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복수노조 시대 전주곡 울리나
본격 복수노조 시대 전주곡 울리나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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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해결 시스템 못 갖추면 생산현장 혼란 가능성

곳곳에서 사무관리직 노동조합 결성 움직임

물량 경쟁으로 인한 노-노 갈등도 심화 조짐

 

지난 2월 21일 K사 과·차·부장급 68명이 금속노조(위원장 김창한)에 직가입했다고 밝혔다.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과장급 이상에 대한 대기발령이 이루어지면서 고용불안을 느낀 이들이 노동조합 결성으로 맞선 것이다.


K사측은 예상하지 못했던 듯 잠시 당혹했으나 지금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어차피 대기발령자들을 중심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확산만 막는다면 큰 문제는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회사 노동조합도 이 문제에 개입할 여력이 없다. 선거 기간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을 수 있는 창구가 없다. 다만 노동조합의 한 관계자는 “집행부 총사퇴 전에 일정하게 논의가 진행됐고, 소송 결과를 기다린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현재 이 회사 노동조합 규약 상에는 과장 이상도 가입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현행법으로 보면 복수노조 조항 때문에 별도 기업단위 노조를 설립할 수 없다. 그러나 법원의 판례는 산별 노조로 가입할 경우 복수노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에 법률적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생산직과 사무직의 미묘한 갈등
IMF 이후 구조조정이 상시화되고 특히 사무관리직을 중심으로 한 근로조건 악화가 지속됨에 따라 사무관리직의 노동조합 설립이 늘어나는 추세다. 금속노조 이상우 미조직·비정규사업국장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사무직의 의식이 많이 바뀌어 노조지향성이 강하다”고 전제하고 “이렇게 물꼬가 터지면 (사무직 노조 설립이) 급격히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실제 현재도 단일 기업 내에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K사처럼 산별 노조로 가면서 생산직과 사무직 노동조합이 따로 존재하는 경우나, 기업의 인수·합병 등으로 인해 기존의 노동조합이 함께 존재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상황이 늘어나면서 내부 주도권 다툼과 같은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은 노사 모두 대응책이 전무한 실정이다.


 

우선 사무관리직 노동조합과 생산직 노동조합이 공존하는 경우는 대부분 생산직 노동조합이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거나 사무관리직 노조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큰 갈등을 빚지는 않기 때문에 크게 논란이 불거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언제고 갈등의 요소는 상존한다. 이들 사무관리직 노동조합이 2007년 복수노조 허용 이후 몸집을 불릴 경우 마찰이 일어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무직 노조와 생산직 노조 간의 갈등을 예견하는 것은 그간 양측이 상당한 ‘감정의 골’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우려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지난 2000년 전후로 T 중공업에 사무관리직 노조가 생겼을 때, 생산직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반응은 ‘소 닭 보듯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조합원들은 “관리직들이 예전에 구사대 노릇을 하면서 우리와 맞섰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고 반발했다. 실제 대부분의 기업에서 이전에 관리직들을 구사대로 동원한 경험이 있다. 결국 구조조정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했던 이 회사 사무관리직들은 회사의 개별접촉을 통한 명예퇴직 신청에 무너지고 말았다.


 

당시 사무관리직 노조 간부는 “솔직히 우리가 노동조합에 맞섰던 것이 사실이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는데, 생산직 노조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아서 서운했다”고 토로했다.


 

사무관리직들도 할 말은 많다. 지금은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지 않고, 조합원 신분도 아닌 한 대기업 사무직 과장은 “과거에 어떠했건 간에 지금은 오히려 상황이 역전되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생산직의 경우 노동조합의 힘으로 구조조정 등에서 보호받을 수 있지만, 사무직은 임금 역전 현상, 과다한 업무, 고용불안으로 힘들게 버티고 있다는 것. 이 과장은 “노동조합이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사무직들이 일과 시간 중에는 생산 현장에 투입되고, 저녁 시간에 나머지 업무를 처리하는데 그 때마다 너무 힘들다”고 밝혔다.

 

또 대의원의 권한이 커지면서 “인격적으로 상처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불만이 폭발 직전”이라고 덧붙였다.


 

또다른 회사의 관리직 간부는 “지금 우리는 경영진으로부터는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걸림돌로, 부하직원들로부터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모습에 감시·감독이나 하는 부가가치 낮은 업무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고 토로하고, 이 때문에 구조조정 0순위로 불리는 것에 대한 불안을 드러냈다.


 

아직도 사무직과 생산직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있고, 이를 극복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금속노조 이상우 국장은 “갈등의 요소가 많고 마찰 가능성이 높은데, 아직까지 상급단체 차원의 대응책은 고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고백했다.

 

노조 설립 움직임은 계속될 듯
대우자동차 사무노동직장발전위원회(사무노위)는 올해로 결성 6년차를 맞는 ‘중견’ 노동조합이다. 그러나 아직도 공식적인 노동조합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다. 그래서 그동안 여러 차례 노동조합 전환을 위한 시도를 해왔다. 대우차 사무노위는 규약에도 노동조합으로의 전환이 목적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복수노조가 허용되기 전 대우차 사무노위가 노동조합으로 전환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세 가지가 있다. 대우차 생산직 노조가 규약을 변경해서 사무관리직을 가입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독자 노조를 설립하는 방법, 산별노조에 직가입하는 방법, 그리고 기존 생산직 노조에 집단 가입해서 사무지부로 전환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생산직 노동조합과의 조율과 협의가 있어야 가능한 셈.

대우차 사무노위는 첫 번째 방법을 쓰기로 했고 지난해 12월 생산직 노조 대의원대회에 이같은 안건이 상정됐다. 그러나 결과는 부결이었다. 이와 관련해 대우차

 

사무노위 정선영 정책부장은 “사실 생산직 노조와 사무노위와의 관계는 미묘한 측면이 있다”고 말하고 “대의원들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거나 불신감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4500명이 참여하고 있는 대규모 조직으로 성장했지만 아직 노동조합 결성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 부장은 “여러 방법들을 병렬적으로 준비하면서 노조 전환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대우종합기계는 생산직과 사무직이 모두 산별노조인 금속노조 지회로 존재하는 경우다. 다른 사례와는 달리 양 노조의 협조체계가 잘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기업 매각이 진행되고 있는 위기 상황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금속노조 대우종합기계 사무직지회 김덕원 지회장은 “지난 1년간 양측이 공동대책위를 꾸려 고용안정 문제를 놓고 함께 활동해 온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로 신뢰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우종기의 경우도 양측의 차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조직 통합 등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 지회장은 “사무직들도 노동자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노동조합을 통한 연대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해 가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1사 다노조 체제의 혼란 가중
기업의 합병 등으로 인해 복수노조가 존재하는 경우는 아직도 상당한 갈등요인을 안고 가고 있다.

 

금융산업 구조조정으로 인해 1사 다노조 체제가 많은 금융권에서는 대부분의 노동조합이 금융산업노조 소속이라 직접적 갈등을 빚지는 않지만 미묘한 차이로 인해 감정의 골이 생기는 경우가 제법 있다. 특히 인수은행측이 피인수은행 노동조합에 대한 차별 정책을 펼칠 경우 갈등은 더욱 증폭된다.

 

모 피인수은행 노동조합 간부는 “일단 은행측에 대한 반감이 강하지만, 연대에 적극적이지 않은 인수은행 노동조합에 대한 불만도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강하게 존재한다”고 밝혔다.

 

 

올 1월부터 노동조합 통합 작업을 시작한 국민-주택-국민카드 노동조합은 완전통합까지 2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라는 반증이다.

 

 

복수노조 문제는 아니지만 노동조합의 규모가 커지면서 내부적으로 미묘한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 H자동차 노동조합은 각 공장별 대의원대표도 직선으로 뽑힌다. 그만큼 현장에서의 힘이 강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한 공장 대의원대표가 물량 감소 시 해외 물량 국내 이전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합원총회를 소집하고 잔업거부 및 파업과 관련한 조합원 투표를 진행했다.


 

이에 대해 H노동조합 관계자는 그 사안에 코멘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하면서도 “조합원총회 소집권과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정은 위원장의 권한”이라고 밝혀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이 회사 노사협력팀 관계자도 “노동조합 집행부 차원의 결정이 아니기 때문에 대의원대표가 무리하게 파업을 진행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제하고 “그래도 집행부가 아닌 쪽에서 이런 움직임을 보이면 공식적인 협의체계가 힘들어진다”고 곤혹스러워 했다.

 

이같은 갈등의 근본 원인은 물량 경쟁에서 비롯된다. 각 공장별로 물량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고용과 임금 등에 직결되는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노-노간 경쟁 양상으로 발전하는 것. 이같은 갈등을 조정할 시스템을 갖추지 못할 경우 복수노조 시대에 들어서면 노동조합의 분화로 이어지고, 이것이 또다른 마찰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K자동차도 최근 대의원이 작업 라인을 세우면서 노동조합측과 갈등을 빚는 등 대공장을 중심으로 노-노 갈등의 양상이 조금씩 전면화되고 있다.
지금은 이런 갈등이나 마찰이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일이지만 2007년 복수노조가 허용될 경우 전면적으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연구원 김정한 연구위원은 “복수노조 허용 전에 노사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해결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경우 생산현장이 커다란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