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추억을 카트에 싣고 열차는 달리고, 그들은 ‘삶’을 판다
당신의 추억을 카트에 싣고 열차는 달리고, 그들은 ‘삶’을 판다
  • 라인정 기자
  • 승인 2008.07.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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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817km ‘걷는’ 코레일유통본부 사람들
‘열차 내 판매원’ 서울-부산 동행취재기

열차를 타면 한 번은 만나게 된다. 때로는 여행길에 스치는 움직임의 하나일 뿐이지만, 때론 반가운 얼굴이다. 은빛 카트에 각종 음료수, 과자, 맥주를 빼곡히 실어 우리의 여행길의 ‘맛’을 더해주는 사람들. 바로 철도 공상자와 순직자를 위해 원호사업을 해온 홍익회로 시작해, 지금은 열차 사업뿐 아니라 역무위탁, 항만운송, 부동산, 하역 사업을 하고 있는 코레일유통본부의 영업사원들이다.

열차 출발 2시간 전, 분주한 그들

낮 12시20분 서울역을 출발하여 17시 58분 부산역에 도착하는 무궁화호 1209편 열차. 이 열차에 오르기에 앞서, 서울역사 근처 코레일유통본부 서울지부 사무실에서 이 열차의 식음료 판매를 담당하는 최성규 영업팀장을 만났다. 열차 출발 2시간 전, 최 팀장은 1층에 위치한 창고에서 당일 판매할 물건들을 옮기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본사에서 열차 시간별로 탑승 인원과 판매량을 예측하기 때문에 축적된 데이터에 따른 선호품 위주로 옮겨 담는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찐 계란과 말표 사이다’의 자리를 이어받은 요즘 최고 인기 품목은 단연 건강차 음료류. 캔맥주는 예전에 비해 판매량이 줄었다. 최 팀장은 “지금은 건강을 많이 생각하잖아요. 옛날처럼 맥주 마시며 왁자지껄 여행하는 이들이 거의 없죠. 분위기 자체가 달라졌으니까”라고 말한다. 울릉도 오징어와 갓김치는 지역 특산품으로 인기고, 계란은 맥반석으로 구워진 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승객들이 찾지 않는 물품은 재빨리 새로운 기호품으로 대체한다.

열차 출발 30분 전, 늦어도 내년이면 ‘까페열차’로 대체돼 사라질 거라는 구식 발전차의 동력실에 오른다. 더운 공기로 가득 찬 3평 남짓 공간에 하나 둘 과자와 음료 상자가 쌓이고, 갑갑한 철창 사이로 분주히 탑승하는 승객들이 비친다. 최 팀장은 “여기가 잠시나마 저희가 앉아 있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럴 틈도 거의 없지만…”이라면서 쿨팩(cool pack)을 담아 온 조그만 아이스박스 위를 가리킨다.

“도시락 왔습니다” “호두과자 있어요”

음료 통에 얼음을 쏟아 붓고, 카트에 가지런히 과자를 ‘세팅’한다. 매일 출발하기 직전, 최 팀장은 마음속으로 힘을 불어넣는다. 구호는 ‘오늘 하루도 무사히!’

열차는 덜컹대며 흔들리기 시작하고, 최 팀장은 태연히 도시락을 양팔에 가득 안고 문을 나선다. 식사 시간에 맞춰 제작한 맛깔스런 도시락은 직접 손으로 전달한다. 일정한 낮은 톤의 “도시락 왔습니다~!” 소리에 승객들이 하나 둘 시선을 마주하고, “여기요!”란 소리와 함께 도시락과 눈인사가 오간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한 차례 도시락을 판매하고, 본격적인 카트 판매를 시작한다. 7량 열차의 경우, 한 번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5~20분. 구매하는 승객이 많은 경우엔 잔돈을 거슬러주거나 중간에 떨어진 물품을 채우러 갔다 와야 하기에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서울 출발 1시간10분 후, 천안을 지나고 나선 막간을 이용한 먹거리를 파는데, 멘트는 예상하듯이, “호두과자 있어요~!” 호두과자는 선물용으로 인기가 아주 좋다.

달리는 열차의 좁은 통로로 먹거리를 가득 실은 카트를 움직이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경력 22년의 최 팀장은 여러 차례 시행착오를 겪고 이제는 열차를 ‘다룰’수 있다며, “지금은 열차의 커브 도는 시점까지 미리 느껴진다”고 말한다. 

사실 KTX가 등장하기 전, 새마을호와 무궁화호는 잘 나갔다. 한창 때, 많게는 한 열차에 4명의 직원이 탑승해 물품을 판매했다. 그 일을 혼자서 하는 지금, 물품량이 줄긴 했지만 해야 할 일은 크게 늘었다. 카트를 밀며 열차의 처음과 끝을 왕복하고, 그 후엔 물품을 채워넣고 정리해 다시 나간다. 여기에 카트판매 뿐 아니라 중간 중간 도시락과 호두과자 판매도 있고, 주요 역을 지날 때마다 이들을 찾는 새로운 손님들을 위해 다시 부지런히 카트를 밀고 나가야 한다.

보람과 고충도 함께 달린다

열차를 이용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존재는 친숙하다. 종일 카트를 밀고 오가면서도 승객들의 살가운 인사와 따뜻한 격려를 들으면 ‘밀 힘’이 난다. 열차 도착 시간을 승무원에게 묻기에 앞서 이들에게 묻는 경우도 잦다. 매일 다른 열차에서 일하기 때문에 해당 열차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할 경우도 있지만, 카트를 밀면서도 친절하게 티켓을 확인해 알려준다.  

일당백, 멀티(Multi)들의 직업병

하나_ 출발 전 물품 준비부터 판매, 도착 후엔 다시 창구로 남은 물품들을 운반하여 정리하는 작업까지 모두 혼자 한다. 종일 무거운 물품을 들어야 하기에 대부분 허리 통증을 호소한다. 정해진 열차시간에 쫓겨 일을 하다 허리를 삐끗하는 때가 많다고. 

_ 오늘은 오전 열차, 다음 날은 오후 열차, 그 다음날은 야간 열차. 같은 열차에 다시 오르기까지 한 달이 걸린다. 이러한 불규칙한 열차 시간에 맞춰 그때그때 끼니를 때워야 하기에 이들 대부분은 만성 위장병에 시달리고 있다.

_ 늘 엄청난 소음과 함께 하면서 청력 이상이 있다. 이들의 물품 탑재 공간인 동력실은 발전실 바로 옆에 위치하는데, 단 몇 분만 서 있어도 발전기 돌아가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질 정도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는 귀 먹었냐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기에 고충도 많다. 발을 쭉 뻗고 입구 쪽에서 안 비켜주는 승객, 건드리지도 않았는데 카트 때문에 다쳤다는 승객, 우스갯소리로 “옷깃만 스쳐도 누우려는 승객들이 있다”고 한다.

용산에 근무하는 경력 19년의 이신석 팀장은 “무조건 ‘야~!’로 시작하는 승객들도 있다”면서 되도록 존칭을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최 팀장의 동료인 정화식 영업팀장은 “호매행위를 못하게 하고는 있지만 하지 않으면 팔수가 없고, 이 일이 성과급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때도 있다”며, 날카롭게 반응하는 승객을 볼 때면 미안한 마음과 함께 한편으론 어깨가 축 쳐지기도 한다고 전한다. 

서울 출발 5시간30분 경과. 어느덧 부산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최 팀장은 호두과자를 들고 마지막 순회를 한 뒤 남은 물품들을 정리했다. 꼬박 반나절만에 도착한 부산역사에 발을 내딛으며 “하루에 14~15시간 열차를 타고 땅을 디디면 눈이 핑 돈다”고 말한다.

진정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부산역 인근엔 직원들의 휴식을 위한 숙소가 있다. 노조사무실 아래 두 개 층에 자리한 공간은 40여개의 호실이 있을 만큼 규모가 크지만, 지금은 이용하는 이가 거의 없다. 예전에 이곳은 숙박과 휴식을 취하려는 사원들로 북적이던 거대한 친목방이었고, 한 층 전체가 여성 승무원을 위한 공간이었다. 그간 구조조정으로 직원 수가 크게 줄었고, 특히 여성 영업사원은 40여 명에서 현재 3명만이 남았다.

코레일유통본부 노조는 현재, 철도공사를 상대로 중앙노동위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해 놓고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철도공사의 7개 자회사 중 또 다른 하나인 코레일투어서비스로의 고용 승계 문제가 모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이들의 밤낮을 지치게 한다. 몇 년 전, KTX 사업권이 코레일투어서비스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그나마 젊은 층의 인력이 대거 이동했고, 이후 대내사업의 일환인 역무위탁사업을 위한 또 한 차례의 인원 감축 이동이 있었다.

철도공사는 대부분이 45~52세이고 연차 15년 이상인 이들의 고용 승계 조건으로 전부 비정규직으로의 이전을 제시한 상태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직원들은 장시간의 격무와 더불어 고용 불안에 따른 스트레스로 지쳐가고 있다. 경부선의 경우, 6시간에 거쳐 부산에 도착한 후, 서둘러 저녁을 먹는다. 열차가 다시 서울을 향해 출발하기까지의 중간 시간은 3시간 남짓. 곧바로 발전차에 적재한 물품 관리와 출발 준비를 위해 열차로 향한다. “힘들죠. 그렇다고 이 나이에 받아주는 곳도 없고, 평생 이 일만 해왔는데 다른 데 가서 적응도 못할 것 같고. 애들은 커 가는데, 가장으로서 정말….” 모두의 한숨도 잠시, 열차는 다시 달리고 그들 역시 승객들의 6시간을 위한 카트를 밀기 시작한다.

‘열차는 여행’에서 이제 ‘열차는 생활’이라 한다. 그들의 일상은 더 이상 우리의 여행 속 추억의 한 켠이 아닌 동일한 생활의 한 겹으로 자리한다. 꽉 찬 일상 속의 그들이 잠시 여유를 갖고파 한 적이 있었다. 이따금 고개를 돌려 아름다운 풍경을 볼 때면 가족이 떠올랐고, 그들과 함께 할 최소한의 시간을 바랐던 적도 있었다. 지금은 모두 생존을 위한 투쟁에 떠밀려 사치스런 꿈이 돼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