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중소상공인과 손 맞잡다
노동자, 중소상공인과 손 맞잡다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9.10.04 00:22
  • 수정 2019.10.0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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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로 만들어내는 소득주도성장의 새로운 해법

[리포트] 99% 상생연대

 

문재인 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 중 하나는 ‘소득주도성장’이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노동 관련 정책들은 노동계에서 크게 환영받았지만, 모든 이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저임금의 경우 지난 2017년 6,470원에서 2018년에 7,530원으로 16.4% 올랐으며, 올해 최저임금은 8,350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10.9% 인상됐다. 2년 연속 두 자리 수 인상으로 일부에서는 ‘최저임금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공격은 을(乙)과 을(乙)인 노동자와 중소상공인의 대립으로 번졌다. ‘기승전 최저임금’의 영향이었을까. 2020년 최저임금 결정은 여느 때보다 많은 주목을 받았고 최저임금은 8,350원으로 결정됐다. 2.87%의 인상률로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최저임금 결정이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김주영, 이하 한국노총)은 지난 2019년 1월, 중소상공인들의 연합체인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상임회장 방기홍, 이하 한상총련)와 간담회를 갖고 을과 을의 연대를 강화해 상생 방안을 모색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난 6월과 7월에는 국회에서 ‘을들의 연대’를 위한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된 연대

한상총련의 구성을 살펴보면, 동네 중형마트들을 시작으로 GS편의점, 골목의 소규모 슈퍼를 비롯해 각종 전통시장 등 17개 업종의 중소상공인들이 모여 활동을 하고 있다. 한상총련은 어디에서부터 시작하게 됐을까.

‘한상총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17년이지만, 중소상공인들이 모여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2007년부터다. 2007년에는 SSM이라고 불리는 기업형 슈퍼마켓들이 골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생존권의 위협을 느낀 중소상인들은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을 규제하기 위해 ‘전국유통상인협회’를 만들었다. 당시 대형마트 규제를 위해 유통법과 상생법 등 보호법 개정 운동을 진행했다. 이들의 이름이 다시 바뀐 계기는 2014년 프렌차이즈의 갑을 문제가 불거지면서부터다. 시장의 불공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국 을(乙) 살리기 국민본부’로 새롭게 태어났다.

한상총련이 지금의 이름을 갖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자영업자 존재가 부각되면서 중소상인들과 자영업자들이 모이게 되면서부터다. 한상총련은 지금까지의 활동에 더해 좀 더 다양한 영역에서 유통시장의 골목상권의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1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소상공인 단체가 활동하면서 노동계와 갈등만 한 것은 아니다. 이동주 한상총련 사무총장은 “중소상공인들이 노동자와 만나 처음부터 최저임금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다”라며 “지난 2008년에 대형마트 규제 활동을 위해 마트 노동자와 연대해 마트의 의무 휴업을 만들어 냈으며 카드사 노동자들과 연대를 통해 중소상공인들의 수수료 인하를 만들어 낸 바도 있다”고 노동자들과 연대했던 역사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근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인상되면서 일부에서는 ‘을과 을의 대립’ 프레임을 만들어냈지만 골목상권의 매출 하락 요인은 인건비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며 “자식 같고, 친구 같은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제대로 된 급여를 지급하고 고용을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가게가 운영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종속적인 관계에 있는 본사에게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다른 것은 그대로 있는데 최저임금만 폭등하다보니 중소상공인들 입장에서는 불만이 폭주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와 갈등의 프레임이 지속되면서도 연대를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그 동안 노동자와 함께 싸웠던 과정을 복기해보니 이번에는 노동자들과 제대로 된 연대를 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사회 양극화라는 것이 노동자와 중소상공인이 아닌 과당 경쟁 속 수익을 착취하고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대자본과의 싸움이 공통의 과제라고 봤다”고 밝혔다.

한상총련과 손을 맞잡게 된 한국노총은 그 동안 여러 단체들과 연대 활동을 해 왔다. 하지만 그 동안의 연대 과정을 살펴보면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지금까지 한국노총 연대 사업은 정치적이나 시기적인 상황으로 인해 바뀌게 되면서 연대 사업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지 못 한 경우가 많고 연대 사업에도 소극적이었다”며 “우리들의 속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연대 조직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연대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설명했다.

노동자들의 손으로 중소상공인들의 지불능력을 상승시키자

지난 1월 있었던 김주영 위원장과 방기홍 회장의 간담회 자리를 계기로 노동자와 중소상공인들의 연대를 기획하게 됐다. 첫 만남임에도 불구하고 연대와 관련된 논의가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던 것은 김주영 위원장이 중소상인들에 대한 이해가 높았기 때문이었다.

이동주 사무총장은 “최저임금을 둘러싼 대립이 아닌 유통시장의 어려운 점에 대해 노동자들의 깊은 이해가 필요했고 경제민주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보자는 계기에서 간담회를 진행하게 됐다”며 “당시 간담회에서 김주영 위원장이 편의점 문제와 불공정 거래 문제 등 현장에 대한 이해가 깊어 공정경제 실현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 일치도 쉽게 이루어져 이후 연대 활동에도 빠른 전진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간담회를 시작으로 한국노총과 한상총련의 연대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지난 6월 20일 국회에서 ‘일하는 국민들의 최저소득 보장을 통한 중소상인-노동자 상생과 소득주도성장 실현 모색 좌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기승전 최저임금’ 프레임에 대한 논란을 진단하고 노동자와 중소상공인, 전문가들이 모여 최저임금 인상이 실제 자영업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자영업자들을 정말 어렵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최저임금이 역대 세 번째로 낮은 인상률로 정해진 뒤, 7월 24일 국회에서 ‘99% 상생을 위한 사회연대 방안모색’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와 중소상인이 다시 한 번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축사를 위해 자리한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이 제대로 이행되기 위해서는 고질적인 저임금 구조를 벗어내고 불공정한 거래 질서를 바꿔내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면서 “이제는 ‘문제는 경제야’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는 공정경제야’라고 외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두 번의 국회 토론회가 마무리되고 한국노총과 한상총련은 보다 실질적인 연대의 방법을 고민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최저임금 협상을 진행하면서 노동계는 무조건적인 인상을 요구했고, 한상총련은 조건부 인상을 찬성했지만, 최저임금이 오르는 데에 있어 중소상공인들에게도 어려운 부분이 존재했다”며 “최저임금이 오르더라도 중소상공인들의 지불능력을 노동자들이 높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제로페이’ 사업이 가장 알맞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제로페이’는 소상공인의 가맹점수수료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 서울시, 금융회사와 서민 간편 업체 사업자들이 협력해 도입한 공동 QR코드 방식의 모바일 간편 결제 서비스다.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소상공인들은 전년도 매출액을 기준으로 8억 원 이하인 경우 0% 수수료율을, 8억 원 초과 ~ 12억 원 이하인 경우 0.3% 수수료율, 12억 원이 초과될 경우 0.5%의 가맹점 수수료율이 책정된다. 기존의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제로페이’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제로페이 이용금액의 최대 40%를 소득공제 받을 수 있으며 신용카드인 경우 최대 15%, 체크카드의 경우 최대 30%로 연말정산에 큰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동주 사무총장은 “갑을 문제나 불공정 거래 개선을 위해서는 가맹법이나 대리점법, 공정거래법 등 제도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나 여러 정당을 만나서 해결해야 한다”며 “특히나 조직이 함께 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데, 아직 이해에 대한 부분은 부족했다.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 중 하나인 소비활동을 통해 착한 소비운동으로 ‘제로페이’를 독려해 실질적으로 골목상권 소득 증대 운동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연대 만들 것

한국노총 관계자는 “한국노총과 한상총련, 참여연대, 경실련이 초기 제안 단체로 가칭 ‘99% 상생연대’ 단체 출범을 계획하고 있고, 계층별 단체들인 청년, 비정규직, 여성도 섭외 중에 있다”며 “노동자들일 때는 을이지만 소비자가 될 때는 갑이 되는 경우가 있어 갑과 을을 구분하지 않기 위해 ‘을’이라는 단어 사용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토론회 이름을 살펴보면 노동자와 중소상공인의 ‘을들의 연대’라는 말을 주로 내세웠다면, 앞으로 출범하게 될 연대체의 이름은 ‘99% 상생연대’(가칭)로 설정하면서 ‘을’이라는 단어를 제외했다.

이들은 9월 30일부터 진행되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재벌 특권을 내리고 시민 권리를 올리는 공정사회 만들기 위한 법안 재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국회 정론관에서 진행해 민생법안을 촉구할 생각이다.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한 운동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제로페이 사용을 독려하는 홍보 동영상 제작과 함께 한국노총에 전화할 경우 컬러링을 제로페이 홍보로 바꿀 생각”이라고 밝혔다.

‘99% 상생연대’ 출범을 앞두고 한상총련이 가지고 있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물어봤다. 이동주 사무총장은 “아주 작게는 노동자와 중소상인 간의 최저임금을 둘러싼 갈등과 대결 프레임을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연대가 필요하고, 연대를 하는 과정에서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시도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노동자나 중소상인은 99%를 대표하는 국민이며 이들이 중심이 됐을 때 정치 체제도 바꾸고 경제 구조도 바꿀 수 있다”며 “우선은 연대를 잘 만들고, 안 됐다고 포기하기 보다는 안 된 이유에 대해 평가해보고 다른 방법의 연대하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밝혔다.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해 김주영 위원장이 직접 인증샷을 찍고 참여를 독려하고 있지만, 아직은 눈에 띄는 효과가 나고 있지 않다는 것이 한국노총 관계자의 설명이다. 성공적인 연대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조합원들에게 왜 연대가 필요한지에 대해 인식도 필요해보였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연대 사업을 진행하는 실무자 입장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좀 놓아두고 상대방에게 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연대가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혼자만 갈 수 없는 세상이기 때문에 내 것을 나눠주면서 함께 갈 수 있는 기본적인 마음을 조합원들에게 좀 더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서 한국노총도 연대 사업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연대에 대해 우리가 크게 고민하지 않고 관심이나 집중도가 약했지만 지금은 내부적으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며 “최근 한국노총은 새로운 미래전략을 세우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데 ‘사회연대’가 큰 비중을 차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혼자일 때 어려운 일이 함께 했을 때 손쉽게 이룰 수 있는 사례는 주변에서 흔히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와 중소상인도 마찬가지다. 서로 손을 맞잡을 때 그 동안 그들을 바라보고 있던 ‘을과 을의 대결’이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상생’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