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순의 얼글] 물에 빠진 이어폰을 살리고 싶다
[박완순의 얼글] 물에 빠진 이어폰을 살리고 싶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1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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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순의 얼글] 얼굴이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사람의 얼굴을 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감정이입을 해버렸다. 어제 밤에 빨래를 했다. 세탁기 시작 버튼을 누르고 의자에 앉았다. 이어폰을 찾았다. 없었다. 집 안 샅샅이 찾아봤다. 혹시나 체육관에 두고 왔을 수 있어 체육관 동료에게도 이어폰의 행방을 물었다. 느낌이 안 좋았다. 설마. 그러던 중 세탁기에서 달그락 소리가 심하게 났다. 이어폰이 거기 있었다. 세탁기를 바라봤다. 투명한 세탁문으로 이어폰이 잘도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이어폰을 사야 했다. 허탈하게 의자에 다시 앉으려 했다. 다시 투명 세탁문으로 돌아가는 이어폰을 봤다.

허탈함이 사라지고 끔찍함이 찾아왔다. 몸서리를 쳤다. 빙글빙글 도는 이어폰을 보니 빨려 들어가는 무언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있을 곳에 있지 않은 이어폰을 보니 무언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게다가 이어폰은 물속에 있었다. 다시 한 번 몸서리를 쳤다. 양천구 빗물펌프장 수몰사고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과도한 감정이입일 수 있다. 수문이 개방되며 작업하던 2명의 사람이 물에 휩쓸렸다. 그들을 구하러 갔던 1명의 사람도 물에 휩쓸렸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날이었고 당연히 있어야 하지 않을 곳에 있었던 3명의 사람이다. 아니, 있어야 하지 않을 곳에 있게‘된’ 3명의 사람이다. 물은 3명의 사람을 휩쓸었고 그들은 손쓸 틈 없이 빨려 들어갔다.

한 번 더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감정이입하기 전 생각 때문이다. 세탁기 안에 있는 이어폰을 보고 내일 ‘사야겠다고 쉽게’ 생각했다. ‘쉽게 사야겠다’는 말이 무서웠다. 3명이 황망히 떠나간 자리에 누군가를 또 ‘쉽게 사서’ 그 일을 맡길 모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고장나 못 쓰는 이어폰을 버리고 길거리 가판대에 걸려있는 싼 이어폰을 새로 사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그래왔다. 70년대든, 80년대든, 90년대든, 새로운 21세기든. 미싱을 하다 쓰러져 피를 토하든, 최첨단의 프로그램을 개발하다 과로사하든, 반도체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리든, 사람이 없어진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반복적으로.

사람을 왜 쉽게 살 수 있고 쉽게 빨려 들어가게 할 수 있는가. 무엇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는가. 2013년 똑같은 장마철에도 7명의 노동자가 노량진 배수지에서 수몰로 죽었다. 당시도 장마철에 상수도관 공사를 강행했다. 강이 범람했다. 7명의 사람이 죽었다. 이 사고 후 서울시는 안전 매뉴얼과 대책을 내놨다. 안전 매뉴얼과 대책만 제대로 적용됐다면 2019년 장마철은 2013년 장마철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양천구 빗물펌프장 현장에는 안전관리자도 배치가 안 됐다. 이동식 긴급 알림벨도 없었다. 집중호우 예보가 있었지만 현장 소장은 확인하지 않았다. 반드시 있어야 할 통신 장비도 없었다. 3명이 보유한 무전기는 사무실과 거리가 멀어 통신되지 않았다. 모두 안전 매뉴얼 위반이다. 안전 매뉴얼이 재난을 만들었는가. 아니다. 안전 매뉴얼 위반 주체가 재난을 만들었다. 주체는 어떤 사람일수도, 어떤 시스템일수도.

빨래가 다 돌아갔다. 이어폰을 꺼냈다. 엉킨 이어폰 줄을 풀었다. 엉킨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일어나서 이어폰을 챙겨 출근길에 나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어폰을 핸드폰에 연결했다. 음악이 나왔다. 참 다행이었다. 안 고장났고 쓸 수 있으니까. 난 나에게 다시 소름끼쳤다. 어제 밤 그렇게 생각하고도 죽을 뻔했던 이어폰이 살아 돌아오자마자 그렇게 말했으니까. 이렇게 쉽게 생각하는 버릇이 안전 매뉴얼 위반 주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머리가 띵했다. 과도한 감정이입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도무지 과도한 감정이입 아니면 재난이 또 반복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