이었지, 획일적인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이는 경영 여건, 업무의 특성과는 상관없이 획일적 방법만을 허용하자는 것으로써, 경영상 결정권 자체를 배제하자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의 기업들은 비정규직법 준수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민하고 있는데, 크게 ‘계약해지 후 비정규직 신규채용’, ‘정규직 전환’ 두 가지 방안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약해지 후 비정규직 신규채용’의 경우 함께 일해 온 근로자를 사실상 해고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고, ‘정규직 전환’의 경우 경영 여건상 도저히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결국 이 두 가지는 노사 모두의 많은 희생이 필요한 극단적인 방법이다. 따라서 개별 기업이 노사 모두의 극단적 희생을 피하기 위해서 이른바 중간지대의 방법으로 ‘외주화 전환’을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구호를 유일한 해법인 양 외치고 있다면, 이는 문제 해결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들의 주장에 따를 경우 경쟁력 저하는 물론 기업의 고용기피현상으로 인해 실업률 증가만 초래될 뿐이다. 이는 기업들이 ‘비정규직 보호’와 함께 ‘고용유연화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기를 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유로운 비정규직 사용 허용하되 불합리한 차별 없애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한쪽 주장대로 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해답은 고용의 유연성과 안정성 어느 쪽도 크게 해치지 않는 방안이어야 한다.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이념과 인기를 의식한 이상적인 방안이 아니라 노동시장에 현실적으로 반영되어 일자리를 창출하고 실업률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보호는 불합리한 차별 해소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또한 기업의 자유로운 사용을 통해 노동시장 진입과 이동을 활성화하는 것이 실질적인 고용안정을 도모하는 길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일자리 상실을 유발하는 기간제한 규정(2년)은 장기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비정규직 보호를 위한 올바른 방향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