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불? 넌 사고? 나 소방관이야!
너 불? 넌 사고? 나 소방관이야!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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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취재_소방공무원 25시
재산과 안전 지키는 소방공무원
일은 많고, 환경은 열악하고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80년대였다면 ‘짱가’를 찾았을 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은? 누구나 119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119는 만능 해결사다.


불이 났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기르던 강아지가 잠시만 보이지 않아도 찾아달라고 119에 전화한다. 119는 그만큼 국민들의 생활 속에 없어서는 안 될 공기와 같은 존재다.

하지만 소방공무원들에 대한 대우마저 공기하고 똑같다. 당장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지만 평소에는 그 중요성을 늘 잊어버리기 마련인 공기. 소방공무원들도 당장 없으면 불편하기 짝이 없을 테지만 그 소중함은 늘 뒷전이다. 종종 소방공무원들의 열악한 현실과 안타까운 순직 소식이 전파를 타기도 하지만 세간의 관심은 그때뿐이다.

소방공무원들에 대한 인식도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얼마 전 있었던 숭례문 화재사건처럼 대형 사고가 터지면 가장 먼저 비난의 화살을 받는 것도 소방공무원이다. 때론 공무원이기 때문에 ‘철밥통’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 일쑤다.

 

 

마음까지 구해야 진짜 구급대

 

3월 14일 저녁 7시, 도봉소방서를 찾았다. 이날도 이들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팽팽한 긴장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언제 어느 순간에 출동 명령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이들의 일상은 긴장의 연속이다. 상황실에는 관할구역이 상세하게 표시된 지도가 걸려 있고, 근무자들은 관내 구석구석을 수시로 모니터하고 있다.

 

가장 출동이 잦은 곳은 구급대. 위급환자가 발생하면 구급차와 함께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하는 이들이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출동하는 우리 입장에서 보면 5분은 긴 시간이 아닐 수 있죠. 하지만 기다리는 환자에게는 어떻겠습니까? 5분이 5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죠. 그런 환자들을 생각하면 한시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구급차를 운전하는 방철주 소방교의 말이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출동 사이렌이 울린다. 3명으로 구성된 구급반이 곧바로 구급차에 오른다. 목적지는 관내에 위치한 S아파트. 구급차에 설치된 내비게이션은 상황실과 연결돼 있어 신고한 환자의 전화번호와 위치가 함께 뜬다. 구급대원들은 구급차가 이동하는 동안 환자 보호자와 통화하면서 상태를 파악하고 필요한 장비를 머릿속에 그린다.

 

신고한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필요한 장비를 챙겨들고 뛰어간다. 구급차 안에는 응급처치에 필요한 의료장비가 거의 갖춰져 있다. 구급대원들도 응급구조사 1급 자격증과 2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자격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지고 보살피는 마음가짐. 도착 전 통화하면서, 응급처치를 하면서, 병원으로 이동하면서 이들은 끊임없이 환자와 보호자를 안심시킨다.

 

갑작스런 협심증으로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기본적인 응급처치를 마치고 구급차에 환자를 싣는다. 병원 응급실로 출발해 이동하는 도중에도 응급처치는 계속된다. 의사와 통화하면서 진통제를 투약하는 한편 걱정하는 보호자를 달래는 것도 구급대원들의 몫이다.

 

응급실에 도착하자 미리 연락을 받고 대기하고 있던 의료진이 환자를 인계받는다. 병원에 환자의 상태와 응급처치 내용까지 세세하게 인수인계를 마치고 겨우 한숨을 돌린다.

 

모든 조치를 마친 후 소방서에 복귀하자마자 출동상황을 꼼꼼히 정리한다. 출동 사이렌이 울린 때부터 복귀한 때까지 시간대별로 환자의 상황과 조치한 내용을 자세하게 기록한다.

 

잠시 한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이내 다시 출동 사이렌이 울린다. 이번엔 술 마시고 걷다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진 환자다. 출동해 부목으로 다리를 고정시키고 병원으로 옮기면서 가족에게 연락한다.

이번엔 일 처리가 비교적 빨라 복귀도 빠른 편이다.

 

응급환자들의 경우는 출동에서 복귀까지 1시간 정도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구급대에 신고하는 사람들 중 30% 정도가 응급환자다. 나머지는 급하지 않은 이들이다. 구급대원 이효대 소방사는 급하지 않은데도 구급차를 부르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구급대에 신고하는 사람들이 모두 급한 환자들은 아니에요. 열에 일곱은 그다지 급하지 않죠.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할머니 한 분이 전화하셔서 출동했는데 자기 손자가 아프다는 거예요. 급하게 가야 하는데 구급차가 제일 빨리 가니까 신고했대요. 보호자도 없는 것도 아닌데 자기가 꼭 가봐야 한다는 거예요.”

 

구급대원들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구급차를 택시로 이용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그중에는 병원에 가야 하는데 혼자서는 움직이기 어려워 119에 도움을 청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단지 구급차를 타면 빨리 갈 수 있어서 꾀병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단다. 아프다고 신고해 어느 병원으로 가자고 했는데 병원에 데려다주고 나면 말짱해지는 사람들 말이다.

 

다음 근무조에게 인수인계하고 업무를 마무리했다. 이번 근무조는 3월 14일 오전 9시부터 3월 15일 오전 9시까지 근무하는 동안 16번 출동했다.

 

구급대원들은 하루에 몇 번이나 출동할까? 적은 날은 10번이 안 될 수도 있고 많은 날은 21번까지 출동한 적도 있단다. 보통 한 번 출동에 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면 하루 종일 밖에 있었다는 뜻이다. 

 

구급대는 3개조가 24시간씩 돌아가며 근무한다. 구급 출동이 많아서 2교대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기 때문에 올해부터 구급대 근무를 3교대로 바꿨다. 2교대에 비해 급여가 줄기 때문에 3교대 근무를 반기지 않는 이들도 있긴 하지만.


 

목숨 걸고 화마와 싸운다

 

구급대에 비하면 진압팀의 출동은 많지 않다. 화재 출동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린다. 지휘차와 펌프차가 출동했다. 화재 장소는 시장 내에 있는 건물. 좁은 시장골목은 양 옆으로 주차된 차량들과 길을 점령한 채 진열된 물건들로 차 한 대가 지나가기 힘들다. 어렵사리 화재현장에 도착하니 불은 이미 진화된 다음이다. 큰 불이 아니어서 초기에 진화된 게 천만다행이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현장 조사를 마치고 복귀해서 한숨을 돌리는데 이내 출동 사이렌이 다시 울린다. 이번엔 놀이동산 주차장 옆 야산에 불이 났다. 출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소방차 옆에는 출동할 때 빠르게 입을 수 있게 방화복이 입기 편한 상태로 놓여 있다. 분초를 다투는 출동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함이다.

 

출동은 빠르게 했건만 길이 막혀 가는 길이 더디다. 바싹 마른 낙엽에 불이 붙으면 큰일인데 길은 뚫리지 않고 출동하는 대원들은 애가 탄다.

 

출동한 지 10여 분이 지나 화재현장에 도착했다. 인근의 119안전센터(예전의 소방파출소)에서 출동한 소방차들이 먼저 도착해 불을 끄고 있다. 큰 불로 번지기 전에 불길을 잡아서 그나마 다행이다. 

 

잔불이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주변에 충분히 물을 뿌린다. 화재조사팀이 완전히 진화된 현장에서 조사를 마치고 난 후 복귀한다.

 

이들 소방대원들은 화마와의 싸움에 목숨을 내걸고 있다. 가끔씩 화재를 진압하다 목숨을 잃는 소방대원이 뉴스에 나온다. 그게 자신일 수도 있다. 항상 위험을 안고 근무하지만 그렇다고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근무는 24시간씩 2교대로 이뤄진다. 24시간 근무하고 다음날 24시간 휴식하는 형태다. 휴식이라고 해서 완전히 쉬는 건 아니다. 관할구역 내에 사람이 많이 몰리는 취약지역이나 대형 마트 같은 주요 건물을 순찰하고 점검하는 것은 비번이라고 빠질 수 없다. 15일 오후엔 누군가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피해보상이 적다며 지하철을 폭파하겠다는 협박을 했다. 이럴 땐 순찰도 한층 강화된다.


 

위험이 있는 곳에 구조대 있다

 

구조대는 구급대처럼 자주 출동하는 건 아니지만 24시간 출동 대기상태를 유지한다. 이들은 화재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것은 물론 위기에 처한 모든 곳에 출동한다. 도봉소방서 관내에는 직할 구조대와 도봉산에 상주하는 산악구조대 등 2개의 구조대가 있다.

 

긴급한 출동 명령이 떨어진다. 북한산 등산객 한 명이 하산하다가 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이다. 도봉산 산악구조대가 출동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려 직할 구조대가 출동한다. 차량은 백련사까지밖에 올라가지 못한다.

 

백련사에 구조대 차량을 세우고 구조장비를 챙긴다. 들것과 에어부목, 간단한 응급약품을 챙긴 구조대원들은 이미 어둠이 내린 산길을 빠르게 오르기 시작한다. 구조대만을 기다리고 있을 환자를 생각하면 잠시도 쉴 겨를이 없다.

 

넓은 산 속에서 사고 위치를 정확하게 찾기가 그리 쉽진 않다. 신고자와 계속 통화하며 사고 위치를 확인한다. 신고자가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지 못해 한참을 돌아서 사고 위치에 도착하니 등줄기는 벌써 땀으로 흠뻑 젖은 지 오래다.

 

숨 돌릴 시간도 없이 바로 환자의 상태를 살핀다. 심하게 접질려서 발목이 퉁퉁 부어올라 있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압박붕대로 부상부위를 감아둬서 더 악화되지는 않았다. 다행히 뼈가 부러진 것은 아니지만 걸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서둘러 가지고 간 응급약품 중 스프레이소염제로 응급처치를 한다.

 

환자가 걸을 수 없다고 판단한 순간 지체 없이 들것을 조립한다. 앞뒤로 두 명이 어깨에 멜 수 있게 만들어진 들것이다. 어둠 속이지만 구조대원들의 손길은 한 치의 빗나감도 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조립을 끝낸다. 이어서 환자를 들것에 고정시키고 두 명의 구조대원이 들쳐 멘 채로 발걸음을 옮긴다.

 

처음 오르던 때와는 달리 발걸음이 무척 조심스럽다. 한 순간 발을 헛디디기라도 하면 험한 산길에서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길을 더듬어 백련사 입구에 도착했다. 구급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구조반장은 등산객들에게 주의사항을 일러준다.

 

“산에 오를 때는 긴장을 하기 때문에 사고가 잘 나지 않습니다. 사고는 내려오는 길에서 자주 생겨요. 긴장도 풀리고 다리에 힘도 풀리기 때문이죠. 산에서는 일찍 어두워지는데 아직 환하다고 계속 머물러 있으면 길을 잃기 쉬워요. 조금 아쉬움이 남더라도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오는 것이 안전합니다.”

환자가 구급차량에 탈 때까지 걱정스레 지켜보던 구조대원들은 차량이 출발하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모든 상황이 마무리 된 후 소방서로 돌아온 시각은 출발한 지 2시간 가까이 흐른 뒤다.

 

구조대는 다른 소방공무원처럼 24시간씩 2교대로 근무한다. 구조대가 출동하는 곳은 위험이 항상 도사린 곳이다. 화재현장에서 치솟는 불길을 뚫고 사람을 구하는 일부터, 조난당한 등산객을 구조하는 일이며 고장 난 엘리베이터에 갇힌 사람들을 구해내는 것까지 각종 재난상황이 발생한 곳에는 어김없이 구조대가 출동한다.

 

이런 구조 업무의 특성상 구조대원들에게는 강인한 체력이 요구된다. 때문에 군 특수부대에서 3년 이상 근무하고 그중 1년 이상을 하사 이상 계급으로 근무한 이들에게만 응시자격이 주어진다. 구조대원이 된 이후에도 이들은 끊임없이 체력을 단련하고 각종 구조장비를 능숙하게 조작할 수 있게 훈련한다.

 

국민들의 재산과 안전을 지키는 일에는 시간과 장소가 따로 없다. 소방공무원들의 긴장도 밤낮의 구별이 없다. 물론 24시간 동안 계속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체력단련을 위해 운동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쉬는 동안에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출동 사이렌이 울리면 소방공무원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1분 이내에 출동한다. 이들의 1분은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1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