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속에 뿌리 내리는 노조운동
국민 속에 뿌리 내리는 노조운동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07.3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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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특집Ⅱ] 대한민국 노동조합을 말하다
⑧-5 계승하되 혁신하라

분산적 활동 네트워크로 묶어내야

지난 7월 17일. 양평의 한 휴양지에서는 한국노총서울지역본부(이하 서울노총)의 워크숍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주제는 ‘노동조합의 사회공헌활동 방안 모색’.

그동안 서울노총은 자매결연을 맺어 농촌봉사활동을 진행하고 산하 노동조합의 추천을 받아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에 앞장서왔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나눔 활동 물결운동’ 등을 통해 산하 노동조합들이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이번 워크숍은 그동안 노동조합들이 알게 모르게 진행해왔던 사회공헌활동의 의미를 정립하고 네트워크를 구성해 더욱 활성화시키자는 취지로 열렸다.

이날 발제를 맡은 한국노총 양정주 대외협력본부장은 “그동안 노동조합의 사회공헌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조직력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하는 노동조합 활동가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발표했다.

그는 이어서 “노동조합의 사회공헌활동을 일부 대기업의 면피성 사회공헌활동, 돈으로 때우려는 사회공헌활동과 동일하게 봐서는 안 된다. 노동조합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지금 노동조합운동이 국민 속에 뿌리 내리기 위한 전략으로 사고해야 한다”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단순히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는 것.

이날 워크숍에 노사정 각 단체를 대표해 참석한 토론자들은 노동조합 사회공헌활동의 방향에 대한 몇 가지 제안을 하기도 했다. 노사발전재단 여상태 부장은 “노동조합의 사회공헌활동은 양극화와 취약계층이 증가하는 현실에 대해 구조적인 처방을 요구하고 이를 노사가 공동으로 실천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리고 그런 실천의 장은 지역”이라며 사회공헌활동이 지역사회와 밀착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동안 노동조합의 사회공헌활동은 단순한 봉사활동이나 기부금 내는 것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노총 워크숍처럼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노동조합운동, 국민의 지지를 받는 노동조합운동을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활동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길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건강보험공단직장노조는 최근 공단과의 협의를 통해 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전동휠체어에 대해서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도록 했다. 이는 특히 노조가 그동안 연대하던 장애인단체와 힘을 합해 이루어낸 것이기에 더 의미가 크다.

직장노조 곽태형 정책의장은 “직장노조는 사회공헌활동에 노사 구분이 없다고 생각한다. 공단도 사회공헌활동에 적극적이고, 공단 직원 90% 이상이 각종 봉사단에 가입돼 있을 만큼 사회공헌활동에 열심”이라며 “사회 발전에 노동조합이 기여하는 방식은 꼭 특정한 방식으로 한정될 필요는 없다. 필요한 부분이 있고 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공공노조 사회보험지부는 전국에서 영화 <식코> 상영회를 개최하고 있다. 건강보험이 민영화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를 홍보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식코> 상영회에는 많은 노동조합들이 함께하고 있다. 사회보험지부의 노력 때문인지 <식코>는 전국적으로 높은 호응 속에 상영을 계속 하고 있다.

사회보험지부 이경환 선전국장은 “특히 의료혜택이 열악한 곳에서 호응도가 높은 것을 보며 국민들에게는 이 문제가 절실한 문제임을 새삼 재인식하게 됐다”고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식코> 상영회가 이처럼 호응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보험지부는 조합원 교육시간을 활용해 단체관람을 하기도 했다. 어렵사리 상영관을 잡았는데 영화가 조기에 내려지면 어쩌나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는 점을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경환 국장은 “노동조합에서 하는 캠페인이 이번 <식코> 상영회처럼 매번 성공만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회보험지부는 국민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며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금기를 깨자

K사 노사는 최근 마무리된 임단협에서 생산성 10% 향상을 위해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생산성 10% 향상이라는 교섭결과를 두고 찬반투표를 실시했을 때 많은 조합원들이 찬성표를 던져 가결될 수 있었다. 조합원들이 이런 결과에 대해 수긍하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K노조는 그동안 민주노총에서도 강성 사업장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곳이다. 그동안 생산성 향상이라는 교섭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물론이고, 생산성 문제를 교섭의제로 다루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K사 노무부서 관계자는 이를 두고 “그동안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을 하지 않는 것을 선(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교섭결과는 조합원들이 정당한 노동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발상을 전환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생산성 향상에 노동조합이 나서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자칫 노동자들에게 노동강도 강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을 강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조합원들의 고용을 유지하는 일이라면 노동조합이 수동적으로 회사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합리적 생산성 향상 방안을 찾는 것이 오히려 조합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이번 K사 노사의 결정은 그런 노력을 위해 중요한 한 걸음을 뗐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노동조합 본연의 임무는 임금을 포함해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권익을 지키는 일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역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그것이 노동조합에게 또 하나의 부담을 지우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노력 속에서 노동조합운동은 국민들 속에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은 이미 많은 노동조합들에서 시도되고 있다. 계승하고 지킬 것은 지켜가야 한다. 그와 함께 새로운 길을 찾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급변하는 환경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