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준혁의 로우앵글] “감수하시겠습니까?”
[송준혁의 로우앵글] “감수하시겠습니까?”
  • 송준혁 기자
  • 승인 2019.02.12 11:25
  • 수정 2019.02.12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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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혁의 로우앵글]언제나 로우앵글로, 언제나 낮은 시선에서 바라보겠습니다.

 

송준혁 기자 jhsong@laborplus.co.kr
송준혁 기자 jhsong@laborplus.co.kr

 

“감수하시겠습니까?”

성적을 위해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겠냐는 입시 코디네이터의 물음에 예서 엄마 곽미향은 어떤 일도 감당할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그녀는 문제를 겪으면서도 수십억 원에 이르는 입시 코디네이터를 포기하지 못하죠. 수재들이 모인 명문고인 신아고에서 딸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믿어버리고 맙니다.

드라마 'SKY캐슬'의 인기요인은 다른 것보다도 한국의 경쟁적 입시교육을 잘 반영했기 때문일 겁니다. 드라마 밖에서도 예서가 아닌 우리나라의 모든 수험생들은 일생에 걸쳐 경쟁을 경험하게 됩니다.

경쟁은 그 과정에서의 공정성이 담보된다면 누구나 납득할만한 평가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좋은 도구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경쟁을 통해 얻게 되는 승자의 당연한 우월적 지위를 일생을 거쳐 배우고 경험합니다.

한편 예서 엄마 곽미향이 인기를 얻고 있을 때 TV 밖 다른 한 명의 어머니는 62일간 눈물을 잠시 참고 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다시 자신의 아들과 같은 죽음이 반복되는 것을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故 김용균 님의 어머니 김미숙 씨입니다.

한 어머니의 간절했던 싸움은 결국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 김용균 법의 통과와 아들과 함께 일하던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무한 반복되는 경쟁은 차별과 혐오라는 부산물을 만드나 봅니다. 우리사회는 여전히 죽음 앞에서도 경쟁을, 그리고 차별과 혐오를 더 감수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포털사이트에 실린 발전노동자 정규직 전환과 관련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고 씁쓸함이 가시지가 않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비율이 2배 가량 높은, 위험의 외주화에 내몰려 죽음이 반복되고 있는 현실임에도 많은 댓글들이 또 다시 '경쟁'과 '공정'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를 직고용하는 공공기관이 생긴다는 기사에 달린 ‘실력도 능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 하청업체로 들어와서 경쟁률 50:1이 넘는 공기업 정규직이 된다는 게 말이 되냐?’는 댓글은 우리사회에 뿌리내린 '경쟁'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과도한 경쟁 속에 출발선과 도착점이 다른 사안에까지 차가운 '공정성'의 원칙을 들이밉니다.

원청이 직접고용하지 않는 한 불법파견이 되고 하청업체에 소속된 노동자를 죽음으로 내모는 위험의 외주화는 사라지지 않는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공정한 경쟁'을 이야기합니다. 목숨을 담보로 한 경쟁, 엉뚱한 공정의 잣대가 날카롭습니다.

'SKY캐슬' 마지막 회에서 경쟁에 몰려있던 신아고 학생들은 책을 던지고 교문 밖으로 뛰쳐나갑니다. 극도로 내몰린 경쟁을 더 이상 감수할 수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드라마 밖, 현실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도 자문해 봐야할 때입니다.

“경쟁과 차별을 계속 감수하시겠습니까?” "당신의 공정은 공정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