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잡월드, 노사전 협의회는 누구를 위한 협의회인가
한국잡월드, 노사전 협의회는 누구를 위한 협의회인가
  • 한종환 기자
  • 승인 2018.11.13 00:18
  • 수정 2018.11.13 00: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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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차례 이상의 협의 끝의 결정에도 노조가 반발하는 이유는?

[리포트] 한국잡월드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추진함에 따라 공공기관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시행을 위해 ‘가이드라인’을 따랐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과정의 자율 속에서 사측과 노동자 측의 잡음은 끊기지 않고 있다. 한국잡월드도 마찬가지다. 사측은 10회 이상의 노사전 협의를 거쳐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지만, 노조 측은 노동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않았다며 자회사 설립에 반발하고 있다.

한국잡월드, 내부의 진통

한국잡월드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으로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진로탐색 및 직업체험 기회를 제공해 건전한 직업관 형성과 미래에 직업선택을 지원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직업 종합전시·체험관이다. 국내 최대 규모라는 말에 걸맞게 하루 평균 3000여 명이 예약 방문한다. 이런 한국잡월드에서 일하는 여러 직군이 있지만, 역시 가장 많고 직접적인 업무를 하는 건 강사직군이다. 강사직군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으로 직업 설명 및 체험 수업을 진행한다.

그런데 4월 1일 비정규직 노조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가 발족돼 한국잡월드 안팎으로 시위와 투쟁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잡월드 건물 바로 밖에서는 천막농성, 안으로는 단식투쟁이다. 그리고 청와대 앞, 고용노동부, 광화문 등 여러 장소에서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한국잡월드 건물 내부에서의 피켓, 단식투쟁은 건물로 들어오는 로비에서 보면 바로 보이는 곳이라, 어린이와 청소년들도 볼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가족, 유치원, 학교 단위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선생이나 부모도 놀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방문객 특히,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을까.

이유는 요즘 심심찮게 들리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때문이다. 이 문제 때문에 한국잡월드 내부는 진통이 심하다. 얼마전에는 건물 안팎의 현수막, 대자보, 피켓, 고성의 구호 등을 이유로 한국잡월드가 노조를 상대로 업무방해금지 등의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기각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서로의 입장차가 너무나 뚜렷해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바보처럼 몰랐던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

한국잡월드는 공공기금인 고용보험기금 약 2000억원을 투입해 설립됐다. 2012년 5월 15일 개관했고 올해로 7년차다. 한국잡월드의 핵심인 체험 프로그램은 용역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직종의 대표성, 체험적합성, 직업의 변화추이 등의 기준에 따라 체험직종을 선정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비정규직 정규직화로 인한 마찰은 견학을 온 아이들에게 비정규직의 어두운 면을 메인 프로그램화 시켜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한국잡월드의 비정규직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다. 2014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이인영 의원은 기획재정부 알리오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한국잡월드는 직접고용인원 대비 소속외인력 비율이 664%로 295개 공공기관 중 1위를 기록했다고 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한국잡월드 설립시 연구용역결과로 한국잡월드는 지출의 최소화 방안으로 인력 외주화를 가장 염두에 뒀다고 했고, 한국잡월드는 이를 전문성과 탄력적 인력수급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이 의원은 종합전시직업체험관의 인력 270명 중 7명 만이 자격증 등을 보유한 전문인력으로, 263명을 간접고용하면서 전문성을 운운하는 건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며 지적했다. 그리고 성수기 인력이 272명, 비성수기 인력이 269명이라며 3명의 인력변화를 탄력적인 인력 운영이라고 할 수 있는지 반문했었다. 이를 이유로 이 의원은 한국잡월드의 고용구조가 고착화되기 전에 빨리 고용구조의 변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 수립을 하고 실천할 것을 주문했다. 2015년에도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당 우원식 의원은 고용 안정에 힘써야 할 공공부문이 오히려 간접고용을 남발하고 있다며 꼬집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지적은 2016년과 2017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올해 국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바른미래당 이용득 의원은 전체의 2/3에 달하는 강사직군이 자회사를 통한 고용에 반대하며 직접고용을 원하고, 85%에 달하는 비정규직이 자회사로 간다면 자회사가 주력 일을 거의 다 하는 구조인데 이게 공공기관 운영이 맞냐면서 비판했다.

이런 지적들에도 불구하고 한국잡월드의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한 노사간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작년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하면서다. 10월 10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삭발을 하며 기자회견을 한 공공운수노조 한국잡월드분회 박영희 분회장은 “지난 7년 동안 잡월드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하면서도 비정규직으로, 거의 최저임금자로 착취당해 왔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며 “바보처럼 몰랐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박영희 분회장에 따르면 2018년 기준으로 전시체험강사직군 비정규직은 기본급 161만원 정도로 근속연수에 관계없이 받고 있다. 거기다 12달로 계산했을 경우 약 1,932만 원 수준이다. 원래는 주 5일 근무지만 임금이 적은 관계로 추가근무를 희망해서 보통 6일을 일한다고 했다. 알리오 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1분기 한국잡월드의 정규직 1인당 평균 기본급은 약 3,702만 원이다. 강사직 기본급에 비해 2배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이다. 박 분회장은 그 외에 강사직군이 식대비로 월 8만 원을 받는 게 실제로 받는 임금의 총 합이라며, 각종 복지수당 등을 합치면 그 격차는 더 심해진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정규직 평균 기본급에 평균 고정수당만을 합쳤을 경우 정규직은 평균 약 4,216만 원, 강사직군은 2,028만 원으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나게 된다.

엇갈리는 주장들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후 인천국제공항을 첫 현장 방문지로 택해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했다. 당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환호하고 기대했다. 이후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관련 대책을 수립하고 두 차례에 걸쳐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에는 개별 기관 단위에서 자율적으로 추진토록하고, 정규직 직접고용 원칙하에 예외로 자회사 설립을 제시하는 내용들이 있었다.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한국잡월드도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위해 노사전 협의를 시행했다. 총 10회에 걸친 협의회를 시행했고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 결정됐다. 그러나 노조는 협의 결과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과정상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다.

먼저 노조는 처음 1,2,3회 때 절대 다수인 강사들을 배제한 채 진행된 것부터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잡월드에서 당시 강사는 338명 중 275명이었다. 하지만 1,2,3회 협의회 때는 강사가 소속된 서울랜드와 고객센터 10명이 있는 한국코퍼레이션 용역업체를 제외한 비정규직 소속 용역업체 7개 중 5개만 참석했다. 이건 의도적인 배제가 다분하다는 거다. 강사직군은 이후인 4회부터 협의회에 들어갔는데 그때는 벌써 나머지 용역업체 대표자들을 자회사 고용 쪽으로 회유해놨다는 것.

이에 대해 사측은 용역회사별로 계약만료 시점이 달라 먼저 논의를 시작했다”고 했지만, 노조는 “그럼 사측이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했었어야 한다”며 “1회 노사전협의회부터 모든 노동자를 대상으로 협의회 일정을 공정하게 진행했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노조는 이어 대표자 구성 인원에 대한 불합리성을 따졌다. 소속용역별로 63명이 소속된 6개 업체 대표자가 총 6명이고, 전시체험강사 275명이 소속된 업체 대표자는 3명 뿐이라는 말이다. 노조는 거의 2/3의 비율을 차지하는 전시체험 강사가 노측 대표자 비율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게 합리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졌다.

이것 외에도 노조 측은 여러 이유를 들어 협의회 진행 방식이 공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사측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 10회 이상 협의가 진행이 됐고, 그래서 자회사를 통한 고용이 결정됐다는 입장이다.

10여 차례 이상이라는 공허한 숫자

올해 환노위 국감에서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자회사를 통한 고용을 하면 처우도 모회사에 낮고, 복리후생도 낮고, 고용불안도 있다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한국잡월드의 2018년 정규직 전환방향 검토 용역보고서’를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자회사와 직접고용 방식 형태의 실효성을 비교해놨다. 전 의원은 이 보고서에서 모든 실효성 항목을 비교했을 때 자회사 고용보다 직접고용 방식이 비용을 포함해서 대부분에서 동일하거나 더 나음에도 불구하고 자회사 방식을 택한 이유는 정부의 정원 통제를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잡월드 노경란 이사장은 자회사 설립은 통제 이런 걸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회사를 통한 고용은 노사전 협의에 따라 추진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은 한국잡월드의 '2018년도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위탁운영에 따른 전시·체험관 운영의 적시성 부족 및 운영위탁사 교체 시기마다 운영 위험부담 증가로 인해 위탁사업계약 만료에 따른 직접고용 추진 검토 및 시행을 개선과제로 제시했다. 이용득 의원은 “이 문서를 작성한 담당자는 위탁운영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며 “노 이사장은 자기 입장이나 기득권 입장이 아니라 한국잡월드 입장에서 답변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노 이사장은 “사업계획에 있는 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인데 ‘직접고용’으로 잘못 쓴 거 아닌가 생각된다”며 “10여 차례 이상의 노사전 협의 끝에 자회사로 결정났다”고 답변했다.

협의회 과정이 사측의 말대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제대로 진행됐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 인원의 2/3정도를 차지하는 강사직군이 자회사를 통한 고용을 고용이 아니라 직접고용을 원하고, 각종 자료에서 보듯 직접고용이 ‘한국잡월드’ 측에도 더 나은 결과인데도 사측에서는 ‘노사전 협의의 결과’를 이유로 자회사를 통한 고용을 진행한다면 뭔가 설득력있게 와닿지 않는다. 10여 차례 협의회가 진행됐어도, 이렇듯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강사직군이 반대하고 보고서 등에도 나와 있듯 ‘한국잡월드’에 이득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맞다면 10회 이상이라는 말은 그저 공허한 숫자일 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