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꿈과 삶
[김란영의 콕콕] 꿈과 삶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9.07.29 13:20
  • 수정 2019.07.29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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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취준생 시절, 기자는 줄곧 고등학교 선생님을 소환시키곤 했다. 그리고선 속으로 따져 물었다. 세상살이가 이렇게 쉽지 않은데, 왜 한 번도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대학 너머의 삶에 대해서 왜 우리는 치열하게 토론해본 적이 없느냐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앞서서 고민해볼 수 있었더라면 조금은 덜 지치고, 조금은 덜 당황하지 않았을까.

학교라는 세계는 세상과 다르게 복잡하지 않았다. 한 가지 생존 법칙만 따르면 됐다. 공부를 잘 하거나, 못하거나. 그 시절 기자의 지향은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뿐이었다.

선생님들은 꿈을 물었다. 대답은 어렵지 않았다. 부모님이 생각하는 좋은 직업, 좋은 대학을 적어 내면 그만이었다. 직업과 대학은 곧 그 사람의 삶의 지향이자 미래의 신분으로 이해됐다. 꿈은 감히 없어서는 안 되는 ‘정상의 것’. 이루고 싶은 꿈이 없다고? 꿈을 꾸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

기자는 꿈을 꾸는 아이였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맞는 말이다. 초등학교 때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고, 중학교 때는 국어 선생님이, 고등학교 때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단 한 시절도 꿈꾸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나의 것인지에 대해선 자신이 없다. 떳떳하게 간절했지만, 그렇다고 어떤 기자가 되고 싶고, 어떤 기사를 써보고 싶은지까지를 고민할 정도로 꿈에 대해 복합적이고 다각적으로 고민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지 못했고, 그래야 하는 줄도 몰랐다.  그냥, 누구나 아는 언론사의 '기자'가 되기를 바랐다. '기자'는 꿈 자체이지 그 이상의 것도 그 이하의 것도 아니었다. 

기자가 된 다음에는 ?

기자가 되지 못한 나의 삶은?

나는 누구지?

어떤 회사 동료로, 엄마로 살아야 하지? 

스무살 ‘땡’하고서야 묻는 ‘나는 누구인가’. 기자는 20대 초반 정답이 없는 질문에 서둘러서 답을 내고 싶었다. 늦은 밤 예정도 없이 동해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은 것은 이런 조급함에서 나온 가식적인 낭만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들어올 때는 1등급(수능 성적)이어도 나갈 때는 9등급(9급 공무원)’이 된단다. ‘대학은 곧 삶(대학=삶)’이란 등식이 깨진 것이다. 대학은 더 이상 개인의 사회적 신분도, 명예도 담보하지 못한다. 그래도 예전에는 대학이 정말 삶과 신분을 좌우하기라고 했다지. 그런데 이제는? 학교는? 우리 학교는 변화한 세상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을까?

교육대학에 재학 중인 진영 씨(24)는 요즘의 학교도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고 있다’고 전해주었다. 동글동글한 생김새와는 어울리지 않는 강경한 표현에 기자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확신에 찬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영 씨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학교 교과서와 그 안의 사고방식은 너무나도 구시대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학창 시절 줄곧 전교 1~2등을 다투다가 외고를 나와 교대를 간 전형적인 엘리트였다. 동기들이 한창 임용을 준비할 시기 그는 2년짜리 대안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계기를 물으니 진영 씨는 “이렇게 살다간 망할 것 같아서”라고 고백했다. 진영 씨 자신의 삶도, 그의 미래의 학생들도.

꿈은 참 예쁜 말이다. '꿈을 키우는 교육'. 언젠가 한번 쯤 학교에서 보았을 문구다.

그런데 우리는 꿈이 없어도, 꿈이 실패해도 멈추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 꿈을 키우는 교육 대신 꿈 너머의 교육, 삶을 위한 교육은 도무지 불가능한 것일까?

국가나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오롯한 삶. 때로는 행복하고, 때로는 너무나도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고 슬픈 우리들의 삶. 이 복잡하고 또 단순한 삶을 이해할 수 있는, 적어도 이런 세상에 대한 예고라도 들을 수 있는 교육은 도무지 불가능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