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혁신, 일하는 방식 바꿔 노사 WIN-WIN
일터혁신, 일하는 방식 바꿔 노사 WIN-WIN
  • 박석모 기자
  • 승인 2018.12.14 11:02
  • 수정 2018.12.1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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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적 노사관계 바탕으로 노사의 참여·협력 전제돼야
공공기관 현실적 한계 … 상급기관 협조 필요

[리포트] 일터혁신 사례 ①공공기관

ⓒ 노사발전재단 홈페이지.
ⓒ 노사발전재단 홈페이지.

일터혁신은 기업들의 경제적 성과와 노동자의 삶의 질을 동시에 높이기 위해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키는 활동을 말한다. 이러한 활동은 생산적 노사관계 구축을 통한 노사의 참여와 협력이 뒷받침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노동연구원 부설 뉴패러다임센터가 설립되어 일터혁신을 확산하기 위한 정책을 수행했다. 이를 이어받아 2010년부터 노사발전재단에서 일터혁신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노사발전재단은 일터혁신컨설팅을 비롯해 일터혁신교육, 일터혁신지수 측정, 일터혁신컨퍼런스에 이르기까지 일터혁신과 관련된 일련의 사업들을 체계화하여 수행하고 있다. 특히 일터혁신컨설팅은 매년 각 기업의 노사로부터 신청을 받아 9개의 영역에 걸쳐 진행한다. 2018년에 진행한 일터혁신컨설팅 중 두 가지 사례를 선정해 2회에 걸쳐 지면으로 소개한다.

무기계약직 전환은 했는데 인사관리는 어떻게?

노사발전재단에서 진행하는 일터혁신컨설팅은 2018년을 기준으로 ▲ 임금·평가체계개선 ▲ 평생학습체계구축 ▲ 노사파트너십체계구축 ▲ 작업조직·작업환경개선 ▲ 장시간근로개선 ▲ 비정규직고용구조개선 ▲ 고용문화개선 ▲ 장년고용안정체계구축 ▲ 일·가정양립의 9개 영역으로 나뉜다.

첫 번째로 소개할 사례는 임금·평가체계개선 영역이다. 직무·능력·역할 중심의 임금체계 등 산업의 변화에 따른 합리적인 임금체계 및 평가체계를 구축하여 인적자원관리시스템의 내부 공정성을 확보하여 직무만족도를 이끌어냄으로써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노동자의 삶의 질을 향상을 목적으로 한다.

컨설팅을 받은 기업은 공공연구기관인데, 해당 기관의 요청에 따라 A기업으로 표기한다. A기업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전환 이후의 인사관리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고, 비교적 컸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과제였다.

기존에는 고용형태에 따라 임금수준의 차등을 두었을 뿐만 아니라, 정규직의 경우 근속년수에 따라 임금이 누적적으로 오르는 반면, 비정규직의 경우 근속년수 자체가 짧다는 점도 이 같은 임금격차의 원인으로 꼽혔다. 또 정규직의 임금은 예산 중 인건비 항목에서 지급되는 반면, 비정규의 임금은 사업비 항목에서 지급된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였다.

컨설팅은 우선 A기업의 각 부서 책임자들과 노동조합을 포함하는 디자인팀을 꾸리는데서 출발했다. 디자인팀에 각 부서 책임자들과 노동조합을 참여케 하는 것은 컨설팅 과정에서 노사가 논의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 도입에서 노동자들의 수용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A기업 당사자들과 컨설턴트로 구성된 디자인팀은 전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포함한 조직진단을 실시했다. 비정규직 인력이 대거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됨에 따라 전환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인사관리체계가 필요했고, 임금격차 해소가 과제였던 만큼 임금 지급기준이 되는 직급체계를 다시 설계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컨설팅에서는 연구직과 행정직으로 나누어 직무분석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직급체계 재설계와 각 역할별 직무 재조정을 제안했다.

직무 재조정으로 일을 관리하다

우선 인사관리체계의 경우 공공기관에서는 ‘무기직’ 혹은 ‘무기계약직’과 같은 이름의 별도 직군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존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한꺼번에 해소되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점을 감안한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볼 수 있다. 공공기관의 입장에서는 구성원의 고용을 안정시키면서 비용 측면에서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방안이기도 하다.

A기업에서 연구직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직무의 차이는 없었다. 연구직은 어떤 연구과제든지 PM(Project Manager, 연구책임자), 연구참여자, 연구지원자의 3가지 직무 중 하나를 수행하게 된다.

기존의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여 이들을 별도의 직군으로 따로 관리하게 되면 연구의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당장 하나의 직군으로 단일화해 동일한 직급체계를 적용하는 데에는 예산과 TO(Table of Organization, 인원편성표에서 의미가 전환되어 정원을 뜻하는 말로 널리 쓰임)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또 채용경로가 다른 만큼 기존 정규직의 반발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A기업에서는 무기계약직 전환자들을 별도의 직군으로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직군으로 단일화하되 직급을 분리했다. 또 해당 직급체계 안에서 승진하기 위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행정직의 경우에는 연구직과 달리 직무가 세분화되어 있었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직무가 나뉘어 있지는 않았다. 고유한 행정업무도 물론 있지만 연구기관의 행정직이기 때문에 연구를 잘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전반적으로 기획기능이 약하고 중간급 관리자들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컨설팅에서는 이 같은 점을 감안하여 각 부서에서 수행하는 직무를 직급별로 재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특히 중간급 관리자에 대해서는 기획력 강화를 포함한 수행업무의 혁신, 네트워크, 부하육성, 전략과의 연계를 직무 재조정의 가이드로 삼았다. 이와 같이 기존의 직무에 대하여 변경, 분리, 신설, 이관, 통합 등을 거쳐 재조정함으로써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총보상’ 개념으로 접근하다

A기업에서는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이후 인사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과 함께 기존의 큰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것 역시 컨설팅의 중요한 과제였다. 그런데 문제는 임금의 관점에서만 이 같은 격차를 해소하려고 하면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동일한 직급체계를 적용하기 위해 예산과 TO 배정이라는 상급기관의 협조가 필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임금격차를 해소하는 데에도 상급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공공기관에 대해서 예산과 TO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은 기획재정부이다.

A기업의 경우, 기존의 비정규직들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됨에 따라 컨설팅에서는 직급체계를 재설계하고 직무 재조정을 제안한 데 이어, 기재부에 무기계약직 TO를 요청했다. 기재부에서도 TO 배정을 승인한 상태다.

다만 예산에 있어서는 한꺼번에 임금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 만한 예산 배정이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감안하여 ‘총보상’ 개념으로 문제에 접근했다. 원칙적으로는 비슷한 수준의 직무가치를 가지는 직무에 대해서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책정하는 것이 옳지만, 기존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가 컸던 만큼 비슷한 수준의 임금을 책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A기업에서는 직접적인 임금이 아닌 교육훈련, 근무환경 개선, 권한 위임, 인정 등의 보상을 통해 조직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는 것으로 전략을 수립했다. 즉 직접적으로 임금을 어느 수준으로 할 것인지의 문제가 아니라 전환자에 대한 처우를 어떻게 할 것인지의 문제로 접근한 것이다.

임금에 대해서는 새롭게 설계한 직무에 따른 직무가치를 측정하고, 그에 따라 기본급과 성과급, 인센티브 등에 차등을 두는 방안을 제안했다. 직무가치에 기반을 둔 임금밴드(해당 직급의 임금 변동 범위)를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한편 평가와 관련해서는 평가와 보상의 연계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설계했다. 평가를 하는 것은 직무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자와 피평가자 사이의 신뢰, 평가 기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인식하여 결과를 수용할 수 있다. 그런 신뢰를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평가와 보상을 연계한다면, 평가 본연의 목적을 실현하는 게 아니라 맹목적으로 직무를 수행 하거나 평가자의 주관적인 평가에 따른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A기업에 대해서는 직무가치를 기준으로 평가를 수행하고, 평가자들은 평가결과를 반드시 기록하고 평가를 받는 당사자들에게 피드백을 해주도록 했다. 그래야만 평가를 받는 입장에서도 업무능력 향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 WIN-WIN,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서도 필요

A기업에 대한 컨설팅을 담당했던 노사발전재단 김창현 책임컨설턴트는 근본적으로 일터혁신을 왜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일터를 혁신하는 것은 결국 구성원의 참여를 통해 일하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노사가 WIN-WIN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김창현 책임컨설턴트는 “조직의 구성원에 대한 가장 좋은 처우는 그 사람에게 적합한 직무를 주고, 그 직무를 잘해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할 때 구성원들이 일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평가나 보상도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평가나 보상의 기준은 결국 직무가 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각각의 직무는 모두 그 존재이유가 있는 만큼, 직무가치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평가와 보상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기존의 재직자들을 대상으로 직무가치를 정하려 하면 반발에 부딪힐 수 있으므로, 직무가치를 기준으로 한 평가와 보상제도를 설계하고 시행하려면 노사 간의 충분한 논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터혁신 컨설팅은 반드시 노사로 구성된 디자인팀과 함께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노사합의 또는 당사자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새롭게 채용되는 이들부터 적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게 해도 5~10년이 지나야 문화가 바뀔 수 있다.

아울러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이 원활하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미래지향적 인사관리체계를 구축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꺼번에 모든 것을 바꾸기 어려운 현실적 한계는 있지만, 처음부터 미래지향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A기업에서도 직면했던 것처럼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해소하기는 어렵다. 한편에서는 구성원의 참여와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외적인 환경과 함께 변화에는 비용이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비정규직을 전환하는 데 있어서 공공기관은 TO와 예산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므로 상급기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관건은 이와 같은 변화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떤 경로를 밟을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변화 과정에서 부딪힐 수 있는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노사의 참여와 협력을 통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어느 한 쪽의 노력만으로는 또 다른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노사가 WIN-WIN하는 것은 일터혁신의 결과뿐만 아니라 일터혁신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구현해야 할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일터혁신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효과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조급해하지 않고 꾸준하게 바꾸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