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킹’하는 자동차 영업사원, ‘판매킹’을 꿈꾸다
‘버스킹’하는 자동차 영업사원, ‘판매킹’을 꿈꾸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8.08 08:45
  • 수정 2019.08.14 2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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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정호영 현대차 판매영업사원

22일 푹푹 찌는 더위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등허리를 타고 땀이 흐르던 월요일. 그래도 사람들은 분주히 움직였다. 많은 이들이 손바닥을 그늘 삼아 종종 걸음으로 시원한 에어컨이 있는 식당을 찾아가고 있던 점심시간. 정호영 씨는 그늘 한 점 없는 여의도 빌딩 숲 사이에 마이크 스탠드를 설치한다. 엠프에 기타와 마이크를 연결한다. 기타를 어깨에 메고 기타 줄을 뜯으며 조율한다. 1L짜리 생수로 목을 축인다. 구름이 하늘을 덮어 해는 안 보였지만 정수리 위에 태양의 열기가 느껴졌다. 낮 열두 시. 정호영 씨는 마이크에 입을 댄다.

“현대차 신입 영업사원 정호영입니다. 저를 알리기 위해서 이 자리에서 노래를 부릅니다. 노래가 마음에 들었다면 주변에 소개 많이 해주세요!”

# 에릭 클랩튼 – Change the world

첫 곡을 부르며 정호영 씨는 무슨 상상을 했을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그의 앞에 높인 명함통 안 명함이 많은 이들의 손길로 나가는 상황으로 지금이 바뀌길 바랐을까. 너무 소소한가. 소소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누군가에게 엄청난 것이다.

그는 전남 광주에서 연고도 없는 서울로 올라왔다. 자동차 판매영업사원은 예전부터 꿈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영업이라는 노동의 고단함을 그에게 설파했다. 고민 끝에 IT 스타트업에서 일했다. 3년을 일하고 그만 뒀다. 뭔가 능동적으로 자기 노동을 자기가 계획해 추진하고 성과를 얻고 싶었다. 주변에서 만류하던 자동차 영업사원이 됐다.

영업사원이 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어려운 것은 자기의 고객층을 모으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자기 인적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축해야 했다. 차를 산 고객이 자신을 좋게 보면 다른 고객을 소개해준다. 어떻게든 자기 인맥을 넓히고 견고히 하는 것이 자동차 판매영업사원의 숙명이었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전철역 앞에 나간 적도 있다. 지하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명함과 사탕을 나눠주며 자신을 각인시키기 위해서였다. 무모해 보이는 방법 같지만 실제로 이런 방식은 모든 자동차 판매영업사원들에게 기본이다. 나눠 준 명함이 무색하게 전철역 입구에는 그의 명함이 나뒹굴렀다. 그렇다. 명함을 가져가주는 것. 어찌 보면 소소한 것. 그에게는 세상이 바뀔 정도로 엄청난 것이다.

# 윤종신 – 팥빙수

“빙수야, 팥빙수야, 싸랑해, 싸랑해” 그렇다. 그도 팥빙수 사랑한다. 이렇게 더운 날 시원한 팥빙수 한 그릇 먹으면 얼마나 좋을지는 그도 안다. 시원한 노래를 점점 부를수록 그가 입었던 파란색 셔츠는 진한 파란색으로 바뀐다. 땀에 젖어서. 기타를 멘 어깨부터 짙어진다. 머리칼도 땀에 젖어 볼륨을 잃는다. 생수로 목을 축이지만 역부족이다. 구두를 신은 발뒤꿈치도 저리고 기타를 치는 손끝도 저리다. 틈틈이 스트레칭을 한다. 그래도 땀은 난다.

땡볕에서 고생하는 만큼 판매 실적도 좋아야 할 텐데 말이다. 다행이 그는 노력한 만큼 실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겸손하게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아직 신입사원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노래를 불러 나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길거리 버스킹을 하면서 점점 알아주는 사람들도 생기고, 그의 버스킹을 보고 고객이 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왜 노래를 부르게 됐을까. 기본적인 것만 해서는 고객층 확보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 어떻게 기분 좋게 사람을 모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동시에 본인도 즐겁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좋은 노래를 듣고 짜증 낼 사람은 없다. 그는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칠 줄 알았다. 그가 쌓아왔던 취미가 하나의 방법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당장 외워서 할 수 있는 노래가 그리 많지 않았다. 출근 시간대 아침 7시 반부터 암사역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점점 사람들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의 전략이 먹힌 것이다.

그는 또 고민했다. 차를 살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들이 밀집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지불 여력을 갖춘 직장인들이 많은 곳을 택했다. 역삼역, 판교, 여의도역. 독특하게 본인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 서울 생활을 할 정도로 번다고 이야기했다. 참고로 자동차 판매영업사원들은 한 달에 4~5대의 차를 팔아야 서울에서 그나마 살 수 있다. 물론 1인 기준이다.

#김광석 – 일어나

그는 김광석을 좋아한다. 그가 가진 음악 세계관의 정신적 지주이다. 그래서 그런지 꽤나 김광석 노래를 많이 부른다. 김광석의 일어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검은 밤의 가운데 서 있어, 한 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에 있을까.’ 그의 심정과도 같다. 그가 생각하기에 판매영업이라는 노동은 맨땅에 헤딩이니까. 실제로도 많은 판매영업사원들은 판매 활로를 뚫기 위해 힘든 일을 마다 않는다. 자기 급여에서 고객들에게 현금 서비스를 해주는 것은 아주 기본적이고 오래된 판매영업계의 법칙이다. 그래야 고객층이 모이니까. 흔히 우리가 ‘이면 할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제 살을 깎아가며 맨땅에 헤딩을 한다.

그래도 그는 김광석의 일어나에서 ‘일어나,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라는 부분을 좋아한다. 사실 자기한테 스스로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판매영업사원은 급여가 고정적이지 않다. 이번 달에 차를 많이 팔았다고 해서 다음 달에 차를 많이 팔 수 있다는 보장은 확률 제로에 가깝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힘이 되는 주문이 필요하다.

그는 한 자리에 서서 노래를 13곡 정도 불렀다. 쉬지 않고 한 시간. 그것도 서서. 누군가에게는 점심시간이었던 1시간, 1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을 지나쳤다. 흘깃흘깃 쳐다보며, 누군가는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흥얼거리고, 누군가는 기타 선율에 맞춰 고개를 흔들며 지났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가끔 혼잣말도 했다.

“더운데 고생하네.”

“열심히 산다, 진짜.”

“영업하려면 저렇게 노래까지 해야 하는 구나.”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듯 판매영업이라는 노동은 꽤나 고달프다. 그러나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 그는 판매영업이라는 노동의 매력을 자기가 해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점이라고 했다. 길거리 버스킹을 택한 것도 정호영 씨 본인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버스킹 이전 방법이 효용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방법을 바꿀 수 있는 주도권도 그가 가지고 있었다.

#스티비 레이본 – Pride & Joy

그는 스티비 레이본의 Pride & Joy를 연주하기 좋아한다. 그의 최고 애정곡이다. 제목 그대로 그는 판매영업에 자부심이 있고 즐긴다. 그는 판매영업을 꾸준히 해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그는 돈을 잘 벌고 싶다고 했다. 그렇지만 속물 같지 않은 답변이었다. 사치를 부린다는 게 아니라 좋은 스포츠카를 사고 집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평범하다. 모두가 꾸는 꿈이다. 모두가 꾸는 꿈은 반대로 모두가 지금 이루기 힘든 것이기도 하다. 평범하지만 어려운 일이다. 자기 차를 가지고 자기 집을 가지고. 그래서 정호영 씨는 버스킹으로 판매킹이 되려는 것이다.

얼마나 자신의 독특한 판매영업노동(버스킹)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지 나중에는 40~50개 곡을 통달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 날씨,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자연스럽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판매왕이 돼도 버스킹을 이어갈 것이라 했다. 그의 이름을 사람들에게 알린 수단이기 때문에 끝까지 간직하고 싶은 방법이라는 것이다.

간혹 그는 시끄럽다는 민원을 받기도, 앰프를 사용해야 하는데 충전이 안 돼 금방 돌아와야 했던 일도, 기타 줄이 끊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즐기며 그 순간을 잘 넘겼다.

정호영 씨의 자부심과 즐기는 마음은 괜한 것이 아니다. 그는 하루 일과가 끝나고 집에서 잠시 쉰 뒤 집 주변에 있는 실용음악학원에 간다. 자기 노래를 연습하며 부를 곡을 늘리고 자기의 노래 실력을 선생님께 점검받고 향상시킨다. 그러한 자기 노력과 투자가 그의 판매영업 노동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그는 오늘도 실용음악학원에 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