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또 사망 … ‘위험의 외주화’로 여전히 죽음 내몰려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또 사망 … ‘위험의 외주화’로 여전히 죽음 내몰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19.09.23 17:47
  • 수정 2019.09.23 17: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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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인 외주화로 하청업체로 가는 물량 늘고, 안전조치는 미흡해 노동자 위험 커져
고용노동부, 유사 공정 2곳에는 ‘작업중지’ 내리지 않아 … “중대재해 대처 책임 방기”
9월 23일 오전 11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현장. ⓒ 전국금속노동조합
9월 23일 오전 11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현장. ⓒ 전국금속노동조합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가 작업 중에 숨지는 일이 또 벌어졌다. 고(故) 김용균 씨의 사망사고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산업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의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외주화로 발생하는 위험을 노동자가 떠안고 있다는 지적이 되풀이됨에도 근본적인 원인은 개선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 이하 금속노조)과 조선업종노동조합연대는 9월 23일 오전 11시 울산시청 프레스센터에서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중대재해 관련 제도 개악 분쇄! 투쟁선포’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날 기자회견에는 고(故) 김용균 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씨도 함께 했다.

하청업체 노동자에게는 생략된 안전조치

지난 9월 20일 오전 11시 30분경 현대중공업 화공기기생산부의 하청업체 ㈜원양 소속의 노동자 박모 씨는 LPG 저장탱크의 헤드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 용접 작업을 하는 도중, 헤드가 꺾이면서 저장탱크 본체와 헤드 사이에 목이 끼여 목숨을 잃는 사고를 당했다. 박 씨의 시신은 오후 2시경 수습이 시작돼 2시 19분경 울산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작업현장은 2시 42분경 작업중지 조처가 내려졌다.

ⓒ 전국금속노동조합

LPG 저장탱크의 헤드 제거 작업은 헤드의 무게만 18톤에 달해 중대재해 가능성이 높은 작업이다. 이 때문에 △헤드 상단부 크레인 결속 △헤드 하단부 받침대 설치가 필수 안전조치 사항이며, △헤드 분리과정에서 파손으로 인한 분리, 회전을 예방하는 기압헤드 전용 지그 마련 등도 추가적으로 권장된다.

하지만 사고 당일 하청업체 노동자에게는 이러한 안전 조치가 전무했고, 위험업무에 필수로 배치해야 하는 안전감시자도 없었다. 동일 작업을 원청 노동자가 할 때에는 안전조치가 지켜진 것으로 확인됐다. 더욱이 두 명의 노동자가 동시에 헤드 상단부분에서 용접작업을 벌여 사고위험을 더 키운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노동자들은 사고발생 이전까지 안전조치 없이 14개의 헤드를 분리했으며, 결국 15개째 작업에서 박 씨가 변을 당했다.

정규직 일감은 줄어드는데 비정규직은 확대

금속노조는 계속되는 외주화가 이번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금속노조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장기 휴업을 시키면서 수년째 구조조정을 일삼고 있지만, 다른 편에서는 일할 사람이 없다며 공사 프로젝트를 하청업체에 넘겼다”며, “현대중공업은 더 싼 임금의 비정규직을 확대하고, 자신들이 해야 할 안전보건조치의무를 하청업체에 떠넘겼다”고 지적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은 하청업체의 안전감독을 관리할 책임이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 29조의 2항은 원청의 사용주에게 △안전보건 협의체 운영 △작업장 순회점검 및 안전관리 △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 교육 지원 △작업 환경 측정 의무를 부과한다.

금속노조는 “재해 현장에 설치된 작업현황판에는 사용부서는 ‘화공기기생산부(현대중공업 원청 부서)’, 관리책임자는 원청 부서장으로 명시돼있지만 당일 작업장에는 원청 관리자는 나와 있지도 않았다”면서, “이런 작업이 수개월 동안 진행됐다는 것은 원청이 알면서도 묵인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원청이 하청노동자에 대한 안전보호 의무를 방기한 상태에서 하청노동자들이 비상식적인 위험을 감수한 채로 작업에 내몰린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금속노조는 장비 보전, 운전 분야의 외주화도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외주화 이후 전문인력이 빠져나가고, 안전을 위한 장비 사용조건이 까다로워져 사고가 더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됐다는 것이다. 금속노조는 “특히 원청이 아닌 하청업체의 경우에는 별도 협조 요청을 해서 크레인 사용을 해야 하는데 상시 작업에 크레인이 배치되지 않거나, 사용 시간의 압박으로 무리하게 작업을 진행시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금속노조는 △안전작업표준 미작성 및 안전조치 미준수 △해체 작업이 지난 후에서야 표준작업지시서 작성 △일일 작업계획서 임의작성 △안전작업 점검 체계 부재 등 현대중공업의 안전보건시스템의 결점을 지적했다.

근본적인 안전 대책 마련 해야

금속노조는 재해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고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유사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2개 현장에 대해서도 작업중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2019년 5월 개정된 작업중지 지침에 따라서 사고발생 작업장에 한해 부분 작업중지를 명령하고, 나머지 2개의 현장은 ‘작업중지 심의위원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대중공업 내 사고발생 현장과 유사한 작업장의 현장모습. ⓒ 전국금속노동조합
사고발생 현장과 유사한 현대중공업 내 작업장의 모습. ⓒ 전국금속노동조합

금속노조는 2019년 5월 개정된 작업중지 지침은 “중대재해 발생 시 작업 중지의 범위를 ‘재해 발생 공정’과 ‘동일 작업’으로 매우 협소하게 축소했다”며, “노동부는 현장의 안전 확보와 중대재해 시 근본 대책 마련이라는 자신들의 직무를 방기하고 있다. 현재 정부의 기준대로라면 노동자가 죽지 않으면 작업을 중지시킬 수 없고, 사업장에 전반적이고 구조적 문제점이 있더라도 사고 발생 작업에만 한정된 겉핥기식 대책 마련으로 면피하겠다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은 회견문에서 △현대중공업 원-하청 사업주 구속 △위험의 외주화 금지법 제정 △중대재해기업 처벌법 제정 △중대재해 시 작업지침 등 개악된 노동자 생명안전 제도 전면 재개정을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