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파출소, 이태원의 밤을 지키는 ‘종합업무기관’
이태원파출소, 이태원의 밤을 지키는 ‘종합업무기관’
  • 최은혜 기자
  • 승인 2019.12.08 06:41
  • 수정 2019.12.09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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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성 문제로 기본급 인상 좌절
“‘나서지 마라’는 얘기부터 하게 되는 현실 안타까워”

[리포트] 치안 1번지, 경찰은 어떻게 살고 있나

경찰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안전과 재산을 지키는 임무 또는 그러한 임무를 담당하는 국가 기관을 의미한다. 경찰청은 치안 사무를 지역적으로 분담·수행하기 위해 전국 특별·광역시·도에 18개의 지방경찰청을 두고 있고 지방경찰청장 소속의 경찰서, 지구대, 파출소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전국의 경찰서는 255개, 지구대는 584개, 파출소는 1,433개가 운영 중이다.

그중에도 숫자가 가장 많은 파출소는 어떤 지역에 파견된 경찰관이 관할 구역의 치안과 일차적인 경찰 업무를 처리하도록 만든 곳이다. 일차적인 경찰 업무와 치안을 담당하기 때문에 가장 시민과 가까운 곳이 바로 파출소다. 겨울이 시작되는 날인 입동, 아침부터 분주한 이태원파출소의 문을 열었다.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최은혜 기자 ehchoi@laborplus.co.kr

“어떤 일로 오셨어요?”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는 이태원파출소는 이태원역 3번 출구 바로 앞에 있다. 이태원 1동과 2동을 담당하는 이곳에 접수되는 사건 대부분은 이태원역 앞의 대로변에서 일어나는데, 지하철역 출구 바로 앞에 있기에 빠르게 출동할 수 있다.

문을 열고 파출소에 들어서자 파출소 안에서 상황근무를 하고 있던 경찰관이 “어떤 일로 오셨어요?”하고 물었다. 입동 당일, 이태원파출소 4팀의 근무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였다. 8시가 채 안 된 시간이었음에도 이태원파출소 4팀은 상황근무에 돌입한 상태였다.

이태원파출소는 총 4팀으로 근무조가 편성돼있다. 한 팀당 인원은 14명. 파출소 근무조의 가장 최소 인원이 4명인 것에 비하면 이태원파출소의 인원은 매우 많은 편이다. 파출소 근무조의 가장 최소 인원이 4명인 이유는, 2인 1조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파출소 내에서 상황근무를 2명이 하고 있으면 2명은 순찰이나 출동을 나가는 식이다. 이태원파출소는 사건이 많아 바쁜 파출소로 손꼽히기 때문에 팀당 인원이 많은 편이다.

이태원파출소 4팀의 정준 경위에게 근무 일정을 요청했다. 정준 경위가 보여준 근무 일정을 살펴보면, 이태원파출소 4팀은 하루 12시간씩 4일을 근무하고 있었다. 4일 중 2일은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의 주간근무고 남은 2일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의 야간근무다. 야간근무 후 아침에 퇴근하면 그다음 날까지는 휴일과 비번으로 쉬는 식으로 운영된다.

오전 8시부터 근무를 시작하기 때문에 보통 오전 7시 15분에는 출근을 완료해야 한다. 7시 30분까지 이태원파출소 2층에 마련된 탈의실에서 근무복으로 환복 후 1층 상황실로 내려와 총기를 수령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교대 시간 즈음에 상황이 발생하면 앞 전 근무조가 늦게 퇴근해야 할 수도 있다. 이를 대비해 근무 준비는 8시가 되기 전에 완료한다.

정준 경위는 “한 번은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 상황이 발생했다”며 “교대팀에 인계할 상황이 아니어서 상황을 마무리 짓고 퇴근하려니 퇴근 시간에서 3시간이나 지난 적도 있다”고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야간근무의 경우, 저녁 7시부터 7시 30분까지 근무 준비를 위해 사용한 시간을 ‘교육 시간’이라는 명목을 들어 근무시간으로 인정해주기도 한다.

저녁8시부터는 순찰이 시작된다. 순찰 한 번에 드는 시간은 2시간. 한 번 순찰을 나가면 2시간 동안 꼼짝없이 순찰차 안에 앉아있어야 한다. 이날 기자는 밤11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정준 경위와 올해 9월에 새로 임용됐다는 심대건 순경과 함께 순찰차에 올랐다. 순찰차 뒷자리는 방수시트로 감싸 반질반질했다. TV를 통해 본 것처럼 문고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창문도 열리지 않았다. 기자가 순찰차를 신기하게 구경하는 동안에도 정준 경위와 심대건 순경의 무전기는 지지직거렸다.

순찰 도중, 심대건 순경에게 힘든 점은 없는지 물어봤다. 심대건 순경은 “아직 힘든 점은 없다”며 “이태원파출소가 바쁘기 때문에 배울 점이 많아서 좋다”고 답했다. 야간근무로 힘든 점이 없는지 더 캐물었지만, 본인은 야행성이라 아직은 괜찮다는 답으로 피해갔다. 주간근무 시 빠른 출근은 고단하지 않은지도 물었으나 “출근 시간이 아니라 지하철이 한적해서 좋다”고 답했다.

정준 경위는 “휴일 근무나 야간근무는 자녀가 미취학 아동일 때는 불편함이 적은 데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어렵다”고 답했다. 또, “가족들과 모임을 하려고 해도 시간을 잡기 어려운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태원파출소는 이태원1동과 2동을 관할한다. ⓒ 참여와혁신 ehchoi@laborplus.co.kr
이태원파출소는 이태원1동과 2동을 관할한다. ⓒ 참여와혁신 ehchoi@laborplus.co.kr

급여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당
그마저도 개선 필요해

야간근무와 추가 근무가 잦은 경찰은 시간외근무 수당이 지급되는 근무 명령 시간인 한 달 최고 57시간을 우습게 초과한다는 것이 정준 경위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수당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루 12시간 근무를 하는데, 하루 4시간에 대해서는 시간외수당이 지급된다. 시간외수당은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서 규정한 대로 해당 계급의 10호봉을 기준으로 여기에 55%×1/209×150%를 지급한다. 그러나 시간외수당은 순경 기준, 시간당 8,992원에 불과하다.

파출소의 특성과 이태원이라는 지역 특성상 주말 근무와 야간근무는 필수다. 주말에 근무하게 되면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휴일근무수당이 지급된다. 그러나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 제17조 1항에 따르면 휴일근무수당은 “현업공무원 등으로서 휴일에 9시부터 18시까지 근무하는 사람에게는 예산의 범위에서 휴일근무수당을 지급”할 수 있다. 즉, 경찰관은 8시간에 해당하는 수당만 받을 수 있고 휴일 4시간은 무료노동을 하는 셈인데 휴일근무수당은 7만 2,280원이 지급된다.

낮은 기본급과 수당으로 야간근무를 자원해서 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야간근무를 마치고 아침 8시에 퇴근하면 다음 날까지 비번인데, 야간근무를 자원해 야간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당일 저녁 8시에 다시 출근하는 것이다. 정준 경위는 “우스갯소리로 ‘공무원연금공단에서 가장 좋아하는 직종은 경찰과 소방’이라는 말이 있다”며 “야간근무로 인한 수명 단축의 위험 속에서 보상은 순경 기준 2,997원에 불과하다”고 자조했다.

지난 11월 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찰과 소방공무원의 기본급이 다른 공안직(공공안전직) 공무원보다 낮다”고 지적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장관은 “기본급은 낮지만, 치안 활동비는 그 이상 지급하고 있어 단순히 기본급만 비교해 인상해주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며 “경찰과 소방공무원이 어렵고 위험한 일을 하는 건 당연히 알지만 다른 직종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정준 경위는 “다른 직군에 비해 차별이나 홀대를 받는다는 생각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낮은 기본급으로 현장 경찰관들의 사기와 자긍심이 저하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며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소방·해경청과 협력해 개선안 마련을 위해 인사혁신처 등 관계부처와 지속해서 협의하고 있다”고 답했다.

<경찰-공안(공공안전직) 계급별 상당계급과 평균기본급 비교(단위 : 천 원)> 자료 = 경찰청

치안 강국 대한민국?
치안력 약해지는 건 아닌지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중앙경찰학교 제296기 졸업식에서 “국민은 어려운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경찰에 도움을 구한다”며 “‘우리나라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국민이 2015년 69%에서 올해 75%로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 국민의 부름에 묵묵히 책임을 다해 온 현장 경찰관 여러분께 늘 고맙고 애틋한 마음”이라며 “정부는 인력과 예산을 확충해 치안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은 후배들에게 “나서지 마라”는 얘기를 먼저 한다. 정준 경위는 “최근에 한 경찰관이 보광동에서 칼을 맞았다”면서 “몸은 다 나았는데 트라우마가 커서 아직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치지 않았으면 승진도 할 수 있는데 다쳐서 휴직하면 기본급만 받아야 해서 손해 본다는 생각이 든다”며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난 2004년 6월, 피의자의 폭행으로 식물인간이 된 장용석 전 경장은 국가공무원법 제70조 4항에 의해 지난 2006년에 직권 면직됐다. 정준 경위 역시 지난 2001년 수배자를 검거하던 도중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다. 따로 보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휴직 기간에 근무하면서 받아온 수당이 끊어졌기에 ‘열심히 일하다가 다치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고 했다.

더욱이 금요일을 포함한 주말 야간, 이태원파출소에 접수되는 사건은 기본 60~70건이다. 어떨 때는 100건이 넘기도 하는데 10월 말, 핼러윈 기간에는 160건의 사건 접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이태원파출소는 출동이 많은 편에 속해 일을 배우기 좋아 신임 순경들에 인기가 좋다. 하지만 경력이 있는 인력에는 기피 대상 1호다. 게다가 2023년 의경제도의 완전 폐지를 앞두고 경찰관 기동대로 경험이 있는 인력이 차출되면서 일선 파출소에는 신임 순경의 전입이 늘었다. 이를 두고 치안력 약화를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최근 이태원파출소에서 근무하던 한 경사 역시 경찰관 기동대로 차출됐다. 순환을 통해 경찰관 기동대에 차출되지만, 의경제도 폐지로 경찰관 기동대 차출 순번이 빨라졌다. 이태원파출소에서는 경사 1명이 신입 여럿보다 낫다고 반대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경찰관 기동대로 차출된 경사 대신 신임 순경 1명이 이태원파출소로 전입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신임 경찰관이 지역경찰관서(지구대, 파출소)에 배치되는 건 경찰관 기동대 창설 때문만이라기보다는 지역경찰관서 업무가 기본적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지역경찰관서에 우선 배치하는 것”이라며 “지역경찰관서에서 신임 경찰관을 가르쳐놓으면 빠져나간다거나 신임 경찰관이 지역경찰관서에 오래 근무하지 않는 등의 현장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파출소는 치안 1번지이자, ‘종합업무기관’이다. 질 좋은 치안 서비스를 국민이 되돌려 받는 만큼, 파출소와 경찰에 대한 처우개선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