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나이프] 수출입은행 ‘노조 추천 이사제’, 과연 우려할 문제인가?
[미디어나이프] 수출입은행 ‘노조 추천 이사제’, 과연 우려할 문제인가?
  • 임동우 기자
  • 승인 2020.01.03 13:17
  • 수정 2020.01.03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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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에서 드러난 ‘노조혐오’ 시선
신현호 위원장, “노조추천이사제는 이사회 합리적 작동 위한 최소한의 견제장치”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수출입은행지부
ⓒ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수출입은행지부

지난 27일자 조선일보와 한국경제 기사는 수출입은행이 노동조합에게 추천받은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노조추천이사제’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내비쳤다. 수출입은행의 노조추천이사제가 과연 ‘우려’할 문제일까?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이 있다. 노동이사제와 노조추천이사제는 기본적인 결은 같으나 참여방식에서 다르다. 노동이사제의 경우 노동자나 노동자대표가 경영의사 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이지만, 노조추천이사제의 경우 노동자 혹은 노동조합이 추천하는 전문가가 기업경영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직접참여가 아닌 간접참여다. 기업의 구성원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 아닌, 전문가의 견해를 통해 한 단계 공정을 거쳐 노사 간 ‘대화’의 장을 연다는 의미와 같다.

조선일보와 한국경제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노동이사제의 연장선’이라며 우려하는 ‘노동자·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는, 공공기관의 경영정보를 공유하며 운영의 투명성을 높여 부패 및 비리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 노동자가 경영 주체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성과와 책임을 공유하며 공공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 경영전략과 실행이 나뉘어 있는 현 제도와는 다르게 이를 통합하여 현장 상황을 경영 전반에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 등이 있다.

민간 금융회사의 경우 예금자·투자자 등의 다양한 이해관계로 논란 발생의 소지가 있다손 치더라도, 수출입은행의 경우 국민을 대상으로 공공성과 수익성의 균형을 추구하여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책은행으로서 제도 도입을 통해 업무 투명성을 높임과 동시에 공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을 택할 명분이 있다.

보수언론의 ‘노조혐오 프레임’은 언제까지

“유럽에선 독일 등 19국에서 이 제도를 시행 중이지만, 독일은 노동계가 임금 삭감과 감원 등 노동 개혁(하르츠 개혁)을 자발적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귀족 노조로 굳어진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있다.”

- <수출입은행, 노조에 사외이사 자리 준다>, 2019년 12월 27일자 조선일보 기사

“노동이사제의 근간을 마련한 독일은 노동자 대표 사외이사가 비용 절감에 동참하는 등 사측과 회사경영에 대한 공감대를 넓게 형성하고 있다. 반면 강경 투쟁 일변도의 국내 노조는 분위기가 다르다. 노조 추천 사외이사가 균형 잡힌 시각을 갖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은 이유다.”

- <논란의 ‘노조추천이사제’…금융권 확산 촉각>, 2019년 12월 27일자 한국경제 기사

조선일보의 경우,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 보고서 <‘생존수영=생존권?’ 계속되는 조선일보의 노조혐오 프레임> (10/15, 공시형 활동가)를 보면 확인할 수 있듯, 조선일보의 ‘노조혐오 프레임’은 이번 기사에서도 ‘귀족 노조’라는 표현으로 가동됐다. 27일자 기사의 부제목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조선일보는 재계의 “경영권·인사권 침해”만을 우려할 뿐, 노동조합의 입장을 설명하거나, 노조추천이사제가 우리 사회에서 미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는 최근 논란이 됐던 ‘출입처발 기사’의 문제점과 닿아있다. 기사는 정보를 생산하는 주체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번 노조추천이사제의 경우 노동조합의 입장을 취재했어야 하며, 입장의 타당성과 고려점을 함께 언급해야만 했다.

한국경제 기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모니터 보고서 <보수언론의 노조 혐오, 어디까지 왔나?>(4/12, 엄재희 활동가), <학생들 논술 공부 시킨다더니…편향된 관점만 가르치는 한국경제 ‘생글생글’>(6/26, 엄재희 활동가, 정리 김민정 회원)에서 확인할 수 있듯, 한국경제는 그동안 반노동·친기업 정서를 지속해왔다. 이번 기사에서는 ‘강경 투쟁 일변도의 국내 노조’라는 표현으로 노조혐오 프레임을 가동시켰다.

‘논란’, ‘파장’, ‘침해’, ‘우려’, ‘정권 코드 맞추기’ 등 용어 구성은 또 어떠한가? 앞서 제시한 언론들의 문제는 정황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정보·용어를 취사선택하여 ‘우려’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일보와 한국경제가 노조추천이사제를 이렇게도 ‘우려’하는 까닭은 수출입은행의 노동조합 추천이사제 시행이 현 한국 금융기업 지배구조 완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동자 경영참여, 함께 가야한다

지난 30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위원장 허권, 이하 금융노조)은 성명을 통해 “공공기관들은 국민에게 양질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본연의 목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공공성보다 수익성 추구에 기울어진 경영에 내몰려왔다는 점에서 노동자 경영참여는 이를 바로잡을 주요한 수단”이라며 수출입은행의 노조추천이사제 도입을 촉구했다.

수출입은행지부 관계자는 이번 사외이사 추천 사안에 대해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통해) 의사결정 과정에서 (노사가) 조직 발전을 위해 생기는 고통을 분담한다면, 실행력에 있어서도 효율이 더 높아질 거라 생각한다”며 “노동조합에서 추천하려 했던 분은, 우리 편들자고 내세운 인물이 아니라 금융 분야 전문성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인물로, 수출입은행이라는 조직의 발전을 위해 내세운 인물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부관계자는 “경영진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안을 ‘노동자는 따르기만 하라’는 결과가 대우조선해양 부실로 인한 혁신안 이행이었다. 수출입은행의 정부 출자가 어려운 상황에서 혁신안 이행으로 인원 감축과 승진 적체, 신규채용 제한 등으로 이어졌다”며 “차라리 함께 감내하자는 말이 불필요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토로했다.

대우조선해양 부실을 막기 위한 대규모 자금지원이 이행된 당시, 수출입은행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적정선인 10% 이하로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즉, 조선사업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말이다. 당시 정부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자금지원을 맡기고 은행의 자체적 혁신안 이행을 촉구했다. 수출입은행은 혁신안 수용 과정에서 임원급 조직 관리자의 임금삭감을 시작으로, 인원 감축, 승진 적체, 신규채용 제한 등의 문제를 떠안아야 했다. 당시 여파는 현재까지 해외사무소 축소, 주52시간상한제 시행에 따른 인원 부족 현상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신현호 수출입은행지부 위원장은 “공공기관 사외이사 자리는 대부분 낙하산 인사로 채워진다. 노조추천이사제는 이사회가 기관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로서 합리적으로 작동토록 하는 최소한의 견제창치”라며 “이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과거 혁신안 등의 폐해가 반복되니,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고민을 넓혀나가고자 한다. 이번 노조추천이사제가 무산되더라도, 사외이사 추천 사안은 내부 개선을 위해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말’을 말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파리경제대학에서 교수직을 맡으며 경제학자로 활동 중인 토마 피케티는 자본주의의 최대 숙제인 ‘불평등 완화’를 위해 사회적 재산권을 주장한다. 이사회 의결권의 절반을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방식과 주주들의 의결권에 상한을 두는 방식을 시도할 수 있다고 말하며, “노동자 교섭권이 강화되면 재분배 개선효과가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보수언론은 수출입은행의 자발적 노사협의의 첫 발을 막고 있다. 은행 본연의 가치는 특수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공중(公衆)을 위한 것이다. 사회에는 다양한 구성원이 존재하고, 언론은 우리 사회를 희망으로 이끌어야 하는 책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