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다솜의 다솜] 합의는 합의다?
[정다솜의 다솜] 합의는 합의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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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 사랑의 옛말. 자꾸 떠오르고 생각나는 사랑 같은 글을 쓰겠습니다.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있지만 법의 형식만을 강조하는 '형식적 법치주의'보다 자유·평등·정의라는 법의 목표를 추구하는 '실질적 법치주의'가 더 중요하다는 인식은 상식이다. 

상상해보면 된다. 4.19 혁명 당시 법을 지키지 않고 거리에 뛰쳐나온 대학생, 5.18 민주화운동 기간 계엄령을 어긴 광주시민, 6.10 민주항쟁 때 가두시위에 나선 시민과 학생들에게 우리는 '준법정신'을 어겼다고 비판하지 않는다.

'악법도 법'을 말했다고 알려진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법을 지켜야 한다고 꾸짖지 않았을 것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중 '크라톤'에서 소크라테스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결코 고의로 불의를 행해서는 안 된다'는 정의의 원칙을 준법의무보다 우선한다고 밝힌 바 있어서다. 

이보다 먼저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유재원 한국외대 그리스학과 교수는 <악법도 법이다란 말은 없었다>는 글에서 그리스어에 '법'이란 낱말은 '정의'를 뜻하기 때문에 '악한 정의'라는 말이 없는 것처럼 '악법'이란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스어에 '악법'이라는 말 자체가 없으니 소크라테스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말이 퍼진 걸까?  

유 교수는 소크라테스가 이 말을 했다고 거짓말 한 사람으로 일본의 법철학자이자 군국주의 옹호론자였던 오다카 도모오를 지목한다. 1937년 출간된 책 <법철학>에서 오다카 도모오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감옥에서 순순히 독배를 받은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실정법을 따르는 것을 시민의 의무로 여긴 때문'이라고 해석했다고 한다. 이런 오다카 도모오가 일제강점기 때 경성제국대학교 법학부에서 한국인 제자들에게 잘못된 영향을 끼치면서 '악법도 법'이라는 없는 말이 퍼진 것이다.

'악법도 법'이라는 폭력적인 말의 정체를 어려운 말로 따져본 까닭은 최근 비슷한 폭력을 마주해서다. "합의는 합의"라는 말이다. 지난 11일 한국노총 한국도로공사노동조합을 비롯한 8개 노동조합이 모인 전국고속도로노동조합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점거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 노동자들에 대한 성명서를 냈다. 

"'자회사'는 노사합의 사항이며, '직접고용' 또한 합의사항이다. 작년 9월 노사합의가 원하는 방향과 다른 결론이었다 하더라도 '합의'는 합의'인 것이다" (성명서 中)

두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왜 '노사전합의'가 아닌 '노사합의'인가, 왜 '합의'라는 형식 자체를 강조하는가?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은 "파견·용역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은 '노·사 및 전문가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합리적으로 정규직 전환대상 방식 및 시기를 결정하되,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사 당사자 등 이해관계자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협의기구가 구성·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도로공사에서도 2017년 11월 14일부터 2018년 9월 5일까지 총 9차례의 노사전협의를 진행했다. 의장은 정부에서 파견한 전문가 위원이 담당했다. 그런데 9차 회의에서 협의회는 파행됐다. 의장이 요금수납원들의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 진행 중이고 국민부담 최소화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도로공사의 잘못된 자회사 전환이라고 지적하며 결렬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을 보면 이정미 정의당 의원 또한 "전문가 위원들이 파행 과정에서 자회사 설립에 반대했던 이유는 사실 용역업체 노동자들이 직고용되면 일반관리비라든가 이윤 등을 급여로 돌려서 노동자들에게 15% 정도 임금을 더 올려줄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자회사를 설립하면 30%를 올려주겠다는 등 정규직화 과정에서 국민부담 최소화 원칙에도 어긋났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노사전협의는 파행됐지만 그날 전문가 2인과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대표 1인을 제외한 채 도로공사는 노동자대표 5인과 자회사 형태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도로공사는 정규직 전환의 당사자는 노동자와 사측이기 때문에 '노사합의'는 효력이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파행된 '노사전' 합의도 노동자 대표가 모두 참여한 '노사'합의도 아닌 노사 '일부' 합의를 합의라며 합의를 이행하라고 다그치고 있는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합의'한' 노동자가 아닌 합의'된' 노동자들은 본래 한국도로공사에서 직접고용됐으나 이명박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2009년부터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들은 2013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 모두 노동자의 손을 들어줬다. 원청인 도로공사가 이들을 직접 고용하라고 판결한 것이다. 

그 사이 도로공사는 1·2심을 따르지 않고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책에 따라 자회사 고용 형태의 정규직 전환 방식으로 요금수납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노사 '일부' 합의가 이뤄졌고 요금수납원 6,500명 중 1,500명은 이를 거부해 7월 1일부로 사실상 해고됐다. 지난달 29일 대법원의 '직접고용' 판결은 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이다.

이들을 향해 "합의는 합의"니까 도로공사 본사까지 들어와서 "업무를 방해하지 말라"는 연대회의의 성명서 뒤로는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도로공사가 있다. 도로공사는 성명서를 사진으로 찍어 몇 시간 뒤 페이스북에 업로드했다. 특별히 덧붙인 말은 없었다. 일부합의든 일방적 합의든 '합의는 합의' 정신을 따르라는 도로공사의 행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악법도 법'을 강조했던 폭력의 시대가 쉽게 떠올랐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