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시장의 고공점프
위태위태한 외줄타기
영화시장의 고공점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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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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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TV가 대대적으로 보급될 때까지 영화는 사람들에게 가장 즐거운 오락이었고, 유행을 선도하는 아이콘으로 제1의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TV가 대중화되고 한국영화의 완성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1980년대 초반까지 이소룡과 홍콩 느와르, 헐리우드 액션의 매력이 한국을 휩쓰는 동안 우리 영화 산업은 긴 터널을 지나왔다.


하지만 최근 5년간의 영화산업 발전은 그 때 그 시절과는 확연히 다르다. 이제 우리나라 영화업계는 수출과 내수시장을 거론하며 ‘산업’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갖추어 가고 있다.


이러한 눈부신 수직상승은 소규모 시장이 형성됐던 70년대와는 다르게 지하철 노선처럼 얽히고설킨 구조와 거대한 시장을 추스르는 업계의 역량을 필요로 한다.


‘깊고 습하고 어두운’ 영화 스텝의 삶과 몇 개 안되는 메이저배급사에 휘둘리는 시장으로 대변되는 영화산업의 구조적 모순, 한국 시청각 산업 개방의 자물쇠인 스크린쿼터제 폐지논란으로 대변되는 한국영화의 위기 속에서 영화업계는 지금 어느 때보다 분주하고 치열하다.

 

한국영화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에 서다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가 마의 숫자로 불리던 100만 관객을 돌파할 때까지도, 외국 직배사와 헐리우드 영화의 공세에 한국영화는 점유율이 15%까지 하락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서편제>가 커다란 이슈와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한 이후, 우리나라 영화계는 새로운 가능성을 투자자들에게 인식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다. 이로 인해 시작된 대기업들의 투자는 침체됐던 한국 영화산업 내에서 역량 있는 감독과 젊고 창의적인 영화 인력들을 불러 모을 수 있었다.


<서편제>가 이러한 반전을 불렀다면, 강제규 감독의 <쉬리>(1999)를 시작으로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 2000), <친구>(감독 곽경택, 2001)가 차례로 대박을 터뜨리며 영화산업에 대한 논의점을 모으는 계기가 됐다.


영화산업 발전에 대한 논의와 대기업의 투자가 체계적으로 이뤄지면서 소위 투자-제작-배급을 모두 총괄하는 메이저 배급사가 구도를 갖추기 시작했고 멀티플렉스 극장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스크린 수의 증가를 보면 1980년부터 95년까지 302개에서 577개로 275개 증가한데 그친 반면 2003년에는 총 스크린 수가 1132개에 달해 비약적인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표1 참조)


이에 대해 영화진흥위원회 김미현 정책연구팀장은 “멀티플렉스 극장의 증가로 극장 수에 비에 상영관 수가 크게 늘고 있다”며 “하지만 영화산업과 극장 모두 시기적 등락이 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전망했다.


이런 와중에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 2002), <실미도>(감독 강우석, 2003), <태극기 휘날리며>(감독 강제규, 2004) 등 최근 영화들의 성장세는 영화의 산업화에 박차를 가하며 해외수출 등 대외적인 한국영화의 이미지 상승에 큰 역할을 했다.(표2 참조)


하지만 한국영화계가 ‘수공업’을 넘어 ‘산업’으로 자리잡으려면산업 내의 투자, 새로운 수익구조를 위한 한 차례 숨고르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대기업의 시장지배력 강화
헐리우드 영화와 직배사의 지배구조가 굳어져, 현재 자국 영화 시장이 채 5%에도 이르지 못하는 벨기에 정부가 최근 ‘막스와 보브’라는 작품에 투자해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해 전국에서 단 600여명만이 볼 수 있었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양기환 사무처장은 “이것이 직배사와 한국의 소규모 배급사와의 경쟁구도가 향후 어떤 방향으로 나가게 될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설명했다. 미국측이 한미 투자협정 체결을 앞두고 영화시장 개방 압력을 더욱 강화하는 가운데 대응책 마련이 시급할 수밖에 없다.


2004년 한국의 배급사별 점유율을 보면 CJ엔터테인먼트와 시네마서비스, 쇼박스의 3두 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범죄의 재구성>(감독 최동훈, 2004)을 흥행시키면서 쇼박스가 양강구도에 진입함으로써 멀티플렉스를 중심으로 영화산업에 진출한 CJ, 동양, 롯데 등 대기업의 투자-배급-상영 체계에 대한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김미현 팀장은 “시장 발전에 있어서 메이저 자본은 발전을 리드하는 역할을 하며, 한국 영화의 성장에 큰 역할을 해 온 것은 사실”이라고 전제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김 팀장은 “메이저 자본이 실제로 투자한 수치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데에 그 문제점이 있다”고 분석한다. 또한 “대기업 이외의 나머지 투자자들의 이익이 제대로 분배되었는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고 덧붙였다.


이렇듯 메이저 자본에 산업이 종속되면, 산업적 자생력이 없어지게 된다.
MK픽처스(명필름&강제규 필름)의 이은 대표는 “산업이 성장하면, 이에 따라 투자 금액도 높아지고, 산업에 종사하는 인원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며 “메이저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우,  만약 1년에 20여개의 한국영화에 투자하는 메이저자본이 빠져 나갔을 때 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지적했다.

 

수익과 고용, 어설픈 외줄타기
이렇듯 불안정한 수익 구조 안에서 안정적인 고용은 물론, 제작 여건 또한 흥행과 실패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양기환 사무처장은 “지금 영화 업계에서 돈을 버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 것 같으냐”는 질문을 던지고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것은 비단 스텝뿐만이 아니라 다수의 제작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제 막 협회를 구성해 활동을 시작한 영화스텝 4부연합 역시 아직 고용에 대한 안정성을 스스로 확보하기에는 걸음마 수준이다. 


이은 대표는 스텝의 처우개선의 원론적 개선방향에 대해 “배우나 감독이 영화 제작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인 만큼 지급되는 금액 역시 이에 비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이제 각기 연합체를 구성한 만큼 서로의 전문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미현 팀장은 “우리나라 1000여개의 제작사 중 한해 5편 이상을 제작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진 제작사는 다섯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며 “게다가 이러한 영화사 역시 한 작품이 실패하면 리스크를 만회하기 위해 한동안 숨고르기를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현실에 대해 이은 대표는 “하나의 작품이 올라가서 이익을 봤을 경우 제작사에 돌아오는 지분이 전체 이익의 10~20%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꼽았다. 영화 수익에서 가장 큰 수익을 얻는 것은 극장인데, 그 쏠림 현상은 심각하다는 것.
실제로 극장의 이익배분율을 살펴보면 98년 24.3%에서 2003년 53.3%로 급상승한 것을 알 수 있다. (표3 참조)

 

스크린쿼터, 이제 새로운 시나리오 짜야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양기환 사무처장은 “한 줌도 안 되는 딴따라들이 목숨 걸고 그것도 8년이란 긴 세월동안 스크린쿼터제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절박함은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한 다른 나라들이 점유율 5%를 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이은 대표는 “스크린쿼터제가 폐지된다면 되는 대로 비디오나 팔아서 제작사의 명목을 유지하든지, 방송쪽이 다행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면 그 쪽으로 업종전환을 할 것”이라며 폐지 이후의 암울한 전망에 대한 대답을 대신했다.


헐리우드의 자국 영화 점유율은 95%에 이른다. 자막을 본다는 것 자체가 낮선 그들의 영화가 세계 영화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우리 영화의 눈부신 성장 속에서 더욱 거센 압박이 밀려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양기환 사무처장은 “예술성과 산업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시청각산업은 비단 극장에서 돈을 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며 “우리의 문화, 사상, 민족성이 녹아 있는 방송, 음악, 영화가 헐리우드시장에 점령된다면 그들 식으로 먹고 생각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방식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금 스크린쿼터연대는 새로운 ‘문화 FTA’를 준비하고 있다. 공동제작협정을 통해 각 나라의 문화정책을 보존하면서 서로 나누는 새로운 형식의 대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양기환 사무처장은 “문화는 ‘교류’의 대상이지 ‘교역’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대안은 있을 수 있지만, 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손을 잡는 것만이 파고를 넘는다
‘만들었으니 봐 달라’는 것이 이제 먹히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예술적인 가치, 한국적인 가치를 가진 영화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한국영화의 토대가 만들어지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지난해 세계 3개 영화제를 휩쓴 <올드보이>(감독 박찬욱, 2003, 칸), <사마리아>(감독 김기덕, 2003, 베를린), <빈집>(감독 김기덕, 2004, 베니스) 등의 성공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들 뿐만 아니라 올 베를린 영화제에서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임권택 감독, 프랑스로부터 한없는 애정을 받고 있는 홍상수 감독 등의 성과는 국제 영화계에서 한국 영화의 입지를 넓혔다.


그러나 <올드보이> 정도를 제외하면 국제적 관심작들은 국내 관객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특히 지난해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감독 김동원, 2003)이 상영권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자를 감수하고 예술영화를 상영해 줄 스크린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영화의 리스크를 감당하는 투자자들의 영화 투자에 대한 의식 성장과 국가적인 지원 또한 한국영화의 체력을 키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영화는 산업이되 산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문화이되 문화에 머물지 않는다.
미국이 경제적 공략에 앞서 언제나 ‘헐리우드 영화’를 먼저 진입시킨 것이나, 최근 ‘한류 열풍’이 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국가 이미지 전체를 높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영화 산업’을 위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 지원책과 영화업계 종사자들의 노력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