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솜의 다솜] 노인 유튜버의 일, 그 너머
[정다솜의 다솜] 노인 유튜버의 일, 그 너머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7.22 11:10
  • 수정 2019.07.22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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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의 옛말.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 사랑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정다솜 기자dsjeong@laborplus.co.kr

모바일 콘텐츠 회사에서 일하면서 알았습니다. 영상은 사람을 갈아서 만드는 콘텐츠입니다. 유튜브에 올릴 10~20분짜리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4~5명의 인원이 일주일을 온전히 달라붙었습니다. '기획-촬영-편집-CG-자막-검수-편성' 일련의 과정에 작가, PD, 출연자, 그래픽디자이너, 영상편집자 등 제작진은 노동력을 쏟아부었습니다. 한컷 한컷마다 아주 긴 노동이 필요했습니다. 그런 중노동을 매일 목격하던 저는 영상 스태프들에게 야근 수당만 제대로 준다면 우리나라 고소득 직업 순위가 바뀔 수 있겠다는 상상도 해봤습니다.

최근 청년도 체력적으로 힘든 영상 제작 시장에 '시니어 유튜버'가 뛰어들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픈마켓 옥션이 지난 3월부터 한 달간 5060 세대의 영상제작용품 구매량을 살펴보았더니 스튜디오 영상장비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44% 증가했다고 합니다. 저도 지난달 25일 광화문광장에서 시니어 유튜버들을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그날 새벽 서울시가 강제 철거했다가 반나절 만에 더 큰 규모로 생긴 우리공화당의 '농성천막' 아래에서였습니다. 

저녁 8시, 분위기는 사뭇 진지했습니다. 광장 가운데 흰 테이블, 그 앞에 두 명이 앉아 그날 자신들이 겪은 일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주변엔 반원으로 앉은 시니어 유튜버들이 현장을 생중계했습니다. 기자로서 가본 여느 취재현장 못지않았습니다. 저는 그들의 취재를 방해할까 봐 허리를 굽히고 발걸음을 조심히 옮겨야 했습니다.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자신들의 목소리를 편집이나 왜곡 없이 세상에 그대로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시니어 유튜버들의 눈은 빛나 보였습니다. 

괜히 숨죽인 채로 그 진중한 프로의 눈들을 바라보다가 궁금했습니다. 모바일 콘텐츠 회사에서 봤던 영상 스태프들은 강도 높은 노동으로 인해 눈 밑에는 늘 다크서클을 단 채 지쳐있었습니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시니어 유튜버들의 눈은 생기로 넘쳤습니다. 아마 아침부터 저녁까지 광장을 지켰을 텐데요. 그들의 행위도 영상 제작 스태프의 '노동'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6월25일 저녁 광화문광장 우리공화당 농성천막 아래서 현장을 생중계 중인 시니어 유튜버들의 모습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6월25일 저녁 광화문광장 우리공화당 농성천막 아래서 현장을 생중계 중인 시니어 유튜버들의 모습 ⓒ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독일의 철학가 한나 아렌트라면 시니어 유튜버의 활동은 '노동'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겁니다. 아렌트는 책 <인간의 조건>에서 근대사회가 '일'이 아닌 노동사회로 전개되는 것을 비판했는데요. 이 책에서 노동과 일은 구분되는 개념입니다. 노동은 생계유지를 위한 신체활동이고 일은 그 이상을 추구하는 활동으로 아렌트는 봅니다. 노동은 어느 정도 강제성을 가진 임금노동인 반면 일은 경제적 보상과는 무관한 활동까지 포함합니다. 

어원으로도 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일은 영어로 work, 독일어로 werk입니다. 모두 '작업'이라는 뜻이며 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 '작품'이라는 의미도 가집니다. 반면 노동은 영어로 labor 독일어로 arbeit입니다. 어원상 '견디기 고통스러운 활동'을 지칭합니다. 어원으로 보면 일은 노동에 비해 자율성이 있고 창의적인 작업인 것이죠. 제가 본 광화문광장 위 시니어 유튜버들은 비록 경제적 보상은 충분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삶에는 유용한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그들의 삶에 유용할까요? 수입보다 시니어 유튜버들이 받는 진짜 보상은 '관심'입니다. 유튜브에 올라오는 콘텐츠 중 특히 정치색이 있는 영상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댓글로 찬반이 충돌하는 포털과는 달리 유튜브에서는 지지자의 동조가 주를 이룹니다. 생방송 라이브 중에는 유튜버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어가며 댓글 창에 옮기는 충성 시청자도 여럿입니다. '내 편'인 시청자의 열정적 관심이 유튜버로서 꾸준한 '일'을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셈이죠. 

그렇지만 일부 시니어 유튜버들의 '일'을 마냥 긍정적인 시선으로 볼 수만은 없겠습니다. 정년 이후 오직 온라인상 타인의 '관심'에서 자신의 효용을 확인하고자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분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15%에 이르는 고령사회입니다. 곧 인구 5명 중 1명이 정년을 마친 노인으로 이루어진 초고령 사회에 들어서게 될 겁니다. 사회에서 육체노동이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65세를 지나 노동자로서 효용을 잃었다는 시선을 받는 노인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는 관심을 갈망하는 시니어의 공허를 넘기지 말아야 할 이유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