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혜의 온기] 충무아트센터 취재 후기
[최은혜의 온기] 충무아트센터 취재 후기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07.01 11:05
  • 수정 2019.07.0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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溫記 따뜻한 글. 언제나 따뜻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최은혜기자 ehchoi@laborplus.co.kr
ⓒ최은혜기자 ehchoi@laborplus.co.kr

이렇게 또 한 달이 마무리됐다. 내게 한 달이 마무리됐다는 것의 의미는 월간 <참여와혁신>의 원고를 마감했다는 의미다. 이번 7월호 취재는 정말이지 힘들었다. 몇 차례의 실패 끝에 겨우 잡은 충무아트센터 취재는 당일까지도 우여곡절을 겪게 했다.

사실 충무아트센터의 쟁의행위는 입사 전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지난 2월, 충무아트센터에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그 당시 충무아트센터의 쟁의는 300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거의 1년 만에 방문한 충무아트센터 로비는 각종 벽보와 피켓으로 어지러웠다. 입구에는 충무아트센터가 쟁의에 돌입한 일수가 적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은 아무 사고 없이 올려지고 있었다. 로비의 수많은 관객들은 공연을 볼 생각에 들떠 삼삼오오 기대감을 드러내기 바빴을 뿐, 충무아트센터의 쟁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물론 나도 ‘아직 쟁의가 안 끝났네’라는 생각만 했을 뿐 공연에 대한 기대만 가득했다.

입사를 하고 나서도 충무아트센터의 쟁의는 지속됐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왜 쟁의가 지속되는가’에 집중하게 됐다는 점이다. 아무런 사고 없이 공연이 상연되고 때마다 공연이 올라가고 내려가지만 쟁의를 하는 이 와중에 이렇게 정상적인 순환이 가능하다는 점도 궁금했다. 몇 차례의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 충무아트센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충무아트센터의 노동환경은 꽤 열악하다. 사실 ‘꽤’가 아니라 '상당히' 열악하다. 대극장 조명 담당 1명, 음향 담당 1명, 중극장 조명 담당 1명, 음향 담당 1명 등 각 극장마다 설비 담당자가 한 명이다. 공연은 끊임없이 올라가는데 교대할 사람이 없다. 결국 한 명의 노동자는 모든 업무와 책임을 떠안는다. 가족과의 시간은 사치가 된다.

예술로 밥 벌어먹고 사는, 그러니까 예술노동자에게는 ‘열정’이라는 이름의 노동이 강요된다. 충무아트센터의 문제 역시 그렇다. ‘공연은 원래 열정으로 하는 거야’, ‘예술가는 원래 가난해’ 따위의 인식은 예술노동자들을 장시간 중노동의 굴레에 가둬버렸다. 예술노동자가 그 굴레를 벗어던지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원래 그렇다’는 말처럼 폭력적인 말이 또 어디 있을까.

예술노동은 그 노동의 결과물을 소비하는 사람에게 소중한 추억과 시간을 선물한다. 그런 소중한 추억과 시간이 누군가의 일방적인 희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과연 정말 소중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매년 오르는 티켓값이 예술노동자에게 돌아가지 않는다면 내가 낸 티켓값의 의미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대부분의 공연이 쉬는 월요일, 오늘도 소망한다. 예술노동자들이 오늘은 편안히 쉴 수 있기를. 장시간 중노동의 굴레를 벗고 노동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기를. 오늘은 충무아트센터의 피켓과 성명서가 사라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