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소득주도성장’
‘쿼바디스, 소득주도성장’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7.20 11:59
  • 수정 2018.07.20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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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인상 효과를 둘러싼 핑퐁게임의 끝

 

[리포트] 최저임금 인상 효과 논란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사회 각층의 다양한 해석이 충돌하는 가운데 극단적인 핑퐁 게임이 이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나라 경제 파탄의 주범인 것처럼 매도하고 한쪽에서는 최저임금 인상만을 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법으로 간주하는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서 상징적 역할을 해온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 대한 상반된 해석에 국민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란 똑같은 현상을 두고 그 효과에 대한 해석이 어떤 자료를 어떤 기준을 갖고 쓰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달라지는 것이다.

최저임금이 예년보다 큰 폭으로 인상되고 연초부터 보수 언론 등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정적 효과를 언급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보수 언론을 시작으로 소상공인들과 노동계의 갈등 구도도 최저임금 인상 여론에 악영향을 줬다. 지난 5월 올 1분기에 저소득층인 1분위의 가구 소득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자 관료 출신인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정책실장 등을 위시한 비관료 출신들을 내세운 청와대 사이의 갈등 구도가 전면으로 대두되기도 했다.

여기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가 기름에 불을 끼얹었다. 지난 6월 4일 KDI가 발간한 ‘KDI Focus’의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가 내린 결론은 최저임금을 정부 계획대로 2020년까지 1만 원으로 인상할 경우 고용 감소가 예상되므로 인상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 언론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보고서의 결론을 두고 섣부른 최저임금 인상이 경제 지표를 악화시킬 것이란 보수 언론의 전망이 이어졌다. ‘속도조절론’에 KDI가 이른바 총대를 멘 셈이 됐다.

‘총대 멘’ KDI, 최저임금 인상 효과 논란에 기름 부어

보고서 작성자인 최경수 KDI 선임연구위원은 6월 5일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지금까지 최저임금의 영향으로 일자리 감소가 나타난 것은 아니”라며 수습에 나서면서도 “일자리 안정자금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원래 고용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인지 이 두 가지를 분명하게 구분할 순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청와대는 연구원 개인 보고서일 뿐이라며 공식 반응을 자제하는 분위기를 보였지만 학자들의 비판이 이어지며 논란은 커졌다. 보고서가 실제 고용 변화를 추적하기보다 과거 미국과 헝가리의 사례를 들어 영향력을 추정한 게 문제가 됐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노동기구(ILO) 국장직을 맡아 화제가 됐던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보고서가 최저임금 효과는 노동시장 사정이나 구조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고용탄력성은 국가별 특수성을 갖는다고 전제하고, 보고서의 자료가 한국 분석 사례가 아닌 외국 사례를 두고 예상한 추정치임에도 그마저도 편의적으로 사용됐다고 비판했다. 보고서에 인용된 미국의 추정치는 대부분 1970~1980년대 자료이고 또다른 인용 자료인 헝가리의 경우 분석 사례가 많지 않아 한가지 자료만 인용한 편의적 해석이라는 것. 최저임금 상대 수준이 비슷하고 고용감소 효과가 없었던 영국 자료를 굳이 사용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과연 최저임금 인상 효과 실증 분석은 가능한가

반대로 논란에 앞선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인상에 90% 긍정 효과’ 발언 역시 그 발언 근거의 신빙성을 두고 비판에 오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5월 31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1분기 1분위 소득 감소는 아픈 대목이지만 이를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라거나 최저임금의 급격한 증가 때문이라 진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며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증가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자신있게 설명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긍정효과 90%’가 어떻게 나온 분석이냐는 비판이 이어지자 3일 홍장표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이 ‘가구별 근로소득이 아닌 개인별 근로소득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하위 10%를 제외하고는 올해의 소득증가율이 작년보다 높았다’는 해명을 뒤늦게 내놓기도 했다.

오고 가는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실증 분석이 현재로서 과연 가능하기는 한거냐는 반문이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영향력을 면밀하게 측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최저임금 인상 영향에 대한 대립 주체들의 상반된 분석만 쏟아지는 상황이다. 논란이 증폭될수록 이에 따라 형성된 여론 최저임금 추가 인상에 대한 부담이 커지는 것도 사실.

 

최저임금 인상의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결국 최저임금 관련 논의의 본질적 의미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9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KDI가 주최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평가와 과제’ 컨퍼런스 자리에 참석한 이상헌 국장은 “최저임금 인상을 비롯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논할 때 불평등 해소가 갖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 그 자체에도 주목해보아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 국장은 “최근의 경제 트렌드에서 경제 성장과 불평등의 관계를 왜 이야기하는지 먼저 논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2016년 발표된 스톡홀름 선언(Stockholm Statement)을 소개했다. 스톡홀름 선언은 조지프 스티글리츠를 비롯한 세계 여러 거시경제학자들이 앞으로의 세계 거시경제정책의 방향성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발표한 새로운 거시경제학의 패러다임 전환 선언으로, 그동안 분배 효과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점에서 성장보다 불평등에 대한 고려와 반성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담고 있다.

성장과 불평등 관계 고민하는 새로운 패러다임

이 국장에 따르면 거시경제학은 그동안 불평등을 거시경제학 영역 밖의 문제로 인지했다. 쿠즈네츠 곡선으로 대표되는 거시경제학 내에서의 성장과 불평등의 관계가 성장이라는 주된 의제 아래 비교적 소외되어 왔다는 것. 쿠즈네츠 곡선은 경제가 성장하다 보면 부의 불평등도가 올라가다가 산업화가 어느 단계에 도달하면 불평등도도 다시 떨어지게 되어 있다는 경제학자 사이먼 쿠즈네츠의 가설이다. 불평등의 완화는 산업 성장이 고도화함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이 1950년대의 이론은 최근 들어 글로벌 경제위기 등을 통해 세계 경제 전반에 불평등이 확산하는 현상으로 인해 그 힘을 잃고 있다.

이 국장은 “성장에 따라 불평등이 반응하는 쿠즈네츠식 인과관계가 아니라 이제는 불평등이 성장에 영향을 주는 역 인과관계가 성립하는 게 아니냐는 게 거시경제학의 새로운 흐름”이라며 “이러한 전반적인 큰 흐름 아래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동연 부총리를 비롯해 많은 경제 관료들과 경제학자들이 ‘혁신성장’으로 대표되는 기존 경제성장 담론에 천착하며 소득주도성장 정책 추진에 잡음을 내는 현 상황에서, 거시경제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사회 전반의 합의가 필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이 국장은 “혁신성장, 연구·개발 등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며 “잠재적 성장률을 투자 등 공급 측면에서 높이는 것은 당연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총수요가 공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마음 급한 문 정부, 관료 출신 경제수석으로 상황 돌파?

다만 정부는 속도 조절에 나선 모양새다. 최저임금 인상, 나아가 소득주도성장을 둘러싼 김동연 부총리와 청와대의 불협화음 신호에 문재인 정부 2기 내각에 과연 김 부총리가 합류할 수 있을지 정치권의 이목이 쏠리는 가운데 청와대는 지난 6월 26일 신임 일자리수석과 경제수석에 정태호 현 청와대 정책기획비서관, 윤종원 주 OECD 대사를 각기 임명했다. 수하 수석이 둘이나 교체되면서 장하성 정책실장의 ‘손발’이 잘려 소득주도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윤종원 신임 경제수석의 경우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으로 학자 출신이자 소득주도성장 전도사로 불렸던 홍장표 전 수석과 뚜렷하게 대비되어 앞으로는 경제 정책 이행에 더욱 실효성을 가져가겠다는 청와대의 의지가 읽힌다는 평이 많다. 논란을 타개하고 남은 임기 정책 추진에 힘을 받기 위해선 더더욱 거시적 성과 지표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

윤 수석에 대한 민주노총의 반발도 눈에 띈다. 민주노총은 6월 26일 논평을 통해 “윤 수석은 기재부 출신으로 ‘포용적 성장’을 이야기하지만 ‘혁신성장’을 내걸고 노골적인 친기업, 친재벌 행보를 노골화하고 있는 김동연 라인과 연결하는 인사로 보인다”며 “언론들이 윤 수석 임명에 대해 소득주도성장은 상징적으로 유지하되 현실적으로는 김동연의 혁신성장에 더 힘이 실릴 것으로 보도하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