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정판 된 양승태 사법부에 몸 던진 철도 노동자
흥정판 된 양승태 사법부에 몸 던진 철도 노동자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5.31 18:41
  • 수정 2018.06.01 18:4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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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철도노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의혹 규탄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공공운수노조와 철도노조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박근혜 정권과의 재판을 통한 흥정 의혹에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공공운수노조와 철도노조, 고속철도하나로운동본부는 31일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에 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며 ‘사법살인’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 규명과 일벌백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5일 올해 초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등을 규명하기 위해 구성됐던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이하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조사 결과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정권 당시 상고법원 설립이라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반노동적 판결을 내는 등 재판으로 거래를 시도했다는 의혹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최준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수서발 고속철도 SR 분리 등기,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재판, 2015년 KTX 승무원 해고 판결 등 다양하게 철도노조 관련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확인됐다”며 “그 사이 두 명의 조합원이 희생되고 수많은 노동자가 일터에서 쫓겨난 채 아파해야 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 보고서에 밝혀진 철도노조 관련 재판 개입 정황은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철도공사 자회사 ‘SR’ 법인설립 등기, KTX 승무원 불법파견의 세 가지다. 특별조사단은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등의 문건에 사법부가 대통령과 청와대를 위해 노력한 사례로서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KTX 승무원, 정리해고, 철도노조 파업 사건 등)’이란 표현 등이 등장한다고 밝혔다. 상고법원 설립이라는 사법부의 정치적 목적을 추진하기 위해 그동안 법원이 노동을 탄압하는 판결을 내리는 등 정권에 협조해왔다는 것.

ⓒ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 결과 드러난 사법부 내부 문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 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했다'는 부분이 눈에 띈다. '조사보고서(별지)' 캡쳐화면.
ⓒ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 조사 결과 드러난 사법부 내부 문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 하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했다'는 부분이 눈에 띈다. '조사보고서(별지)' 캡쳐화면.

2009년 철도노조 파업 사건의 경우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 대법원이 “노사 갈등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하여 파업의 법적 기준을 정립”했다며 철도노조 파업 사건 판결을 정권에 협력하기 위한 카드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파업 당시 철도노조를 이끌었던 김기태 전 철도노조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공공기관 선진화 명목으로 이어진 구조조정에 맞섰던 파업은 파업 직전 필수유지업무제도의 도입으로 합법적으로 이뤄졌지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방문 이후 무차별적인 징계와 해고라는 탄압이 이어졌다”며 “이에 대해 무분별한 형사사건 업무 방해죄 적용에 대한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후 대법원에서 엉뚱한 판결이 나오는 걸 보고 당시에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알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2014년 종전의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2009년 철도노조 파업 노동자들에 무죄를 선고하는 하급심 판결이 잇따르자 당시 대법원은 “철도공사가 노조로부터 파업을 예고 받고 이에 대비하여 대체근로, 비상운송계획까지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파업을 예측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관련 조합원들에 유죄 판결을 내 논란이 됐다. 공사가 파업을 예고 받고 계획도 세웠으나 파업을 예측할 순 없었을 것이라는 논리에 당시 학계, 법조계 등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러한 판결이 실은 정권에 협조적인 모습을 보여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사법부의 목적에 의해 벌어졌다는 것.

수서발 KTX 자회사인 SR의 별도 법인 설립 등기에 관여한 정황도 나왔다. 당시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은 철도 분할 민영화라는 비판이 제기됐으나 결국 자회사 SR에 면허 발급이 강행돼 논란이 됐다. 이것이 실은 “노동개혁에 기여할 수 있는 판결의 하나로 국가경제적 관점에서 허가하여 이를 둘러싼 철도노조 파업 등 분쟁·갈등 상황을 종식”시키는 대법원의 개입으로 강행됐다는 게 문건을 통해 밝혀진 것. 최영준 고속철도하나로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당시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고속철도 분리 반대 파업은 박근혜 정부의 분리 강행으로 종결됐고 고속철도의 분리로 중복투자, 안전사고, 부패의 온상이 문제가 됐다”며 “이런 군부 독재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한 게 양승태 전 대법원장으로 진정한 적폐청산을 위해 이러한 자들을 처벌하고 구속해야 한다”고 밝혔다.

2006년 이래 현재 약 4500여 일째 복직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KTX 승무원들에 대한 대법원의 이해하기 어려운 판결 뒤집기 역시 정권과의 거래를 위해 내려진 판결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승하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지부장은 “대법원이 어처구니없는 판결로 우리 삶을 바꿔놓은 걸 보고 이런 나라에 살고 있었다는 게 새삼 새롭게 느껴졌는데 실은 그것이 뒷거래 용도였고 청와대와 대통령을 위한 판결이었다는 증거가 나오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며 “그 소중한 목숨, 긴 시간의 고통을 분명히 보상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2015년 대법원은 승무원의 철도공사의 근로관계를 인정하고 해고를 무효화했던 기존의 1, 2심을 뒤집고 같은 열차 내 열차팀장과 승무원의 업무를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등 KTX 승무원과 철도공사의 묵시적 근로관계를 부정하는 판결을 내 논란을 빚었다. 결국 1,2심을 통해 8600여만 원의 해고 기간 임금과 소송비용을 돌려받았던 노동자들은 대법원의 뒤집기 판결로 해당 비용을 토해낼 상황이 됐고 이 때문에 한 명의 해고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해당 판결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 의해 ‘2015년 최악의 판결’로 꼽히기도 했다.

강철 철도노조 위원장은 “승무원 해고로 한 명의 동지가 목숨을 잃고 2009년 파업 해고로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조작과 거래를 통해 노동자를 죽게 만든 것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강 위원장은 “그동안 자행되었던 철도노동자에 대한 탄압을 잊지 않을 것이며 이를 이끈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 수사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는 이후 같은 문건으로 사법부에 의한 노동 탄압 의혹을 제기한 전교조, 금속노조 등과 함께 1인 시위 등 연대 투쟁을 이어갈 뜻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