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노동존중 사회의 증거
[손광모의 노동일기] 노동존중 사회의 증거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7.23 11:04
  • 수정 2019.07.23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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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서울말은 부드러웠지만 서울은 깐깐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취업의 문턱에서 서울을 처음 대면했다. 서울은 낙방의 기억으로 가득했다. 취업의 괴로움은 서울이라는 공간에 덧씌워졌고 그러다보니 내게 서울은 어딘지 모르게 거부감이 드는 장소였다. 서울에 내 자리는 없었고 나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나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깐깐한 서울도 ‘온기’가 있는 곳이었다. 서울의 온기를 나는 엉덩이로 먼저 느꼈다. 추운 겨울날 인적 드문 아침 서울거리. 새벽부터 서울로 올라와 합숙면접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가 오기까지는 10분 남짓. 무거운 짐을 아무렇게나 치워두고 피곤한 몸을 잠시 놀리려고 의자에 기댔다. 나는 깜짝 놀라 일어섰다. 예상치 못한 의자의 온기에 내 엉덩이는 놀랐다. 서울은 정류장 의자에도 온열 장치가 있는 '별천지'였다. 서울에서 처음 느낀 따뜻한 온기였다.

그 날,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잠시나마 추운 몸을 녹일 수 있었다. 온기가 피어나는 그 자리는 나의 마음까지 녹였다. 비록 면접에서는 떨어졌지만 그 온기는 잊지 못한다. 그것은 위로였다. 의자의 온기는 서울에 대한 인상을 정반대로 바꿔 놓았다. 전인권이 노래하듯, “내가 왜 서울을 사랑하지 않겠어요.” 그 날부터 서울이, 아니 가혹한 취업현실이 그래도 살만하게 느껴졌다.

시간은 흘러 무더운 여름이 찾아 왔다. 취업의 문도 조금은 열려 내게 기자라는 직업이 주어졌다. 한 달 남짓 짧은 기간이지만 취재를 다니며 나는 ‘서울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음을 목격했다. 홀로 외롭게 서있는 1인 시위자들. 자신의 몸이 목소리가 된 존재들이 그렇다. 그들은 무자비한 햇볕을 가릴 수 있는 큼지막한 판넬을 들고 있었지만 단지 묵묵히 뜨거움을 받아낼 뿐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소리 없이 외치고 있었다.

비 내리는 세종시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서는 부산사람도 잘 모르는 부산기업 ‘풍산재벌’의 폭주를 멈춰달라는 1인 시위자가 있었다. 시위는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었지만 어쩐지 사람들은 비를 피하면서 본체만체 그를 함께 피해갔다. 그 날 비오는 세종시 거리는 짠내가 폴폴 났다. 1인 시위자가 서있는 자리에서 비와 함께 얼마간의 슬픔도 흘러서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들을 보며 한 가지 상상을 했다. 몸이 아닌 마음을 때리는 햇볕과 비를 막아줄 보호막이 있다면 어떨까. 다른 말로는 작은 배려, 구체적인 말로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비슷한 말이 정부의 입에서도 들린다. 그러나 어쩐지 동음이의어로만 들리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추운 겨울날 6411번을 버스를 타는 우리들에게 최소한 ‘따뜻한 의자’가 있듯이, 무더운 여름날 신호등 앞에 차양막이 있듯이, 노동자의 권리를 몸으로 증명하는 사람들 위에 보호막이 있었으면 한다. 그게 바로 ‘노동존중 사회’의 가장 직접적인 증거는 아닐까. 그래야 “내가 왜 대한민국을 사랑하지 않겠어요”라고 우리들이 노래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