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애꾸눈’으로 아이들 ‘날개’ 꺾나
어른들 ‘애꾸눈’으로 아이들 ‘날개’ 꺾나
  •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8.09.02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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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 담긴 우리 시대 청소년들의 ‘자발성’
인터넷 통한 동시다발 쌍방향 익숙한 10대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지난번에 십대 청소년들의 촛불집회를 통해서 우리 어른들이 십대들에 대해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첫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청소년들은 분명히 자발적으로 촛불집회를 만들었고 거기에서 주장도 외치고 놀이도 하고 행진도 했었지요.

그런데 어른들이, 진보든 보수든, 그걸 도통 믿지 못하겠다고 해서, 한편에서는 “배후가 누구냐?”를 물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어린 너희들이 이만큼 했으니 기특하네, 이제 그만 귀가하라!”고 타이르는 광경을 살펴봤습니다.

청소년 ‘자발성’ 무시하는 어른들

언뜻 보면 서로 다른 반응 같아 보이지만 실은 같다고 할 수 있어요. 지난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십대들의 자발성에 대해 ‘절대 스스로 했을 리 없다’고 보는 어른이나 ‘스스로 했으나 그건 너희가 할 몫이 아니다’라고 보는 어른은 결국 청소년들의 자발성이 발휘되는 범위를 제한한다는 점에서는 같으니까요.

그리하여 다시 원점으로 돌아옵니다. ‘지금의 청소년들은 누구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먼저, 과연 우리 어른들이 제대로 보고 있고 알고 있는지를 확인해야 할 것 같네요.

한 가지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지요. 이는 지난 6월 7일 서울광장의 촛불집회에 참여한 중·고생 800명을 대상으로 서울신문사와 인터넷정치연구회가 직접 설문 조사한 결과를 서울신문 7월 29일자에 보도한 것입니다.

이 설문조사 결과만 보고 있자면, 우리 어른들이 생각해온 청소년에 대한 생각들이 상당 부분 바로잡아야 할 오류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몇 가지 중요한 대목들만 옮겨보겠습니다.

인터넷과 청소년이 배후

먼저 정보를 수집하고 그 정보를 전파하는 경로입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와 촛불집회에 대한 정보는 51%가 인터넷에서 구했고, 친구 등 주변인에게 얻는 경우는 18%이더군요. TV는 17%, 신문은 고작 10%였습니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주변에 재전파하는 경로는 친구와 직접 대면을 통해서가 41%, 다시 인터넷이 39%에 달했고요.

이처럼 십대들은 인터넷과 또래 관계를 통해 자발적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동시다발 쌍방향으로 대화하는, 비교적 대규모의 소통에 익숙해 있었습니다.

다음은 촛불집회의 참여 회수인데요. 1회가 67%로 가장 많았고, 2회 18%, 3~5회 12% 순서였습니다. 10회 이상은 전체 800명의 중·고생 중 3명이고 20회는 1명이었습니다. 즉, 특정 단체나 소속의 소수 청소년들이 반복 참여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다수의 청소년 개인들이 참여하면서 흐름을 만든 것입니다.

조사일인 6월 7일에 서울광장에 온 십대들의 거주 지역을 물어보았더니 전체의 56%가 경기도에 사는 중·고생이었어요. 대중교통으로 1~2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에서 각자 한두 번씩 참여한 것이지요.

이런 참여를 누가 시켜서 했을까요? 촛불집회 참여에 누구의 제안이나 요청이 있었는가 물었을 때 ‘자발적 참여’라고 응답한 중·고생이 전체의 71%였습니다. 친구의 권유는 18%고, 부모의 권유는 6%이더군요.

제가 가장 궁금했던 대목의 하나였는데, 이들 청소년이 정치나 사회에 대해 갖는 관심은 ‘매우 많다’를 포함해 ‘많다’가 62.5%에 이르렀고 ‘보통’은 28.7%였습니다. ‘관심이 없다’는 응답은 8.8%에 불과했네요.

자발성 살리고 죽이는 것은 사회와 어른들 몫

이렇게 나타난 설문조사 결과의 청소년 모습을 두고, 나의 자녀와 나의 학생을 대입해서 상상해보세요. 물론 개인 차이는 있겠으나, 지난 촛불집회에 참여했든 안 했든, 이미 청소년들의 촛불집회는 청소년들 사이의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되어 서로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화제가 됐다는 점에서 내 자녀나 학생을 바라볼 때 같이 참고해서 생각하면 좋을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자료가 훨씬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아는 한, 이것이 촛불을 든 십대들을 대상으로 직접 이뤄진 거의 유일무이한 설문조사가 아닐까 싶어서 조금 씁쓸하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 사안에 관심이 많고 그에 관한 정보를 자발적으로 구하며 친구들과 면대면 및 인터넷을 통해 대화를 나누고, 필요하다 싶으면 자발적으로 집회를 제안하고, 삼삼오오 광장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여는 청소년의 모습.

저는 청소년들의 촛불집회 그 자체보다도 그들의 자발적 생각과 행동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자발성을 청소년들이 어떻게 계속 발휘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하는 숙제를 어른들이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발성을 억누르며 “일단 대학 간 다음에 해!”라고 할 것인지, 그 자발성을 발휘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추구하면서 공동체의 문화를 가꿔나가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 성장하게 할 것인지, 이 사회와 어른들이 선택의 기로에 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