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의 프리킥] 오 마이 갓(gat)
[박종훈의 프리킥] 오 마이 갓(gat)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9.02.18 11:53
  • 수정 2019.02.18 11:5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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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프리킥] 점심시간 야구 얘기가 듣기 싫어 축구를 좋아하기로 한 불경스런 축구 팬이 날리는 세상을 향한 자유로운 발길질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박종훈 기자 jhpark@laborplus.co.kr

넷플릭스가 투자한 한 드라마가 화제입니다. 왜란과 호란을 거친 조선 중기 즈음을 배경으로 무려 ‘좀비’가 창궐한다는 내용입니다. 공중파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장면들, 가령 붉은 피가 튀고 사지육신이 날아다니는 액션씬을 볼 수 있습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별점을 매겨보자면 ‘★★★☆☆’ 이 정도랄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바로 멋진 의상입니다. 양반이든 노비든, 걸치고 있는 입성이 멋들어지게 어울립니다.

영화나 드라마 중에서도 역사물을 아주 좋아하는데, 이 역사물은 제작에 얼마나 돈을 들였는지가 바로 드러납니다.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구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꼬치꼬치 흠 잡을 일 없는 상상 속 세계나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면 말이지요. 눈에 불을 켜고 ‘옥의 티’를 찾으려 드는 열혈 팬들에게 인정받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아무튼 역사물에 돈이 든다는 건 동서양이 비슷한 가 봅니다. 히트작을 줄줄이 낸 잘 나가는 미국의 한 제작사가 영국 튜더 왕가의 헨리 8세를 주인공으로 한 역사물 시리즈를 만들고 재정적으로 휘청거렸다고 합니다. 주범은 다름 아닌 등장인물들의 화려한 의상 때문이었다네요. 국내 방송사들이 대하 사극 제작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도 다름 아니라 미술, 의상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큰 물주(?)의 지원으로 만든 드라마는 눈요깃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외국인들의 눈에도 인상적이었나 봅니다. SNS 등에서 평을 보면 특히 조선시대 남자들이 썼던 다양한 종류의 모자에 감탄을 금치 못하는 거 같습니다.

다른 의복과 마찬가지로 모자 역시 추위나 더위 등을 피하고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또 예의나 격식을 갖추거나 보기에 아름답도록 치장하는 역할도 합니다. 전자와 같은 기능을 하면서도 후자를 심오하게 발전시킨 조상들의 모자 사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갓, 흑립의 경우, 비슷한 원형을 무려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 갓을 비롯한 모자류가 다양한게 분화되고 발달하는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라고 합니다. 아무래도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양반들의 예의와 격식을 차리는 문화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집안에서도 맨 머리, 맨 상투를 보이는 것을 꺼리며 모자를 썼고, 외출할 때나 격식을 갖춰야 하는 행사 자리에서는 당연히 거기에 걸맞은 또 다른 모자를 착용했습니다. 관직을 갖고 있는 이들도 모자를 써야 했고, 무(武)인들 역시 모자를 씁니다. 챙 넓은 전립이나 갓을 쓰고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감탄이 나옵니다. 히야, 저래서 시야 확보가 되나? 조상들의 모자 사랑을 아래 그림처럼 정리해서 한 눈에 보여주는 이들도 있고요.

실내에서 모자를 쓰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서양식 에티켓에 비하면 정반대입니다. 그네들은 오히려 쓰던 모자를 벗는 것이 예의바른 행동이라는 것이지요. 서양식 문물을 받아들인 지금 우리가 조상들처럼 갓을 쓰는 일상은 없지만, 복장을 통해 예의나 격식을 차리는 경우는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이는 한 공공기관의 개방형 직위에 응모하기 위하여 옷부터 한 벌 맞췄다고 합니다. 심사 과정에 면접이 포함돼 있는데, 오랜 세월 직장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면접 의상’을 준비하는 데에도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왜냐하면 주로 신입사원 면접용 의상을 판매하기 때문이었죠. 풋풋하면서도 단정하고 열의와 성의는 물론 똘똘함을 보여줄 수 있는, 이른바 신입 면접 의상을 입기엔 좀 아닌 거 같았다네요.

가끔 불시에 부고를 접하면 약간 난감할 경우가 있습니다. 과연 문상에 적절한 복장상태인지 가늠하게 되는 거지요. 남의 결혼식에 축하하러 가면서도 종종 복장이 고민될 때가 있습니다. 테니스장에 처음 갔던 날에는 주의를 듣기도 했습니다. 하필 그날 신고 갔던 운동화가 밑창에 골이 깊었거든요. 테니스화를 빌려 신어야 했습니다.

주말에 주요 등산로 주변을 지나다보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급 아웃도어 브랜드로 무장한 이들을 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요새는 좀 인기가 시들해졌습니다만 한때 스키나 보드를 타려면 우선 복장부터 갖추는 것이 중요했고요.

일정한 격식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파격(破格)입니다. 지금이야 좀 자유로운 시대라고 하지만, 격식이 일상을 훨씬 더 단단하게 조이고 있던 시대에 파격은 아주 모험적인 행위였을 것입니다. 전후의 파장을 주도면밀하게 계산한 행위였을 터이지요. 파격이라고 해봐야 주위에서 욕이나 먹고, 공동체에서 배척당하며, 경우에 따라선 목숨이 위험하기만 하면 얌전히 하던 대로 해야지요.

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는 부친의 장례 때 제멋대로의 옷차림으로 뛰어들어, 향 한 주먹을 제사상에 던지는 것으로 분향을 대신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파격은 후계 문제를 두고 주판알을 굴리던 노회한 가신들을 향한 강렬한 시위였습니다.

모자 이야기로 시작한 복장 문제가 기능이냐 격식이냐 따지는 것은 모두 인간사와 관련 있기 때문입니다. 요즈음은 애완동물에게도 옷을 입혀주는 일이 많으니 이야기인데, 개가 어떤 복장이든 문제가 되는 경우는 없지 않습니까?

과연 저 차림새가 어떤 의미이고 무슨 의도를 가진 것인지 해석하고 싶은 과거와 오늘의 인간들이 계속 눈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