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 내가 있다 나눔의 ‘우분투’
네가 있어, 내가 있다 나눔의 ‘우분투’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09.06 18:01
  • 수정 2018.09.06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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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금융노조, 사회연대기금 조성으로 양극화 해소 기여

[커버스토리-노동조합과 사회연대]

한 인류학자가 아프리카의 부족 아이들을 모아 놓고 게임을 제안한다. 저만큼 떨어진 나무 옆에 맛있는 과일 한 바구니를 놓아두고, 가장 먼저 나무까지 도달한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선착순 문화(?)에 익숙한 우리네 사고방식은 아이들이 저마다 1등을 하려고 앞 다퉈 달려 나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하지만 출발 신호가 울리자 아이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손을 잡고 함께 달리기 시작한다. 결국 모두가 1등인 가운데 아이들은 둘러 앉아 행복하게 과일을 베어 물었다.

예상 밖의 결과에 인류학자가 묻는다.

“왜 모두 함께 손을 잡고 달렸지?”

그러자 오히려 아이들이 되묻는다.

“다른 아이들이 슬픈데 어떻게 나 혼자 기쁠 수 있죠?”

어안이 벙벙해진 인류학자를 둘러싸고 아이들은 재잘재잘 외친다.

“우분투, 우분투”

‘네가 있어 내가 있다’라는 의미의 코사족 말인 ‘우분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화이다. 각박한 현대인들의 삶을 한 번쯤 되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일화다.

 

 

4월 ‘우분투 프로젝트’ 출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외침은 참 자주 들린다. 하지만 대부분 구호로 그치고 만다. 아니, 오히려 마음 한 구석에는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는 체념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사무금융직 노사가 뜻을 모아 사회연대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뜻 깊게 사용하자는 ‘우분투 프로젝트’가 세간에 공개됐을 때, 많은 이들이 우려하던 바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노총 사무금융서비스노조(위원장 김현정)는 지난 2월 정기대의원대회를 통해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강조하며,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발족했다. 특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1만원 실현 ▲비정규직 정규직화 ▲청년일자리 창출 등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이와 같은 활동의 일환으로 사회연대기금 조성 사업인 ‘우분투 프로젝트’와 관련한 사업계획을 심의, 의결했다. 또한 3월 28일에는 이와 같은 활동에 대해 국회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4월 18일에는 문성현 노사정위원회 위원장, 이목희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고형권 기재부 차관, 이성기 고용노동부 차관,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5개 정부부처 대표와 32개 소속 사업장 노사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사회연대기금 조성 선포식을 개최했다.

2020년까지 3년간 출연

사회연대기금은 불평등, 양극화 해소를 위해 노사정이 논의하고 노사가 공동으로 출연하는 기금으로 정의했다.

이는 청년일자리 창출,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 원 실현 등 불평등, 양극화 해소의 마중물 역할을 하며 약탈금융, 상대적 고임금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는 한편 노사가 동행하여 사회변화를 선도하는 주역으로 재평가되는 계기를 마련하자는 의미도 담긴다. 또한 국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실천적으로 기여하고, 업계를 선도함으로써 사무금융 산업 발전을 위한 ‘노사정 거버넌스’를 구축한다는 목적도 띠고 있다.

구체적인 사회연대기금 규모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매년 200억 원씩, 총 600억 원의 기금을 모금하자는 구체적인 목표를 설정했다.

KB증권에서 첫 결실

사회연대기금 조성 선포식으로부터 4개월 만에, 정기대의원대회 의결을 통해 사업계획이 수립된 지 6개월 만에 첫 결실을 맺기도 했다. 지난 8월 2일 사무금융노조와 KB증권(대표이사 윤경은)은 2020년까지 향후 3년 동안 사회연대기금을 출연하기로 했으며, 우선 올해 분으로 8억 원을 출연하기로 합의하고 조인식을 가졌다.

윤경은 KB증권 대표이사는 “사회연대기금을 통해 취약계층, 특히 나라의 미래인 청년들에게 실질적이고 많은 혜택이 주어지길 기대한다”며 “지난 4월 사회연대기금 조성 선포식에서 했던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 KB증권이 앞장서서 후원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되어 기쁘다”고 밝혔다.

김현정 사무금융노조 위원장은 “처음 시작했을 때는 ‘과연 가능할까?’ 불안함이 있었지만 20여 차례에 걸친 회의와 교육, 국회토론회, 노사정 선포식, 중앙교섭 등의 과정을 거쳐 빠른 시간 내 첫 번째 결실을 맺게 되었다”라며 “여타 사업장에서도 긍정적인 검토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마중물이 되어 준 KB증권 노사로 인해 반신반의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현재 사무금융노조 산하 각 지부, 지회는 올해 임금교섭과 함께 기금 출연과 관련한 논의가 진행 중에 있으며, 오는 9월 중 교보증권이 두 번째로 기금 출연을 확정하게 된다

 

벤치마킹을 넘어 롤 모델로 확산돼야

우분투 프로젝트로 조성한 사회연대기금은 공익재단을 설립해 사용하게 된다. 우선 노사 실무추진단 구성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하고, 공익재단 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한다. 그리고 노-사-공익위원을 섭외, 위촉하며 정관작성, 사업계획 수립 등을 추진하며 연내에는 발기인대회를 거쳐 본격적으로 공익재단을 출범할 계획이다.

사무금융노조 ‘우분투 프로젝트’와 비슷한 사례는 국내 타 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지난 2017년 금융노사(금융노조-금융사용자협의회)는 중앙산별교섭을 통해 2012년과 2015년 노사 합의로 조성한 700억 원 규모의 사회공헌기금과, 사용자가 2018년부터 3년 동안 임금 총액의 0.1%씩 출연하는 300억 원 규모의 기금을 재원으로 일자리창출과 청년실업 해소 등 사회공헌사업 수행을 위한 공익재단 설립에 합의한 바 있다.

보건의료부문 노사도 1만 3천여 개 일자리창출과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의견을 모았다. 노조가 임금 인상분을 채용과 정규직 전환에 쓰자고 제안했으며, 이에 대해 사용자협의회가 호응하면서 합의를 도출하기도 했다.

공공부문 노동자들 역시 2017년 11월, 작년분 성과연봉제 인센티브 약 1,600억 원을 자발적으로 반납해 기금을 조성하고, 사회연대 활동에 사용하기 위한 공익재단 ‘공공상생연대기금’을 출범하기도 했다.

해외의 사례는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노사정 협의체가 활발히 기능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가 널리 소개돼 있다.

독일 남동부 니더작센지역 발전을 위한 노사정 협의체는 실업률 증가 등 사회,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역 내 주요 이해관계자들과 협의체를 구성해 발전 사업을 추진했다.

25개 기업과 노조, 주정부 등 12개 기관이 중심으로, 기업은 근로자 1인당 월 0.25유로, 노조는 조합원 1인당 월 0.005유로, 지방정부는 지역 근로자 1인당 월 0.005유로를 출연해 재정을 마련했다.

협의체의 대표진은 노사와 정부 등으로 구성되며, 숙련교육, 창업지원 등 직업훈련과 지역 마케팅, 홍보사업, 교통 등 산업입지 지원, 기술역량 강화 등의 활동을 꾸려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