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노조간부의 ‘특별한’ 리더십-서울지하철노조 송동순 지회장
평범한 노조간부의 ‘특별한’ 리더십-서울지하철노조 송동순 지회장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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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답이 있다는 말이 뻔하다’면 정말 ‘뻔뻔한 간부’ 아닌가요?


송동순(35) 지회장은 ‘어린’ 조합간부다. 97년 입사해 8년차가 되지만 대규모 신규인력 충원이 별로 없었던 서울지하철에서는 거의 막내급에 속한다. 2정보통신지회 내에 자신의 동료·후배를 합쳐도 15명을 넘지 않으니 대부분 입사선배, 노동조합 활동 선배들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정작 본인은 손사래를 치지만 그에 대한 조합원들의 호평을 듣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열정을 가진 사람”, “어리지만 선배들을 이끌기에 무리가 없는 사람”, “지시와 통제로 조합원을 동원하지 않는 간부”라는 현장 조합원들의 반응이 지회장으로서의 그의 리더십을 그대로 보여준다.


송 지회장의 여섯 가지 리더십 노하우를 들여다 보자.

 

01 답은 현장에 있다
회의 등의 조합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매일 아침 9시 전에 현장으로 출근한다. 조합원들이 역 구간별로 모여 있는 다른 지부와 달리 정보통신지회의 조합원들은 3, 4호선 모든 라인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사무실에 앉아서는 만나기가 어렵다.


오늘은 동작역, 내일은 약수역…, 이렇게 스케줄을 짜서 아침 일찍 들어가야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조합원과 아침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조합원들을 만날 수 있다. 아침에 사정이 여의치 않은 날은 저녁 7시쯤 현장을 방문한다. 이때도 오후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조합원과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하는 조합원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조합원들을 만나면 10~20분 정도 조합사업 등을 설명하고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 고충 등을 듣는다. 짧은 시간이라도 꾸준히 조합원들을 만나면서 얻은 지지와 신뢰가 송 지회장의 활동 밑천이다.

 

02 대화는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굳이 문제부터 들추지 않는다
어떤 현장에 특별히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소리가 들리면 주로 밤에 근무지를 찾는다. 야간 작업자들과 함께 눈을 붙이기도 하고, 손이 모자랄 때는 작업을 거들기도 한다.


야간 작업조는 다른 근무조에 비해 덜 바쁜 편이라 좀더 여유를 가지고 대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다고 해서 “요즘 이런 문제가 있다면서요?”라고 본론부터 들추지 않는다. 어떨 때는 아예 문제점에 대해서 한마디도 안하고 그저 함께 잠만 잘 때도 있다. 송 지회장이 설명하는 이유는 이렇다.


“모든 대화는 신뢰에서 시작되기 때문이죠. 어떨 때는 문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들춰내다 대화를 아주 망쳐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사람들의 마음 속에 파고들어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됩니다.”

 

03 조합간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사실 송 지회장은 입사 전부터 노동운동에 작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처음 지회장 출마를 권유받았을 때도 그는 정중히 거절했다. “적어도 현장에서 10년은 굴러야” 제대로 된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을 떠나서 이곳은 내 직장이고 삶의 터전이죠, 그러니까 현장에 적응한다는 것은 꼭 조합활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삶을 진지하게 살기 위해서도 아주 중요한 문제에요.”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노동조합 간부로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자신의 일과 삶 속에서 늘 한 발 나가려고 하는 사람으로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04 조합활동에서 개인적 인간관계는 배제한다
자신보다 훨씬 선배인 조합원들을 이끌어야 하기 때문인지 그는 겸손함이 몸에 배인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필요할 때는 단호함도 잃지 않는다.


지난해 열린 지회장 선거 유세 때 그는 “과거에 활동했던 선배들의 입김에 휘둘리거나  소위 말하는 ‘조종’을 받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합활동을 오래했던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송 지회장을 추천했고 워낙 인간관계가 좋던 그라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조합 활동에서만큼은 선후배 관계를 떠나 철저히 ‘조합원’을 중심에 둬야 한다고 믿는다.

 

05 일사불란함이 조직의 동원력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지난해 지하철파업은 3일 만에 ‘맥없이’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자발적인 현장 복귀가 이어지는 가운데에서도 2정보통신지회의 조합원 중에는 먼저 파업대오에서 이탈한 사람이 없었다.


그는 노동조합의 조직력이 일사불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중에 파업 끝나고 ‘지회장이 찍어 누르고 복귀하지 말라고 강요했으면 그냥 복귀해버리려고 했는데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라도 먼저 복귀 못 하겠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필요할 때는 조합원을 강력하게 조직하고 한자리로 모을 수도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이 양적인 ‘동원’의 문제나 눈에 보이는 질서일 필요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금 흐트러져 보이더라도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하나로 모이는 생각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06 조합원의 참여 없이는 ‘입장’을 정리하지 않는다
지난 선거 때 송 지회장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지회의 입장’이나 ‘지회장의 입장’을 정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요즘처럼 상급단체든 단위노조든 ‘입장 정리’가 빈번한 것을 보며 그는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지회의 입장을 정리해서 발표하는 것은 쉽죠. 하지만 조합원이 내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참여하지 않는 문서상의 입장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렇게 하다 보니 힘이 들 때도 있다. 때로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도 있고 일처리가 더딘 경우가 많다. 강력하게 밀어붙이라는 조합원들의 요구 때문에 힘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노동조합 활동은 1~2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믿음은 확고하다.

 

어떻게 보면 송동순 지회장에게는 ‘그만의 노하우’라고 부를 특별한 무엇은 없는 것도 같았다. 그 스스로도 조합 간부라면 누구나 하고 있는 생각일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조합간부와 조합원의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때에 “지시와 통제로 조합원을 동원하지 않는 간부”라는 현장 조합원들의 평가는 정말로 특별한 것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