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황제 갈바를 추억하며
로마 황제 갈바를 추억하며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8.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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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하승립
이명박 정부가 공식 출범했습니다. 기사 마감 시점인 지금까지 출범 사흘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왠지 느낌은 한 6개월 정도 지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인수위 시절부터 하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아서겠지요.

 

이명박 정부는 앞선 세 정부와는 달리 정부의 이름 앞에 다른 수식어를 달지 않기로 한 바 있습니다.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할 것이고, 이명박 대통령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데 벌써 그 어떤 정부보다도 수많은 별칭들을 가지게 됐습니다. ‘고소영 S(고대-소망교회-영남-서울시청) 라인 정부’ ‘강부자(강남 부동산 자산가) 정부’ ‘강금실(강남 금싸라기 땅 실소유주) 정부’ 등 유명인의 이름을 빗댄 얘기들에서는 작명가의 재치가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1억 달러 내각(당초 내정했던 국무위원들의 총 재산을 합칠 경우 962억 원)’이라는 말도 유행어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1억 달러 내각’은 출범도 하기 전에 벽에 부딪혔습니다. 이춘호 여성부 장관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남주홍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줄줄이 청문회도 하기 전에 낙마한 것입니다. 이들의 초기 항변처럼 부자라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문제는 그 과정이겠지요. 불법 혹은 편법으로 부를 축적했다면 그것이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남들도 다 하는 것’이라는 마인드는 더욱 위험합니다. 적어도 그들이 한 나라의 장관이 되고자 했다면 말입니다.

 

이들의 문제를 더욱 크게 만든 것은 아마도 그들의 ‘입’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정부 시절 ‘대통령의 입’을 둘러싸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어째 이 정부는 장관 후보자들이 단체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자녀의 국적 포기에 대해 “영주권을 가진 것이 죽을 죄라도 지은 것인가”라고 답하고, 오피스텔 투기 의혹에 대해 ”유방암 검사에서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자, 남편이 감사하다고 기념으로 사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후보자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할 뿐 투기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논문 표절 의혹은 “열정으로 봐달라”고 하고 공금유용 의혹은 “잠시 보관하고 있었을 뿐”이랍니다. 심지어 2억 원 짜리 골프 회원권은 “싸구려”로 취급받습니다.

 

노동부 장관 내정자가 노동부 고용정책심의위원 시절 한 번도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고용에 대해서 잘 몰라 회의에 가지 않았다”고 답하는 대목에서는 우려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맡을 부처의 가장 중요한 업무를 모른다고 실토한 것입니다. 이쯤 되면 ‘도덕성’보다는 ‘능력’에 초점을 맞춰달라는 주문조차 무색해 집니다.

 

좋은 결정을 내리거나 좋은 선택을 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잘못된 결정이나 선택을 빨리 알아차리고 바로잡는 것입니다. 로마 제국의 6대 황제였던 갈바는 네로에 대한 반대급부로 다음 황제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갈바는 로마 시민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인심을 장악하기 위한 정책을 게을리 하고, 협력자 인선이나 재정 재건책에도 실패’하는 바람에 7개월 만에 실각하고 맙니다. 그에 대해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렇게 평했습니다.

“통치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통치자가 되었어야 했다고 모든 사람이 생각했을 인물이다.”

이명박 정부가 부디 성공한 정부로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