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성 영역의 틀을 깨부수다
자발성 영역의 틀을 깨부수다
  •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8.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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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집회라는 새로운 놀이문화 만든 청소년들

지난번까지 5회에 걸쳐 ‘창의적으로 살아가는 청소년의 20가지 공통점’을 소개했었지요. 이번부터는 촛불집회에 대해, 아니 그 거대한 촛불집회를 처음 불붙인 청소년에 대해, 아니 좀 더 좁히면 그렇게 촛불을 들고 나와 광장에서 자발적으로 집회를 하고 새로운 놀이문화를 선보이면서 자기 할 말을 하는 청소년의 등장과 이들을 조금은 충격적으로 바라봤던 우리 어른들의 판에 박힌 고정관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어른들만 묻고 있는 촛불의 배후

이미 여러 차례 거론됐듯이, 우리 사회의 어른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아니, 이 어린 청소년들이,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쏟아져 나와 정치집회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 첫 번째 놀람이었지요. 정부가 위험하지 않다는데도 ‘미친소’라며 정부의 방침에 반대하고, 그 ‘미친소’를 수입하겠다고 결정하고 웃은 대통령을 반대한다고 하니, 이게 정치집회가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문제는 이런 정치집회를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했다는 걸 어른들은 결코 상상할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촛불집회가 석 달 째 이어지고 있는 지금까지도 유독 청소년들에 대해서 “배후가 누구냐?”는 질문이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언론 등의 어른들 시선에서 끊이질 않는 것이겠지요.

그러니 어느 여고생이 TV에서 말했듯이, “부실한 학교 급식에 워낙 걱정이 많았고 날마다 다이어리에 오늘의 급식이 어떠했는지 메모를 했는데, 어느 날 보니 광우병 위험이 있을지 모를 미국산 쇠고기가 밥상에 오르는데, 특히나 학교 급식에 쓰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하니, 이건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서 친구들과 촛불 들고 청계천 광장에 나갔다”는 이야기를 어른들은 도통 믿을 수가 없었을 겁니다.

하여 어른들은 여전히 묻는 것이지요. “배후가 누구냐?”라고요. 역시 TV에 보도됐듯 촛불집회에 나가자고 인터넷에 글을 올린 한 남자 고등학생이 어느 날 수업을 받다가 조용히 교무실로 불려가지요. 거기에는 낯선 어른 남자가 앉아 있는데, (실은 형사였고) 자기가 누구인지 먼저 밝히지도 않은 채 역시 그 남자 청소년에게 “배후가 누구냐”는 질문부터 던졌다고 하더군요. 한 마디로 특정한 어른들의 배후조종이 아니었다면, 지금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의견을 갖고, 역시 자발적으로 청계천 광장에 모여서 촛불을 들고, 피켓을 들고, 정부를 비판하는 구호를 외칠 수 없다고 굳게굳게 믿고 있었던 것이지요.

학교 공부만 ‘자발적’으로?

이번 촛불집회에 등장한 청소년들은 바로 그런 어른들의 고정 관념을 여지없이 깨뜨렸습니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여겨왔던 정치적 사안이나 정책적 사안에 대해 의견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 특히나 그것이 10대 청소년들의 의식주에 직결되는 생활의 문제라면, 매우 강하게 의견을 형성하고 표출한다는 것이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널리 알려진 셈입니다. 물론 자발적으로요. 그리고 그러한 청소년들의 의견은 인터넷과 휴대폰 등 일상사가 된 개인미디어의 네트워크를 통해 온라인은 물론 오프라인에서도 10대 또래들의 자발적 집회라는 행동으로 빠르게 촉발된 것입니다.

역시 자발적으로요. 이쯤해서 우리는 그 ‘자발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교육은 이미 ‘자기주도적 학습’이란 멋진 말을 쓴지가 꽤 오래됐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 자발성이라는 것이 주로 학교 공부영역에서만 이뤄져야 한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두발규제 철폐를 주장하는 10대들에게 ‘너희들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그런 문제로 싸울 게 아니라 공부해서 대학에 가고 볼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렇게 어른들은 청소년의 자발적 의견과 행동에 대해, 이를 테면 팔다리는 자발적으로 쓰고 머리와 척추는 어른들이 제시한 대로만 수동적으로 쓰게 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온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자발성’이라는 것이 생명을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자기 생존과 존엄을 위한 본능이라면, 그렇게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건강하게 살고 싶어 발휘하려는 그 자발성을 일부는 허용하고 일부는 금지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학교 공부를 자발적으로 했던 청소년이 ‘미친소’의 문제점을 느끼고 촛불 들고 청계천 광장에 나가서 구호를 외치는 자발성을 발휘하는 것은 어쩌면 같은 자발성일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는 어른들의 오랜 고정관념이 깔려 있지 싶습니다. 다음에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