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이 공감을, 공감이 희망을 낳는다
소통이 공감을, 공감이 희망을 낳는다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8.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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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없인 ‘꿈’도 이룰 수 없어
2008년 새해, 우리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조직이건 개인이건 한해를 시작하는 새해의 가장 큰 화두는 항상 ‘계획’이다. ‘술을 줄이겠다’ ‘담배를 끊겠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계획에서부터 시작해, ‘올해는 꼭 집을 장만하겠다’처럼 가족의 미래가 걸린 계획도 있다. 노동조합이나 기업도 다르지 않다. 보통 신년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에 맞는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만드는 것이 계획을 세우는 단계다.

 

어찌됐든 한 가지 계획 정도는 세워야 한해를 시작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연초에 세운 계획이 작심삼일은 무사히 넘겼더라도 연말까지 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새해가 되면 또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계획은 왜 세우는 걸까? 목표는 왜 정하는 걸까?


 

도착점 잃어버린 질주를 하고 있지 않은가

“새해엔 담배를 좀 끊어볼까.” “왜?” “나이 생각해야지. 몸이 예전 같지 않거든. 건강 좀 신경 써야겠어.” “왜?” “음… 당연한 거 아냐. 건강하면 좋잖아.” “왜 좋은데?” “음… 글쎄….”
 

혹시 이런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는가. 지극히 당연해 보이고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질문 말이다. 우리는 ‘왜’라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잊은 채 기계적으로, 새해가 되었으니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람들이 세운 계획의 그 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미로로 빠져들게 된다. ‘내’가 나와 관련된 계획을 세우는 것 같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사실 ‘나’는 빠져있다. 계획을 세우기 전 목적과 목표는 고민하지만 더 중요한 ‘도대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에 대한 고민은 놓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계획대로 한참을 달리다가 멈춰서기도 한다. ‘내가 왜 달리고 있었지’라고 자신에게 반문하면서 말이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 활동가가 ‘올해는 현장 속으로 들어가서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듣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고 하자. 그렇다면 왜 현장으로 들어가야 하고, 왜 조합원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야 하는 걸까.


아마도 ‘조합원의 의견을 반영한 사업을 집행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정해진 정답’에 머문다면 늘상 그래왔던 것처럼 습관적으로 조합원들의 얘기를 듣고, 그것을 사업 계획 속에 한두 줄 담아내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내 계획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조합원들의 의견을 듣느냐 하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것이라는 표면적인 내용 말고, 그 속에 담겨 있는 그들의 지향점이 경제,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럴 때 정확한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
 

H노조의 활동가 C씨는 대의원 활동을 하면서 매일 활동일지를 작성했다. C씨는 “활동일지를 작성하다보면 항상 질문을 하게 된다”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처음의 계획에서 틀어지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검토한다”고 설명한다.

 

기업의 인사노무 담당자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내가 맡고 있는 노동조합 ○○○와 좀 더 속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하자’는 목표를 세운다. 혹은 ‘올해 임금교섭은 무분규로 끝내자’는 목표일 수도 있다.

 

그러면 노동조합 간부와 술자리를 몇 번 가질 것인가 등등의 구체적인 계획이 나온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노사관계의 안정에 도움이 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빠져 있다. 결국 연말이 되면 몸은 몸대로 축나고, 결과를 놓고 여기저기서 욕 먹고, 그러다보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찾아온다.

 


 

꿈과 계획 성공하려면 소통이 필요하다

어떤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첫걸음은 언제나 ‘소통’이다. 사실 우리는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있다. 기업도 노동조합도 커뮤니케이션이 기본이라고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수많은 책들도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소통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어제와 똑같이 오늘도, 지난해와 같이 올해도 소통은 주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소통을 이루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도 소통이 필요하다. 사소해 보이는 개인의 꿈일지라도 세상에 나 혼자만 있다면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이미 우리는 자신이 속한 가정, 학교, 직장 등 생활 속에서 영향을 받고 그 속에서 지금의 내 모습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노동해방이란 어느 노조활동가의 꿈도, 세계 일류기업이란 기업 경영자의 꿈도, 좋은 아빠라는 어느 직장인의 소박한 꿈조차도 꿈을 향한 행동과 더불어 소통이 잘 돼야만 이룰 수 있다.

 

소통(疏通)은 막힘없이 서로 잘 통하는 상태로, 서로 뜻이 통해서 오해가 없는 것을 말한다. SK텔레콤 미래경영연구원 박태현 강사는 소통은 “서로의 욕구를 이해시키고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외부와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과의 소통도 필요하다. 자신과의 소통이라는 것은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 때 다른 사람과의 소통도 가능하다. 그래야만 상대방에게도 내 욕구를 이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통에 약한 사람들 늘어나 사회 갈등도 많아져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고여 있는 물이나 막힌 혈관과 같다. 썩거나 터지거나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인간 사회에서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절망감을 느끼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 불필요하게 긴장하게 되고, 오해를 하고, 갈등이 생긴다.

 

실제 서울시가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응답자의 38%가 가정과 학교, 사회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며 “내 말 좀 들어달라”고 호소했다. 우리 아이들 3명 중 1명은 소통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비단 학생들만 소통의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나 코쿤족(나홀로족) 등은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서 사는 사람들이다. 특히 코쿤족은 히키코모리처럼 아직까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는 않지만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코쿤족은 상대방과 의견을 조율하거나 팀작업 등에 있어서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의사소통에 관심도 없고, 필요성도 못 느끼며, 서로 자기주장만을 내세우다보니 사회에선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생기기 쉽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났듯이 가정에서도 소통이 안 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각자 바쁜 생활로 대화할 시간은커녕 함께 식사할 시간조차 없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이혼하는 부부들이 가장 많이 드는 이혼사유가 ‘성격차이’라고 한다. 소통을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쉽게 이혼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런 청소년 문제와 이혼의 증가는 소통의 부재가 낳은 결과물이다. 가정에서 발생한 소통문제가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혼자서도 괜찮아? 21세기 새로운 인간유형

히키코모리  ⊙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들을 일컫는 말.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나타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 은둔형 외톨이들이 나타나면서 사회문제로 떠오른 용어다. ‘틀어박히다’는 뜻의 일본어 ‘히키코모루’의 명사형으로, 일본 후생성은 2001년부터 6개월 이상 이런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을 히키코모리로 분류하고 있다.

 

코쿤족(나홀로족)  ⊙ 외부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여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에 머물려는 칩거증후군의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로 ‘누에고치’라는 말에서 유래. 코쿤족은 안정된 수입원을 갖고 있으면서 업무능력이 뛰어나고, 스트레스 등 외부 자극에 대한 확실한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코쿤족이 늘어나면서 조직을 중시하는 전통적 가치관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소통 안 되면 배가 산으로 간다

소통이 안 되는 것도 문제지만 소통에 대한 오해도 많다. 주변 사람들을 보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경향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직장에선 후배들은 상사의 의견과 자신의 생각이 달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도 확인하려 들지 않는다. 상사들은 후배직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잘 이해했는지는 확인하지 않고 ‘나는 분명하게 말을 했다’며 책임을 전가시키기도 한다. 그러면서 양쪽 모두 조직의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는 어김없이 ‘소통의 문제’를 거론한다. “난 다 말했는데 너 때문에 소통이 안 된다”며 자신의 말만 일방적으로 전하는 것을 소통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통은 쌍방향적 행위이다. 상대방이 이해를 했을 때 비로소 소통이 이뤄진다. 신용보증기금 장철우 사내강사는 “대화를 했더라도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했다면 대화를 하지 않은 것과 같다”며 “상대방이 이해할 때까지 몇 번이고 다시 말하는것이 진정한 대화 ”라고 지적한다. 또 서로 소통을 하자고 할 때는 나부터 진정 소통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해하고 이해시키려는 의지가 없다면 결코 소통은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배가 산으로 간 까닭이 사공의 숫자가 많기 때문일까? 사공들이 서로 자기 목소리만 냈기 때문일까? 사공의 숫자가 아무리 많다고 한들 서로 간에 충분히 소통이 되었다면 배는 얼마든지 제 목적지를 향해 순항할 수 있다. 이렇게 한 조직 안에서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으면 갈등이 생기고 방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 회사가 혹은 그 부서가 얼마나 의사소통이 잘 되는지를 알고 싶다면 회의에 참석해 보면 안다. 소통이 잘 안 되는 회의는 서로 상대방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각자 자기 말만 쏟아내니 회의시간만 길어지고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구성원들에게 회의는 창의적인 두뇌활동의 시간이 아닌 고역스런 시간이 되는 악순환이 생긴다.

 

노사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별다른 협상의 진전 없이 협상기간만 길다. 서로의 협상안에 대해 충분한 설명과 이해의 과정을 거치기보다는 서로가 내놓은 안에 대해서 받냐 안 받냐를 가지고서 지리한 줄다리기 싸움을 하는 것이다. 이런 불필요한 줄다리기 싸움으로 대화는 차단되고 서로를 불신하게 되는 등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게 된다.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면 우리는 그 소통의 힘으로 ‘공감’에 이르게 된다. 내가 계획하고 있는 일, 조직이 계획하고 있는 일에 대해 주변 사람들, 조직 구성원 간에 공감이 이루어진다면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는 건 훨씬 쉬워진다.

 

한국을 대표하는 굴지의 기업들은 사실 참 ‘좋은 기업’이다. 수많은 고용을 창출해내고, 또 한국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이 사람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 얼마전 전경련이 발표한 ‘기업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보고서’결과를 보면 응답자의 43.8%가 기업게 대해 비호감을 갖고 있었으며, 가장 큰 비호감 이유는 ‘기업의 잘못된 경영형태’였다.

 

그만큼 기업들이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중소 하청업체들의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불법이나 탈법을 통해 부를 축적하거나 세습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공감’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이들 기업들이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엄청난 돈을 들여가며 광고를 하면서도 ‘좋은 기업’을 넘어서는 ‘위대한 기업’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거대 기업들이 이윤을 생각하기에 앞서 ‘공감’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한다면 자연스럽게 국민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이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도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한때 반기업 정서가 심각하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지금 상황을 놓고 보면 반노조 정서도 만만찮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 대해 많은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왜곡된 언론 보도’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물론 그것도 중요한 하나의 이유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정 여론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활동을 해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다. 대외적으로 내걸고 있는 대의명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기이익 챙기기가 만연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함께 한 곳을 바라볼 때 희망도 싹 터

진정한 소통은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비로소 공감이 생긴다.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 곳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공감의 중요성이 꼭 기업이나 노동조합 등 조직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서도 내 가족, 내 동료, 내가 살아가는 사회와 공감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이쑤시개 한 개는 한손으로도 쉽게 부러진다. 하지만 수백 개의 이쑤시개가 모이면 두 손으로도 부러뜨리기 힘들다. 소통으로 만들어낸 공감은 수백 개의 이쑤시개를 모아 놓은 것과 같은 힘이다.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만든 희망 또한 쉽게 부서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소통과 공감을 “조직 사회에서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소통과 공감은 절대 ‘수동태’가 아니다. ‘하라’고 하면 뚝딱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지속적인 행동이 있어야만 한다.

 

꿈이 있어 내가 있지만 행동 없으면 언제나 그 자리

오늘 할 일이 있다는것, 한해 동안에 계획이 있다는 것은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원동력이다. 특히 ‘꿈’은 삶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꿈, 이 한 글자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슴벅차 하고 감동하고 진지해지던가. 얼마 전 한 음악방송프로그램에서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원더걸스의 ‘텔미’를 제치고 인순이는 ‘거위의 꿈’으로 데뷔 30년 만에 가요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거위의 꿈’이 가수 이적의 손에서 만들어져 세상에 나온 지 10년 만의 일이다. 이 노래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꾸준한 인기를 얻는 것 또한 꿈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처럼 꿈은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누군가가 뜻모를 비웃음을 흘릴 때도’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의 것이다. 그래서 꿈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어린다. 
 

작은 계획이든 꿈이든 ‘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꿈’이냐는 것이다. 여기엔 항상 ‘나’가 빠지면 안된다. 자신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이고,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을 통해 찾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꿈’이 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꿈이 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면 꿈을 이뤘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꿈을 이루기 위한 무언가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거위의 꿈’을 들으면서 언젠가 나도 내 삶의 끝에서 웃을 수 있을거라고 ‘꿈’을 이룬 모습만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뜻대로 되지 않을 땐 남을 탓하기도 한다. 하지만 노래 속의 거위는 하늘을 날기 위해선 내 앞에 차갑게 서있는 벽을 넘어야 된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선 꿈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 꿈을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 ‘행동’이다. 꿈을 향해 움직이지 않으면서 꿈이 멀어진다고 말하는 것이다.

 

새해를 맞아 누구나 한가지쯤의 새해계획을 세운다. 올해부터는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만 세우지 말고, 그 무엇을 하기 위해 또 다른 ‘무엇’을 할 것인지도,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부터 고민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