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노동자도 사법 개혁의 한 축 되어야”
“법원 노동자도 사법 개혁의 한 축 되어야”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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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사법농단 사태 비판 목소리 높이는 ‘법원노조’대법원 사법농단 사태 비판 목소리 높이는 ‘법원노조’

 

 

[인터뷰] 조석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

대법원이 유례없이 시끄럽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립을 위해 박근혜 정부 국정 운영에 협조하는 재판 결과를 이끌어 냈다는 내부 문건이 나온 것. 김명수 대법원장은 장고 끝에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단 입장을 밝혔으나 고위 법관들의 반발이 거세다. 최근 양 전 대법원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데이터를 복구할 수 없도록 디가우징 처리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되려 대법원이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 명분은 더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가운데 지근 거리에서 대법원 내 견제자의 역할을 수행해온 주체들이 있다. 바로 ‘법원노조’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법원본부는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진 지난 6월 8일 단식 농성에 돌입, 고위 법관들의 자성을 촉구했다. 사법 개혁의 필요성을 몸으로 느껴온 당사자로서 현장 증언에 나선 것. 최근 검찰이 수사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고발인으로서 검찰에 직접 출석하기도 했던 조석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장을 만났다.

법원본부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2005년 5월 법원공무원노동조합으로 출발해서 2009년 민주노총에 가입, 전국공무원노조로 통합됐다. 현재 전국 24개 지부에 조합원은 10,000 명 정도다. 법원 노동자가 15,000 명 정도 되는데 판사 3,000 명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일반직 공무원이다. 사무 직렬에 행정, 속기, 운전, 경위 등 다양하다.

2017년부터 사법부 적폐청산을 내걸고 활동을 개진했다. 뒤이은 김명수 대법원장 임명, 노조가 보기엔 어땠나?

2016년 양 대법원장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새로운 대법원장은 더 민주적이고 개혁적이어야 법원 공무원의 노동 조건도 개선될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장은 늘 대법관을 역임한 사람 중에 선임됐고 저희조차도 기존 대법관 중 후보를 추렸다. ‘독수리 오형제’(참여정부 시절 진보적 성향 대법관 5인) 중 박시환 전 대법관과 전수안 전 대법관이 물망에 올랐는데, 결과는 김명수 대법원장이었다. 법원행정처에서 사법행정을 담당한 적도 없고 야전에서 재판만 하던 사람이 대법관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법원장이 된 것은 법원에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017년 초의 블랙리스트 관련 의혹이 사법 농단 의혹으로 번지고 일이 순식간에 커졌다. 판결 거래 의혹에 법원 본부가 처음으로 단식 투쟁을 시작했다.

6월 8일 박정열 서울중앙지부장이 단식에 들어갔다. 계획된 투쟁은 아니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회의에서 수사 필요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자 발끈한 것이다. 자기 생각과 가치관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게 판사란 직업이라지만 소위 엘리트 관료 법관들이 일반 국민들 정서와 동떨어진 판단을 하면 내부 구성원이 따끔히 비판할 필요가 있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 농단 의혹에 대한 공식 입장 발표 전에 의견 수렴을 하겠다고 한 세 곳이 전국법관대표회의, 사법발전위원회, 전국법원장간담회인데 제일 중요한 게 전국 판사들이 법원별로 대표를 뽑아 나서는 전국법관대표회의다. 11일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열리기 전에 발표된 서울고법 부장회의와 전국법원장회의의 고위 법관들의 수사 불필요 입장 발표 때문에 판사들이 소신 있는 판단을 하지 못할까 염려됐다. 그래서 단식투쟁에 본격적으로 들어간 것이다.

단식 이후에도 대법관들의 의혹 부인 성명에 규탄 성명을 냈다.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김 대법원장 시기 대법관이 됐고 처장이 되자마자 특별조사단장을 맡아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한 사람인데 대법관들의 의혹 부인 성명에 함께 했다. 기가 찬 상황이다.

대법관들은 이어 KTX 승무원 판결도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는 것 자체가 많이 위축된 게 아닌가 한다. 대법원장이 수사 협조 입장 밝힌 지 2시간 반 만에 국민들에 욕먹을 걸 감수하고 대법관 일동으로 성명을 내는 것은 검찰 수사 국면에서 압수수색영장이 법원에 들어올 걸 대비해 영장을 발부할 후배 판사들에 가이드라인을 주는 부분도 있다.

공무원노조 설립 신고가 올 3월에 났다. 지난한 세월이었을 것이다.

사법 농단은 박근혜 국정 운영에 협조뿐만 아니라 노조 관리를 통해서도 이뤄졌다고 본다. 어떨 때는 행안부에서 내려오는 탄압 지침보다 더 심각하게 탄압하기도 했다. 고위 법관들은 노조 활동을 좋지 않게 보고 대화 창구조차 차단됐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일방적 사법행정의 폐해로 자살한 조합원도 많았다. 법원행정처와 공동으로 노동자 심리 상태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초창기는 공무원 인원 동결로 인원이 절대 안 늘어났는데 업무 과다가 직원들 자살이나 사망률을 높인다는 분석이 있었다.

 

법원 노동자의 고강도 업무가 갖는 특수성이 있을까?

일주일에 한두 번 재판에 참여하는 일반직들은 조서를 작성하고 서류를 정리한다. 그런데 연일재판부 제도가 도입되고 재판에 매일 들어가고 평소 업무를 야근 등으로 처리하게 됐다. 그러다 한 분이 승용차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강도가 완화됐다곤 해도 형사재판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나간다.

또 법원은 시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작년엔 국정농단 사건으로 재판이 쏟아졌다. 2008년에는 쇠고기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정부가 대대적으로 형사재판을 걸었다. 이렇게 사회적 이슈가 생기면 이걸 마지막으로 해결하는 곳이 법원이다 보니 법원에 사건이 폭증한다. 사회적으로 재판이 주목을 받다 보니 진행은 빨리 해야겠고, 충원은 없고, 그러다 보면 직원들은 쓰러지는 것이다.

단체교섭은 한 번도 못 했나?

2007년 딱 한 번 교섭하고 법외노조가 된 뒤로 못했다. 이제 다시 할 수 있게 됐지만 사법 농단 때문에 준비가 늦어졌다. 국가직 공무원의 처우 개선에 미흡함이 많다. 정부는 휴가를 자유롭게 가라고 권장한다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다. 접수실, 등기, 경리 담당자가 빠지면 업무가 마비된다. 연가저축제같은 좋은 제도를 도입해도 그림의 떡이다.

인원 충원을 위한 업무 평가의 기준이 몇십 년 전 케케묵은 기준 그대로라 지금과 안 맞는 게 많다. 육아휴직은 지금 남성, 여성 할 것 없이 이전보다 훨씬 많이 간다. 그럼 그에 대한 충원도 있어야 하는데, 충원 요인이 아니라는 식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인원 충원 기준이 필요하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법 개혁, 과연 희망적인가?

양 전 대법원장과 비교하면 노조와 소통하는 모습은 더 낫다. 단체설립 신고를 낸 직후 노조 현판식을 했는데 현판식 이후 다과회에 김 대법원장이 개인 자격으로 참석해 지부장들과 간담회를 하기도 했다. 단식농성에서도 법원 공무원의 의견도 수렴하라고 면담을 요청했을 때 짧은 시간이지만 15분간 면담 자리도 가졌다. 소통은 이전보다 낫다.

다만 사법 행정에 관한 결정이나 의견 수렴은 여전히 법관 위주다. 사법발전위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판사도, 언론인 등 외부인사도 들어갔는데 법원 구성 대다수를 차지하는 일반직은 빠졌다. 노조가 앞에 쳐들어가서 소란 피우고 하니까 달래주는 식으로 면담을 하는 정도고 아직 진정한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하진 않았다.

사실 김 대법원장은 주변에 자신을 지지해주는 대법관이 거의 없고 고립무원에 가깝다고 본다. 주변 눈치를 너무 많이 보는 것 같다. 이번 ‘수사 협조’ 타협안도 그렇고 개혁을 과감히 추진하는 걸 어려워하고 뭐든 두드려보고 가려는 인상이다. 이번 사법 농단 사태서도 형사고발 대신 수사 협조 정도로 타협안을 냈다. 과감함, 결단이 필요하다. 개혁을 위해서 어떤 순간에는 김 대법원장의 한계를 비판할 것이다. 노조가 아니면 법원 내에선 그럴 수 있는 조직이 없다.

내외적으로 과제가 많을 것 같다.

사법 개혁의 방향이 중요한 것은 결국 조합원들의 노동 조건 개선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사법 행정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데 한 축이 되어야만 정해진 것을 일방적으로 따르는 수동적 존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조합원의 자존감도 높아진다. 단순한 처우 개선 투쟁으론 큰 틀에서 어렵다. 매우 복잡한 문제지만 잘 끌고 나가고 싶다. 자칫 잘못하면 간부들만 나서고 조합원은 구경꾼이 될 수 있다.

현재 법원행정처의 문제라면 어떤 것들이 제기될 수 있을까?

지금 법행처는 정책기획부서로 가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법행처가 정책 입안도, 집행도 맡았다. 예를 들어 공판중심주의란 제도를 시행한다 하면 입안과 집행을 법행처에서 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법관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고 그것이 인사자료가 되고, 법행처가 그걸 이용해서 승진발령을 내니까 판사들은 법행처만 바라본다. 사법 행정에 문제가 있어도 무조건 따라가고 거기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경우가 많다. 권한이 너무 과도한 것이다.

인사권도 문제다. 인사에 대해선 외부 전문가를 들이기 어렵고 일반직 인사 행정도 법관이 갖고 있다. 현장 사정을 반영한 기획 입안을 하는 데에 외부 전문가들의 한계도 있다. 탁상공론이 되면 결국 최일선의 공무원들이 힘들어진다.

결국 현장에서 일하는 우리 일반직의 목소리가 반영되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는 일반직 공무원의 의견이 반영되는 과정이 전혀 없다. 그런 이야기를 할 자리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앞으로 법원행정처에서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판사들이 많이 빠지면 이 공백을 법원 일반직이 채우자는 입장이다. 사실 우리는 법원 행정을 담당하기 뽑힌 사람들 아닌가.

노조는 어떤 역할과 청사진을 그리고 있나?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기댈 언덕’은 딱 두 곳이라고. 젊은 소장파 판사들과 일반직 노동자다. 나머지 세력들, 특히 고등부장 이상의 고위 법관들은 차라리 자신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란 것이다. 노조는 대법원장 비판도 하지만 악의적 공격을 선제적으로 막는 역할도 한다. 개혁 정책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나서는 것이다.

이제 수사가 법원으로 들어오게 될 텐데 컴퓨터 하드도 과감하게 다 내줘야 한다. 어찌 보면 대법원장, 행정처장 컴퓨터 조사하는 게 이번 사건의 핵심일 수 있다. 어렵더라도 이 문제가 제대로 풀리는 게 김 대법원장의 궁극적 개혁 방향과 맞는 것이라 보고 그런 점에서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