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공동화 ‘처방전’ 언제 나오나?
제조업공동화 ‘처방전’ 언제 나오나?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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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씨름 그만두고 대책마련 필요한 때


지난해 11월, 노동계와 재계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한국노총과 경총이 공동으로 노사정위원회에 제조업공동화특별대책위원회 설치를 제안한 것. 하지만 제조업공동화의 개념부터, 현상의 진단까지 학계는 물론 노사정의 견해가 달라 특위 구성에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제조업공동화를 둘러싼 쟁점, 어떻게 형성되고 있을까.

 

제조업공동화 VS 산업고도화
우리나라 제조업의 해외투자는 2001년을 기점으로 서서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발표한 2004년 10월까지의 해외투자현황에 따르면 순투자건수가 2898건, 금액은 39억 달러에 이르며, 이 중 제조업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업체가 가장 많이 진출하는 국가로는 중국이 1709건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렇듯 국내 제조업체들은 계속해서 해외로 나가고 있는데, 이를 둘러싼 해석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제조업공동화로 볼 것인지’ 아니면 ‘산업구조조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고도화 현상으로 볼 것인지’ 견해차이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제조업의 해외이전에 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쪽은 노동계다. FTA, BIT 등 온갖 기구와 협정들이 몰려오고 있는 가운데, 국내 토종기업들의 생산시설 축소와 이전은 고용감소로 이어져 심각한 공백상태를 가져올 것이라는 입장이다. 제조업의 고용효과가 90년대 초반까지는 27.6%에 이르던 것이 2004년도에 들어 19% 밑으로 떨어지고 있기 때문.


하지만 이에 반해 정부는 느긋한 태도다. 산업자원부의 한 관계자는 “경제에 구멍이 생기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고 밝혔다. 즉, 한계산업이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구조조정의 결과라고 보는 것이다.


이는 재정경제부도 마찬가지다. 외국과 비교해봤을 경우 해외투자 잔액 비중이 GDP대비 10%정도 밖에 안 되는 수준으로, 25%에 달하는 선진국들보다 낮다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그래서 제조업공동화라는 표현보다는 제조업의 ‘서비스화’ ‘소프트화’라는 개념으로 쓸 것을 주장한다. 또, 기술유출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며 법적조치를 통해 통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재계는 제조업체들의 해외 이전이 고도화 단계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고용에 심각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정부가 대체산업을 육성해서 기업들이 빠져나가더라도 공백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렇듯 각각의 입장이 모두 다르지만 서로 다른 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해외이전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과 그에 따른 고용불안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철저한 실태조사는 물론 대책수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조업공동화특위 ‘동상이몽’ 우려
문제해결을 위한 제도적 방안 논의는 지난 11월 한국노총과 경총이 공동으로 제출했던 제조업공동화특별대책위원회의 설치 제안으로 시작됐다. 그 결과 2004년 12월 29일, 노사정위원회는 본회의에서 가칭 ‘제조업공동화’ 대책을 의제로 선정하고, 논의기구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한국노총과 경총이 고용안정과 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역량을 한 곳으로 모을 필요가 있다고 느낀 것.


하지만 그 고민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경총의 한 관계자는 “개별 기업의 고용안정이나 근로조건을 위한 것이었다면 산자부까지 끌어들여 참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고용문제에 국한된 이슈가 아님을 밝혔다. 내수시장 확보의 어려움, 정책의 부재, 노사 간의 갈등 등 기업들이 계속해서 한국 땅을 떠나는 상황 자체를 어떻게 인식 해야 할 것인지, 기업이 경영하는 데 어려운 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고심하고 있다.


반면 한국노총은 다양한 투자협정 체결로 시장개방이 심화되면서 기업이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졌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계속해서 해외로 빠져나가는 문제를 비용이 아닌 생산력의 문제로 볼 것을 주문한다. 비용의 문제로만 접근할 경우 고용의 파괴로 이어져 국민경제의 미래가 밝지 않은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비용절감을 위해 중국으로 나가고 있지만 ‘재미를 본 곳’이 소수일뿐더러, 언제까지 저임금으로 머무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특위 구성은 올 1월 12일 노사정위원회 상무위간사회의를 거쳐 1월 14일 간사실무회의에서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간 상태로 2월 초 본회의에서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논의 회의체는 기존 회의체를 활용하는 방안과 업종별 협의회를 활용하는 방안이 제시됐으나 특별위원회 설치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의제선정과 명칭, 구성에 관해서는 아직 이견이 분분하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 차이가 분명해 의제설정에 있어 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경총 이호성 본부장은 “논의 처음에는 산자부가 특위구성까지 갈 것 있느냐고 했지만, 1차 고비는 넘긴 것 같다”고 말했다. 세부 내용을 채우는 데는 어느 정도 진통이 예상되지만 구성을 합의한 만큼 논의의 실마리를 풀었다는 분석이다. 특위 구성이 난항을 겪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는 “논의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진행과정을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편 우려감을 나타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반복되어 온 노사갈등의 연장선에서 그칠까봐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며 서로의 입장만 내세우는 소모전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노동계 일부에서는 실효성을 담보하기에 앞서 기업들의 ‘유연화’ 논리에 힘을 실어주게 된다는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고용을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이 ‘창’을, 노동계는 ‘방패’를 들 수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정길오 본부장은 “기업유출을 막고 공동의대책을 어떻게 마련할건지 구체적 논의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노동계도 재계도 문제의 해결책을 같이 풀어가기로 한 만큼 무엇보다 솔직한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도 계속되는 해외이전
입씨름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쟁력을 갖춘 ‘알짜’ 기업들은 하나둘씩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2003년 산자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0인 이상 기업의 37.5%가 5년 이내에 해외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최근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자본력과 업력을 갖춘 중화학공업 분야의 업체들이라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더 하다. 2003년 해외 제조업 투자신고를 살펴보면 중국투자 중 전자통신장비, 기계장비 등 중화학 공업이 53%, 경공업이 47%를 차지하고 있다. 인건비를 포함한 비용절감을 목적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했던 예전과 달리 해외시장 개척을 목적으로 진출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행의 ‘중소제조업체의 중국진출 실태조사’에 따르면 77.7%의 기업이 중국 진출시 필요한 자금을 자기자금으로 충당했고, 6년 이상의 업력을 갖춘 업체의 비중이 65.3%에 달했다. 문제는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제조업을 대체할 만한 산업이 육성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는 고용효과가 큰 지식기반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계속 밝히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서비스업은 선진국에 비해 생산능력이 절반 정도의 수준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특위 구성을 앞두고 제조업공동화다, 아니다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응책 마련에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노동계는 “내부에 대책기구가 없어 조사가 힘들다”고 하고, 재계는 “실태조사에 어려운 점은 예산투입”, 산자부는 “특위에서 실태조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미루고 있다. 국내총생산대비 부가가치 비중이 30%에 달하는 등 국가경제에 중추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효자 산업인 제조업. 경제의 장기침체를 가져올 수도 있는 공장의 해외이전 문제를 막기 위해 실효성 있는 처방전을 내려줄 노사정 합의기구를 기대해 본다.

제조업공동화 진단, 어떻게 다를까


● 삼성경제연구소 「제조업공동화 가속과 대응방안」
“제조업의 해외생산이 늘어나면서 공동화 우려가 현실화” “제조업이 우리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파급효과도 크기 때문에 공동화가 가속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됨”
“제조경쟁력이 약하여 공동화로 인한 산업유실 가능성 높음”


● 산업연구원 「제조업공동화 지수와 업종별 공동화 추이 및 대일비교」
 “한국의 제조업종 공동화 수준은 대체로 일본의 해당업종의 1990대 초반 공동화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남”
“2002년까지의 통계로 볼 때 제조업 전체 차원에서는 우리나라의 제조업공동화가 특별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기 어려움”

 

● 산업연구원 「한국경제의 산업구조 변화 요인 분석」
“고용비중의 관점에서는 한국경제의 탈공업화가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으나 실질생산비중의 측면에서는 아직 탈공업화가 진행되고 있지 않음”


● LG경제연구원 「제조업공동화 논란의 허와 실」
“불변가격 기준 부가가치 측면에서 볼 때 탈공업화의 조짐은 아직 나타나지 않은 셈”
“제조업 고용이 지난 수년간 위축됐다고 진단하는 것도 성급하다”


● LG경제연구원 「산업공동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우리 제조업은 고용측면에서 악화되고 있고 중장기적으로 경쟁력의 약화문제가 있기 때문에(중략) 낙관하기는 힘들 것이다” “글로벌한 생산, 수출경쟁력, 마케팅능력을 강화하지 못한 채 제조업이 쇠퇴하고 비제조업도 발전하지 못한 해외투자 부진형 산업공동화를 경계해야 할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