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노동정책 엇갈린 반응
2004년 노동정책 엇갈린 반응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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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 “평균점 이상” 노 “낙제점 이하”
노사갈등 조정 상반된 평가…고용정책은 “엉망” 한목소리

노동부가 지난 연말 기분 좋은 성탄 선물을 받았다. 산타는 국무총리 산하 정책평가위원회였다. 지난 12월 24일 정책평가위원회는 24개 부·처 단위와 19개 청 단위 기관 등 43개 중앙행정기관에 대한 업무평가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여기서 노동부는 건설교통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와 함께 ‘우수’ 평가를 받았다. 이 평가는 주요정책(35점) 혁신관리(35점) 고객만족도(20점) 부처간 협력 및 법제업무(10점) 등을 기준으로 진행됐고, 노동부는 노사갈등의 효율적 관리를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부’로부터 호평을 받은 노동부로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도 하다. 게다가 재계의 평가도 썩 나쁘지 않다. 전경련과 경총에서는 “균형감 있게 법과 원칙을 지켰다”는 호평을 내놓았다. 또 정책자문위원회와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노동정책방향 설문조사에서도 만족도가 높게 나온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계는 ‘싸늘’ 재계는 ‘훈훈’

그러나 노동부의 이같은 ‘자축’ 분위기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 같지는 않다. 우선 노사정의 한 축인 노동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사실 올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노정 관계가 유례없는 해빙 무드를 보이는 듯 했다.


노정 대화에 적극적인 한국노총에 이어 민주노총도 ‘사회적 대화’를 추진하는 이수호 집행부의 출범으로 ‘대화’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게다가 진보적 학자 출신의 김대환 장관이 취임하고, 김 장관과 이 위원장의 특별한 인연(고교 동창)까지 소개되면서 걸림돌은 없는 듯이 보였다. 실제로 노사정 대표자회의가 진행되면서 대화 분위기는 한층 고조됐다.


그러나 정부가 LG칼텍스정유, 지하철 파업 등에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하면서 해빙 무드는 오래가지 않았다. 더군다나 하반기 들어 비정규직 보호 법안, 공무원노조 문제가 겹치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장관이 연일 노동계에 가시돋친 비판을 쏟아내고, 여기에 맞받아 노동계가 강공 드라이브를 걸면서 대치 상황은 더욱 첨예해졌다. 물론 한국노총의 대화 참여 의지가 여전하고, 민주노총도 1월 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대화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지만 현재 상황으로는 이후 관계가 그렇게 낙관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은 “노동부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내걸고도 내용적으로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정부가 지금처럼 일방주의 방식을 고집하면서 비정규직 문제 등을 강행하려 한다면 노정관계는 (2005년에도) 정면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실장은 2004년 노동부에 대해 “45점(낙제점) 정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노사갈등 관리라는 측면이 완벽하게 조정자의 역할에 서기 힘든 만큼 한쪽으로부터의 일정한 비판이나 비난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갈등의 골이 상당히 깊어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반면 재계는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전경련 이규황 전무는 “공무원노조 대응 과정에서 법과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호평하고 “앞으로도 법과 원칙을 지키면서 노사 자율해결에 맡기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또 경총 김정태 상무도 “나름대로 균형감을 갖고 대처해 왔는데 앞으로도 노사를 함께 아우르는 합리적 정책을 펴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그간 정부가 친노(親勞) 정책을 펼친다는 불만을 토로해 왔던 재계의 반응으로 볼 때 이같은 변화는 상당한 호평으로 읽을 수 있다.


따라서 노동부가 향후 어떤 평가를 받느냐 하는 부분에 있어서 노동계와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노사갈등 관리라는 측면에서 볼 때는 지속적으로 노동계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고용정책 만족도는 ‘바닥’

정책적인 측면에서 노동부의 또다른 아킬레스건은 고용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노동부가 실시한 노동정책 방향 설문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설문의 대상은 PCRM 고객 (학계, 노, 사, 언론계, 유관기관 등)과 노동부 정책자문위원이었다.


그 결과 일자리 만들기 정책에 대한 만족도는 바닥 수준이었다. (PCRM 고객 39.3%, 정책자문위원 53.6%) 문제점으로 지적된 고용서비스 인프라 미흡, 일자리 나누기 성과 부진, 현장수요에 부합하는 직업능력개발 부진 등은 고용서비스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용없는 성장과 비정규직의 확산으로 인한 고용 양극화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당장 피부에 와닿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고용정책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면 노동부에 대한 ‘우수’ 평가는 자화자찬에 그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보호 정책과 관련해서도 만족도가 낮았다. (PCRM 고객 50.4%, 정책자문위원 46.4%) 이 부문은 최근 정부의 비정규직 보호정책이 재계 편향적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을 반영하듯 재계는 만족도가 60.2%에 달한 반면 노동계는 불만족도가 73.5%에 달했다.


올해도 노동부 업무의 핵심은 역시 노동시장 정책에 있어서의 고용서비스, 그리고 노사관계 정책이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적극적 고용정책이 최우선 과제로 조사됐고, 근로계층간 격차 완화 및 취약 근로자 보호, 그리고 협력적 노사관계가 다음으로 꼽혔다.


결국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그 일자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고용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시스템화 하는 것, 그리고 노사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한 중재자의 역할이 노동부에 주어진 임무인 셈이다.

 

고용창출에 초점 맞추고 큰 틀 노사관계 모색해야


윤성천
·노동부 정책자문위원장
·광운대학교 법학과 교수


- 현재 노동정책의 문제점은.

 

노사분규는 사전 예방에 역점을 둬야 하는데 사전 예방 기능은 부족하고 사후 처리만 하고 있는 게 문제다. 정부가 노사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말로만 하지 행동은 부족한 것 같다. 신노사문화 행사 같은 곳에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챙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또한 노동위원회의 전문성과 인원을 대폭 늘려야 할 것이다. 현안이 되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면 차별 구제 신청이 밀려들어올 것이다. 현재의 인원으로는 불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노동부가 노동위원회를 하부기관으로 보는 상태에서 조직 확대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 노동부의 역할에 대해 평가한다면.


장관 수명이 짧아 소신 있게 일하기 힘든 구조다. 정부 정책은 일관성과 지속성이 중요한데 장관이 바뀔 때마다 변화하고 있어 문제다. 게다가 그간 노동부 장관은 지역 안배, 정치적 고려에 의해 정해지다 보니 노사관계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등용돼 정책면에서 경제부처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정책 전문성과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장관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 올 한해 노동부가 노사, 노정간 갈등 조절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다.


노동부만의 한정된 업무로 봐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표출이다. 특히 노사관계는 당사자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정부도 그간 대중요법에 급급해 갈등을 초래한 면이 있다.


- 2005년 노동정책의 방향은.


국민 경제의 침체와 FTA 등 외부환경 변화에 따른 노사분규가 많아질 것이다. 정부는 고용창출 문제에 중점을 둬야 한다. 구직센터, 고용안정센터가 근본적인 대안이 아니다. 올 초 노사정 간에 맺은 일자리 협약을 구체화해야 한다. 요즘 신노사문화에 참여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는 모습은 긍정적이다. 큰 틀에서 새로운 노사관계를 모색하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