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년, 인생경력을 설계해야 하는 때
신중년, 인생경력을 설계해야 하는 때
  • 한종환 기자
  • 승인 2018.10.05 11:47
  • 수정 2018.10.05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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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관성 벗어나 신인의 마음으로

[리포트] 신중년 인생 3모작 박람회

신(新)중년이라는 말은 생소하기만 하다. 새로운 중년이라는 뜻을 추측하려 해도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신중년은 ‘50·60대’를 가리키는데, 50세를 전후로 퇴직해 재취업, 이직 등을 하며 노동시장 은퇴를 준비하는 과도기 세대를 의미한다. 새롭다는 의미의 新자가 붙은 건 이때까지 잘 볼 수 없는 현상이라는 의미일 거다. 늘어난 수명과 예전보다 빨라진 은퇴 시기가 신중년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했다. 전례가 없는 만큼 신중년 개개인은 당혹스럽다.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신중년들을 위해 박람회가 개최됐다.

신중년은 처음이잖아요

청년의 일자리 문제만큼 신중년의 일자리도 녹록지가 않다. 실력도 있고, 노하우도 있고, 경력도 있는데 일자리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니면 일하고 있는 곳에서 언제까지 버틸지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매일 엄습한다. 혹은 다른 일을 시작하려 하거나 창업, 귀농 같은 걸 하고 싶은데 정보가 없어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이러한 신중년의 공통된 모습은 무섭고 두렵다는 거다.

요즘 들어 신중년은 인생 설계를 다시 해야 하는 시기다. 방향을 다시 고쳐잡아야 하는 시점이라는 것인데 이게 쉽지가 않다. 살아온 관성도 있고, 어디로 가긴 가야 하는 데 방향을 잡기가 난망하다. 인생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말은 평균 수명은 늘어난 데 반해 한 일터에서 오래 일할 수 없게 됐다는 현실 때문이다.

고민하는 신중년을 위해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은 9월 18일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에서 ‘신중년 인생 3모작 박람회’를 개최했다. 작년만 해도 일자리 소개에 국한된 박람회였지만 올해에는 인생 자체에 대한 박람회라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일까, 작년에도 참가했던 관계자는 작년보다 박람회를 들린 사람이 훨씬 많다고 놀라워했다.

삭막하고 딱딱하게 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인생 자체를 다루며 더욱 따뜻하고 포근하게 신중년들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조용히 말하는 거 같다. 괜찮아요, 당신 인생에서 신중년은 처음이잖아요.

박람회에서는 이력서를 쓰는 법부터 인생과 적성, 직업에 관한 컨설팅을 받기도 하고 곧바로 회사에 지원해 면접까지 보기도 한다. 또 박람회에 참가한 비슷한 처지의, 많은 사람을 보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용기를 얻는다고 한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인식하며, 컨설팅을 통해 잘 대응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 신중년은 실패하거나 꽉 막혀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시기가 아니라, 달라진 상황에 새롭게 계획을 짜고 변화를 주는 시기다.

거침없이 입사 지원

이번 박람회에선 신중년을 위해 갖가지 행사들을 열었다. <채용관> 테마에선 현장 참여기업이 70개 사, 온라인 참여기업이 50개 사에 달한다. 서비스직, 영업직, 생산직 등 다양한 직종이 망라된다. 현장 참여기업 부스에 가면 해당 기업의 인사 담당자에게 곧바로 면접 및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온라인 참여기업 접수처에서는 기업 담당자에게 제출할 이력서, 자기소개서 접수를 대행해줬다.

그런데 말했다시피 참여기업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대체 어디에 지원하는 게 좋을까. <매칭관>에서는 취업 관련 전문 컨설턴트들이 현장 참여기업과 구직자 간의 현장 매칭을 진행했다. 구직자의 경력이나 구하는 기업에 잘 맞는 기업들을 매칭하여 소개해 준다.

이대로 지원하면 될 거 같은데 뭔가 걸린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제대로 써졌을까? <취업지원관>이라는 테마에선 채용공고 게시판, 이력서 작성대, 온라인 참여기업 이력서 접수처 등의 부스가 준비됐다. 채용공고 게시판에서 한눈에 기업들에 대한 정보를 볼 수 있고 이력서 작성대에서는 박람회용 양식의 이력서를 작성한다. 이 이력서로 구직서류 점검관에 가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구직서류 컨설턴트는 이력서를 쓸 때 그냥 사실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경력 위주로 정리해 작성하는 게 좋다고 설명한다.

이력서와 면접을 볼 때 작성 내용이나 대답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게 시각적인 부분이다. 그래서 증명사진과 자신을 꾸미는 법은 중요하다. 신중년 사진관과 신중년 이미지메이킹 부스에서는 증명사진을 무료로 찍고 이미지 메이킹을 해줘 면접에 더욱 자신 있게 나서는 방법을 제시해줬다. 증명사진은 당일 160여 명이 신청했다. 이들은 차례를 기다리며 신중년 일자리를 위한 정부 정책을 들었다.

이미지 메이킹 부스에서는 헤어스타일 변신과 각자에게 맞는 메이크업을 제안했다. 이미지 메이킹을 받은 강 모 씨는 “나에게 어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이 맞는지 오십 평생 처음 알았다. 앞으로는 이렇게 하고 다녀야겠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과 삶에 대한 탐구

재취업이 아니라 창업이나 귀농 등 여러 방면에 대한 정보가 필요할 수 있다. <3모작 지원관>테마에서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여러 정보를 지원한다. 중소벤처기업부 창업진흥원에서 창업에 관한 정보를, 귀농귀촌종합센터에서는 귀농·귀촌 지원정책 안내 및 상담을, 한국폴리텍대학에서 맞춤형 직업교육 정보와 접수방법부터 교육내용, 취업상담을 진행했다. 대한노인회 어르신취업지원센터에서는 60대 이상의 구직자를 대상으로 취업상담 및 알선을 진행했다.

인생 3모작 멘토관에서는 전문 수석컨설턴트가 재취업, 창업, 귀농귀촌, 은퇴설계 등 제 2의 인생 설계를 위해 1:1 맞춤 컨설팅을 진행했다. 삶 자체에 대한 맞춤 컨설팅이라 내용과 깊이가 있고 여러 방법론을 제공해줘 상담 받은 많은 이들이 만족했다. 상담을 받은 이 모 씨는 “얼마나 시각이 좁았는지 깨달았다. 막연하게 직종만 옮기려고 했는데 상담을 받고 보니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아니었다. 그러나 컨설턴트가 부족한 내 생각에 공감해주면서 여러 방법론을 제시해줘서 존중받으며 용기를 얻은 기분”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그런데 종합적으로 인생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생애경력설계관> 테마는 종합적인 진단의 장을 마련했다. 노사발전재단에서는 장년 진입 시점부터 생애경력을 점검하고 인생후반부에 대한 계획수립과 경영관리, 직무 능력 개발을 위한 컨설팅 서비스를 진행했다. 또한 생애설계 자가진단을 진행했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는 50세 이상 세대를 잘 이해하는 동년배 컨설턴트가 인생 후반을 통합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도록 종합상담을 진행했다.

또한 자신이 어떤 적성과 흥미를 가지는지 잘 알지 못하거나 모호한 사람들이 있다. 이를 위해 객관적인 테스트와 상담을 병행하는 <3모작 멘토관>이라는 테마로 여러 부스가 설치됐다. 직업 흥미 및 MBTI(성격유형검사) 진단관에서는 객관적인 지표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마련됐다. 직업 흥미검사와 MBTI 진단 검사를 통해 자신이 어떤 적성과 어떠한 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어떤 직업군이 맞는지를 객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검사 결과와 상담을 받고 어렴풋이 알던 자신을 더욱 정확히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금융업종특화관에서는 금융 관련 업종 퇴직자 및 관심이 있는 구직자를 대상으로 ‘금융센터 퇴직 선배 멘토단’이 직접 취업상담을 진행하고 금융센터 서비스 및 교육 프로그램을 안내해줬다.

퇴직 후 신인(新人)이 되다

금융업종특화관에서는 노사발전재단 금융센터의 강사 조광휘 씨 이야기를 해줬다. 금융업에서 종사했던 조 씨는 퇴직 후 경력을 바탕으로 재취업을 시도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1년 계약직 형태였다. 오랫동안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와중에 노사발전재단 금융센터에서 창직 과정 프로그램을 접했다.

과정을 이수하면서 자신이 강사 체질이라는 걸 알게 됐고 자연스레 자신이 잘하는 것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때 떠오른 것이 바로 윷놀이였다. 적성과 좋아하는 일이 융합되면 못할 게 없을 거 같아 재취업 대신 창직을 하게 됐다. 그는 그렇게 국내 1호 윷놀이 전문강사, 윷놀이 레크레이션 강사가 됐다.

조 씨는 평소에 윷놀이를 굉장히 즐기고 좋아했다고 한다. 취미가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건 근사하다.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받았다고 말할 만큼 행복한 일이다. 조 씨는 중장년일자리희망센터를 통해 정보와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센터에서 신나게 강사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새로운 사람, 신인(新人)이 됐다. 없었던 일을 창직하고 그 일을 한다는 뜻에서 신인이기도 하지만, 기존의 자신을 변화시켰다는 뜻에서 신인이기도 하다.

신발을 바꿔 신고 신인이 돼야하는 때

많은 사람이 박람회를 찾았다. 각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온 걸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구인광고 게시판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북적였다. 이력서 작성대에서는 자신이 지원하려는 기업에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었고 각 컨설팅 부스에는 줄지어 앉아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귀농, 사회적 기업 창업 등 새로운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지원과 여러 제도에 대한 정보에 놀라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으며 이미지 메이킹 해주는 부스에서는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은 사람들이 자신감 있게 부스를 나섰다.

한편, 누군가는 사진기자가 사진 찍는 것을 보고 자신의 얼굴이 찍혔는지 보자며 카메라를 확인해 보기도 했다. 컨설팅 부스 앞을 머뭇거리다 발걸음을 돌리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기업 부스에서 면접을 보며 당당하게 자신을 매력을 보이는 사람도 있는 반면 자신 없는 어조로 짧은 대답만 겨우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많은 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당연히 경력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하고 싶다는 의지와 자신감이라고 말했다.

한 회사에서 22년을 다니다 실직 후 박람회 소식을 듣고 참석한 이 모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살아온 것이 전부 부질없게 느껴졌어요. 배신당한 거 같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더라구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목숨이 붙어있는 한 열심히 살아봐야죠. 그 길이 알고 보니 틀렸다는 생각은 더는 않고, 그냥 가던 길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길 바뀌었으면 저도 길에 맞게 신발 바꿔 신어야죠. 열심히만 하면 잘 될 거에요. 그렇게 믿어요. 안 그럼 못 살아요.”

원했든 원치 않았든 얼결에 어른이 되는 것처럼 얼결에 나이가 들고 중년이 된다. 마찬가지로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개인을 둘러싼 환경과 사회도 바뀌어 간다. 여러 변수 속에서 때에 맞는 판단을 하고 움직여야 한다. 신중년이라고 지칭되는 세대 개념이 출현한 여러 계기가 결국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그 상황 속에서 각자 개인이 판단하고 힘차게 움직여야 하는 건 분명하다. 제어할 수 없는 변화가 왔다면 어떤 길을 걷든, 신발을 바꿔 신고 신인으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