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비정규직 그리고 현실
여성 비정규직 그리고 현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7.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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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회사는 현대판 노예선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선 안 된다

윤금옥 전국여성노동조합
서울지부 조직국장
98년 롯데호텔과의 인연은 참으로 신기하고 설레기까지 했다. 호텔이라고 하면 보통 서민들은 접해 보기 힘든 공간이기도 했고 참 깨끗하고 산뜻하다고나 할까. 예쁜 유니폼, 예쁘고 친절한 직원들, 정말이지 신사·숙녀라는 말이 손색이 없는 곳이 롯데호텔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은 비정규직이지만 언젠가는 명절 때 주는 보너스도 받고 정규직도 되겠지’하고 생각했다. 정말 내가 바보인건지, 내 방식대로 세상을 편안하게 믿었다는 사실에 지금도 헛웃음이 난다.


아침에 출근하면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를 정도로 일을 했고, 배가 고파서 시계를 보면 ‘점심시간이구나’ 할 정도로 매일 매일이 바쁘고 정신이 없는 곳이었다. 정신없이 뛰지 않으면 하루 배당받은 방 12개를 끝낼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 견디지 못하면 호텔에서 룸메이드라는 이름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그렇게 열심히 쓸고 닦아서 만든 방 1개의 값은 하룻밤에 17만 원에서 40만 원이 넘는 가격으로 손님에게 팔린다. 그런데 우리에게 돌아오는 돈은 시급 3870원.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4년 정도를 근무했더니 용역회사로 넘긴다고 사직서를 강제로 받는 것이었다. 층마다 중간관리자들이 객실로 찾아다니며 ‘사직서에 도장 찍지 않으면 결국은 쫓겨난다. 그리고 용역으로 넘어가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텐데 왜 싫어하느냐,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협박과 회유를 거듭하다, 결국 3일 만에 위로금 몇 푼 주고 용역으로 팔아넘겼다.

 

현장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다. 단지 사장이 한 명 왔는데 롯데호텔에서 객실관리 업무를 담당하다 퇴직한 이사였고, 처음 2년간은 롯데호텔에서 받던 혜택을 유지해주었다. 2년이 경과한 다음에는 롯데호텔 객실관리를 하던 계장이 사장이 되었다.

 

용역이 두 번째로 바뀌면서 2년간 50만 원 책정되었던 복리후생비가 20만 원으로 30만 원 삭감되는 등 기본급조차 보장이 안 되는 실단가(청소한 방 수)제로 전환한다는 일방적인통보를 받고 이의제기를 해보고 업무 거부도 해보았다. 하지만 ‘절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다, 떠나라, 일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원래 용역은 그런 거다, 앞으로는 더 심해질 거다, 이제 시작이다’라는 말로 으름장을 놓았다.

 

그때 느꼈던 그 절망감과 배신감은 무어라 표현할 길이 없었고, 그때 머리에 떠오른 생각 하나가 있었다. ‘용역회사는 회사가 아니라 노예선이구나. 한때는 우리부서 직속상관이었던 사람인데 해도 너무한다.’ 생각할수록 억울해서 어딘가에 우리들의 현실을 알리고 싶었다.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인데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용기를 내어 찾은 곳이 ‘전국여성노조’였다.

 

짧지만 행복했던 시간

지독히 덥던 2005년 8월, 우리는 휴가도 가지 않고 권리를 찾아보겠다는 의지 하나로 뭉쳤다. 3일 만에 120명 중에 114명이 조합에 가입을 하고 결성식을 가졌다. 이를 본 사측 노무사가 회사에서 얼마나 잘못했기에 단시간에 그 많은 사람이 조합에 가입했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노조 결성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많은 변화를 주었다. 용역이지만 급여, 고용, 그리고 중간관리자들의 횡포로부터도 다소나마 보호 받을 수 있었다. 5년차 이상 된 룸메이드들의 급여는 113만 원. 더 이상 투잡을 하지 않아도 됐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소박했던 것 같다. 직장생활 8년 동안 제일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그 기간이 너무 짧아서일까?

 

노조창립 1주년이 지나고 용역회사와의 재계약 시기가 도래했음에도, 원청회사에서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답은 나오지 않고 이상한 소문만 돌기 시작했다. 4대 보험 4개월 치가 연체되고 퇴직금으로 줄 돈도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노릇 아닌가? 대기업 롯데에서 장사가 안 되는 것도 아니고, 롯데호텔 하면 호텔업계에선 선두주자인데….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간접고용

우리는 원청회사인 롯데호텔 측에 해결을 촉구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없었고, 롯데호텔 측에서는 용역사로, 용역회사에선 원청인 롯데호텔로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가 그렇게 피해를 입고 있는 동안 원청회사 측은 용역회사를 바꿀 궁리만 하고 있었다. 8월말 계약을 12월로 연장해주면서 내부적으로 용역 업체를 선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11월 16일 용역회사 경영악화로 용역회사를 바꾸고, 롯데에서 8~18년 동안 장기 근무하던 노조의 핵심간부들을 해고시켰다. 퇴직금은 체당금으로 대신하고, 4대 보험은 7개월이 연체됐다. 이 모든 피해를 현장에서 열심히 일만 한 근로자가 떠안고 있으며, 원청회사나 용역회사는 지금까지 아무런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처럼 비정규직에서 간접고용으로, 간접고용에서 해고로 이어지는 동안 국회, 노동청, 인권위 등 수차례에 걸친 토론회에 참석하고 정말로 많은 곳을 찾아 다녀봤지만 어디에도 우리를 보호해줄 법이 없다고 했다.

 

비정규직일 때는 정규직에 비해 1/3에도 못 미치는 급여와 고용불안으로 차별을 받고, 간접고용으로 되면서는 1년 동안 최저가낙찰로, 2년째는 수의계약을 하면서, 계약이 만료되면 그동안에 단체협약, 노동3권이 완전히 소멸되고 다시 시작해야하는 2년짜리 노동자, 노동조합이 돼버린 상황에서 맨몸으로 싸워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기 만하다. 지금 중장년층 여성 노동자들은 어느 사업장이나 비슷한 간접고용의 현실에 놓여 있지만 누구 한 사람 이렇다 할 해결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호텔에서의 룸메이드는 핵심 중의 핵심 업무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호텔은 숙박업이고 숙박을 담당하는 업무부서가 당연히 핵심부서이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가절하 되는 이유는 그 업무에 속한 전 직원이 여성이기 때문이고, 여성을 남성의 생계활동에 대한 보조로만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만 근무하는 사업장의 30%가 여성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고, IMF 이후 잠정적인 남성가장 실업률을 생각하면 그 수치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간접고용 대책은 양극화 해소의 첫 걸음

여성 집중업종에서 주요 문제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간접고용 문제를 단순하게 몇몇 사업장의 문제로만 국한시켜서는 안 될 것이며, 사회전반에 걸친 점검과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선의 방법은 직접고용이겠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간접고용으로 전환했다면, 원청회사의 사용자성을 강화하고 지금의 입찰제도에 대폭적인 개선이 필요할 것이며 간접고용 근로자들의 노동3권 역시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토론회에서나 노동자들을 만나면, IMF 이후 열병처럼 번진 비정규직 문제는 기업이윤과 상관없이 얼마나 잘 비정규직으로 전환했는지를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따라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성 집중업종에서 집중적으로 행해지는 간접고용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양극화 해소의 기본이 될 것이고 성차별 해소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근로현장에서 여성이라서 차별받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중장년 여성들의 노동력이 재대로 평가받을 날을 기대하며 지금도 힘들게 투쟁하는 동지들께 승리의 그날까지 마음으로나마 함께할 것을 약속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