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8.07.11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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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민주주의 가능성 연 촛불집회
대리인이 주인 뜻 배신하는 대의제 바꿔야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
촛불시위 현장에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노래가 인기가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이 과연 이 헌법 제1조의 정신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결코 그렇지 못하다.

국민주권 반영 못하는 대의제

오늘날 국가기구는 소위 3권 분립의 원칙에 따라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로 나누어져서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되어 있다. 여기에 더해서 언론은 국가의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제4부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행정부의 경우에는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과 관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국가기구는 대통령, 관료, 입법부, 사법부, 언론으로 이루어져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어느 것도 국민의 주권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을 보자. 촛불시위는 국민들이 뽑은 대통령이 국민들이 위임한 주권과 생명권을 수호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시작된 것이다. 관료들을 보자. 관료들은 국민보다 자기들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고, 지금까지 민영화 사유화 대운하 정책 등 신자유주의 정책에 가장 앞장서 온 집단이다.

입법부도 마찬가지이다. 국회의원에 일단 당선되고 나면 국민이 원하는 법은 아주 힘들게 만들고 국민이 원하지 않는 법은 너무나 쉽게 만든다. 지난 번 사립학교법이 개정되고 또 개악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된다.

사법부도 믿을 수 없다. 김명호 교수는 얼마나 억울했으면 석궁을 들었겠는가. 대기업 비자금에 대한 검찰과 특검의 수사결과를 보더라도 사법부의 본질이 분명히 드러난다. 일부 보수 거대 언론의 횡포에 대해서는 더 이상 예를 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 중의 하나는 우리의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형식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대의제란 국민이 선출한 소수의 대표자들이 국민을 대신해서 입법과 행정을 하는 제도이다. 그런데 이 국민의 대리인들은 국민을 배신하거나 부패하면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들의 결정에 의하여 막대한 이익을 볼 수 있는 이익집단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쇠고기 협정의 배후에는 미국 쇠고기 수출자본이 있다. 물, 전기, 가스 등 공기업 사유화에는 사유화로부터 이득을 보게 되는 세력이 있다. 이 자본들은 퇴직 후 자리 보장을 제공하면서 관료들이 사유화 정책을 추진하도록 유혹한다. 대운하 뒤에는 대운하 사업으로 수조 원의 이윤을 얻으려는 대자본이 있다. 이들은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대운하 정책을 추진하도록 음으로 양으로 로비하고 있다. 운하 주변 땅을 분양해 주면 얼마든지 운하를 건설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검찰 등의 사법부는 이미 재벌로부터 떡값을 타는 집단으로 타락한 상태이다. 대기업의 광고로 살아가는 언론은 대기업의 광고가 끊어지면 생존에 위협을 받게 되므로 대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대자본의 입장에서 수가 얼마 안 되는 대리인을 마음대로 조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87년 체제 넘어서는 새로운 체제 필요

이렇게 정부의 정책, 언론의 홍보, 사법부의 유리한 판결 등과 같은 특별한 조치를 받아서 얻는 특별한 이득을 일반적으로 ‘지대’라고 부른다. 지대는 불로소득이다. 공짜로 앉아서 버는 돈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다 탐을 낸다. 그래서 특별한 조치를 얻기 위하여 그로부터 발생할 지대의 일부를 뇌물로 바치는 행위가 일어나게 된다.

이렇게 뇌물을 바치는 행위를 지대추구 행위라고 부른다. 지대추구는 자료와 정보 제공 등과 같이 합법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불법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그것은 합리적인 행위이다. 예를 들어 지대로 인한 이익이 100억 원이면 뇌물을 70억이나 80억 원을 바치더라도 20~30억 원의 이익이 남는다.

이와 같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지대가 존재하는 한 소수의 대리인들이 지대추구의 대상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다시 말해서 지대가 존재하는 한, 대리인들이 주인의 뜻을 배신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국민들이 주인들로 직접 참여하는 것은 지대추구를 어렵게 만든다. 300명 국회의원들에게는 몽땅 뇌물을 줄 수 있지만, 3000만 명 정도의 국민들에게 모두 뇌물을 주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리인들이 주인의 뜻을 배신하는 기회주의적 행위는 흔히 도덕적 해이라고 불린다. 이것의 가장 대표적 형태가 국민에 의해 뽑혔지만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정치를 하는 정치인들이다. 이와 같이 국민의 대리인들이 국민의 뜻을 존중하지 않고 도덕적 해이라는 기회주의적 행동을 하는 것이 오늘날 대의민주주의의 위기이다.

현재로서는 대리인들이 국민의 뜻을 배반하더라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대통령이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는 경우, 국민이 직접 탄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국회의원이 국민이 원하는 법을 만들지 않을 때 국민이 직접 법을 만들 수 있는 방법도 없다. 쇠고기 수입협정과 같은 국민적 관심사에 대하여 국민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제도도 없다. 촛불 시위로 거리에서 나와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87년 마련된 현재의 민주주의 체제, 즉 87년 체제는 점점 더 발전하는 광장과 이미 부조응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조응되지 않는 정치체제로 인하여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4.15 학교 학원화 조치가 10대들이 촛불을 들고 나온 중요한 동인이라고 보고 있다.

설사 이번에 쇠고기 문제가 국민의 뜻대로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대운하를 추진하게 되면 다시 촛불이 밝혀지게 될 것이다. 수돗물 민영화를 하면, 부동산 투기자들의 불로소득을 합리화하면……. 이렇게 되면 문제가 될 때마다 촛불이 등장하여 거리를 메우는 수밖에 없다. 촛불은 끝없이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광장의 정치 이미 보편화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과거에는 기술상, 비용상의 이유로 국민의 뜻을 직접 반영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때에는 대의민주주의가 현실적 대안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인터넷의 출현과 그로 인한 광장의 형성은 그리스 시대 아고라에서 행해졌던 직접민주주의를 얼마든지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인터넷 광장에서는 수많은 의견이 교환되며, 지식과 정보가 순식간에 교환된다. 일부의 거대 언론이나 악의적인 집단이 여론 조작을 시도하더라도 수많은 대중들의 참여에 의하여 즉각 교정된다. 이렇게 광장 문화와 광장 정치가 발달하고 있는데도 제도 정치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광장은 시장과 비슷한 점이 있다. 시장에서는 사적 소유물이 등가교환의 원리에 의하여 교환된다. 그런데 시장에서 교환되는 것 중에는 상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정보이다. 사람들의 선호, 새로운 상품의 등장과 같은 정보들이 상품과 함께 전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식과 정보를 중세 봉건주의에 비해서 엄청나게 많이 전달시켰기 때문에 시장이 봉건주의를 대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광장은 시장보다도 훨씬 더 많은 지식과 정보가 교환되는 곳이다. 오늘날 인터넷이라는 광장을 통하여 전달되는 정보가 얼마나 많은가. 또한 광장은 등가교환을 교환의 규칙으로 하는 시장과 달리, 무소유 내지 공유물(주로 지식과 정보)이 선물 교환의 형태로 전달되는 곳이다. 선물교환이란 일단 공짜로 받지만 적당한 때에 능력에 따라 되갚는 교환을 말한다. 광장에서 생산되고 교환되는 지식은 동태적 기술혁신의 보고가 되고 있다. 광장은 다양한 의견들이 제한 없이 교통하는 공론의 장이 됨으로써 민주주의 발전의 토대가 되고 있다.

현재의 생산력으로 국민의 뜻을 직접 반영하는 것은 엄청나게 쉬워졌다. 투표의 예를 들어보자. 투표자가 특정한 장소에서만 투표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관념이다. 투표자 명부를 보안 인터넷으로 연결하거나 시디에 담으면 투표자는 전국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다. 지하철역마다 투표소를 설치하고 아무 투표소에서나 투표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북한산 입구에 투표소를 설치해서 전국 어디서나 온 등산객들이 투표하고 산에 가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런데도 이런 제도를 마련하지 않고 투표율이 낮다고 한탄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즐기고 있다.

중요한 사안마다 국민의 뜻을 직접 묻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래도 비용이 많이 든다고 생각하면 2,000 내지 3,000명 정도의 대표를 추첨에 의해 뽑아서 어느 장소에 모여서 진지한 토론을 거친 후 결정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체 국민의 뜻을 반영하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할 필요가 없다. 1,000명 정도의 표본을 뽑아서 물어보는 여론조사도 거의 틀린 적이 없다.

무식한 국민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오만이다.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를 자처하는 현 정부의 정치인과 관료들이 모여서 내린 결정이 광우병 쇠고기 수입이 아닌가. 국민들의 평균적인 지적 수준에 부합할 정도의 결정만 내려주어도 우리 정치는 훨씬 선진화될 것이다.

대리인이 주인의 뜻을 배신할 경우에는 흔히 두 가지 대책을 마련한다. 하나는 대리인들이 이익집단의 뜻이 아니라 주인의 뜻에 따르도록 유인체계를 바꾸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대리인들의 행동을 감시하여 대리인들이 몰래 주인을 배반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중 어떤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촛불은 이러한 한계 때문에 등장한 것이다. 보다 근원적인 방법은 주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국민 뜻에 따라 성역 허물어야

이러한 직접 참여의 원리가 기업의 경우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어떤 조직이든 중층적으로 주인-대리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기업의 경우 주주가 주인이면 이사들은 대리인이다. 또 이사들이 주인이면 종업원들은 대리인이다. 이사들이 주인의 뜻을 배신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사외이사를 두고, 이사에게 무한 책임을 지우는 등의 조치를 하고 있다. 그리고 주인들은 1년에 한두 번 주주총회를 열어서 주인의 권리를 행사한다.

그러나 인터넷이 발달한 오늘날에는 얼마든지 주인의 직접 결정과 직접 참여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중요 결정은 직접 모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인터넷으로 주인의 뜻을 그때그때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촛불을 들고 당면한 투쟁을 하는 상황에서 촛불 이후 한국사회를 상상해 보는 것은 너무 사치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촛불의 궁극적이고 진정한 염원은 대중들이 주권자로서 참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촛불이 그런 염원을 달성하는 데 한걸음이라도 더 가깝게 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먼저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한 탄핵이나 소환 투표가 가능해지거나 훨씬 쉽게 가능해져야 한다. 국민의 뜻을 배반한 대리인들과 함께 남은 임기 동안을 참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국가적인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입법부와 관련해서 국민이 직접 법을 만들고 폐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거대 자본이 소수의 대리인을 상대로는 떡값과 접대라는 명목으로 법을 만들어 달라고 혹은 법을 없애달라고 뇌물을 줄 수 있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는 뇌물을 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행정부의 주요 정책 중에서 국민적 관심사가 되는 정책은 국민 전체나 국민 중에서 추점에 의해서 선출된 사람들의 직접 투표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한다. 고위관료들에 대한 국민의 소환이 가능해져야 한다. 또한 관료들이 퇴직 후 일정 기간 동안 유관기관이나 유관업체에 취직하는 것을 금지하여야 한다. 그리고 관료들의 무분별하고 획일적인 미국 유학을 막아서 국민의 관점보다 미국의 관점을 우선시하는 사고방식을 추방하여야 한다.

스스로 무소불위 불가침의 권력집단화 되어 있는 사법부도 국민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놓여야 한다.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판사들은 국민이 직접 선출하거나, 국민이 주기적으로 직접 선출하는 수십 명 정도의 위원들로 구성되는 사법시민위원회 같은 기구에서 임명되어야 한다. 행정부를 수사, 감사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검찰총장이나 감사원장의 인사권도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사법위원회든지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행사해야 할 것이다.

돈의 시녀가 되어 있는 언론도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 현재의 경제체제 하에서 광고가 불가피하다고 할지라도 광고주가 광고를 실을 언론사를 직접 선택하는 방식은 반드시 금지하여야 한다. 방송의 경우 방송공사가 존재함으로써 방송의 공영성 확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신문에 대해서도 대기업은 신문광고공사 같은 독립적이고 공익적인 기구를 통해서만 광고를 신청할 수 있고, 신문광고공사는 시청률이나 구독률 같은 비정치적이고 객관적인 기준에 의해서만 매체를 선정하도록 하는 방식을 모색하여야 한다.

이제는 대리인들이 쉽게 주인을 배신하는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를 주권자인 국민이 직접 참여하고 결정하는 참여직접민주주의 체제로 바꿔야 할 때가 되었다. 사실상 대리인들만 국가기구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민중들도 보통 사람들도 모든 주인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불가능해 보이는가? 촛불 노래를 다시 불러 보자.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민이 원하면 이루어져야 한다. 촛불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