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노동’이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청년들의 ‘노동’이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 강은영 기자
  • 승인 2020.01.07 07:56
  • 수정 2020.01.07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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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총, 청년들 대상으로 노동영상제 진행
영상공모전 수상자들이 말하는 나의 노동

[리포트] 청년들의 ‘노동’이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노동은 돈을 벌 수 있게 해주고, 자아를 실현하는 수단이 되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청년에게는 ‘노동’이라는 단어가 긍정적인 이미지보다는 왠지 꺼려지고 멀게 느껴지곤 한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김주영, 이하 한국노총)은 지난해 9월 26일부터 11월 10일까지 ‘난생처음 노동영상제’ 접수를 받았다. 노동을 사랑하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노동’에 대한 주제로 참여할 수 있는 영상공모전이다. 청년들에게 있어 공모전은 또 하나의 스펙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두 달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수십 편의 영상이 접수됐고, 심사를 거쳐 5명의 수상자가 선정됐다.

한국노총, 뉴미디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다

지난 2018년 끝 무렵 ‘쇼미더머니777’에 출연해 화제가 된 ‘마미손’의 <소년점프>를 패러디한 <노동점프>가 나왔다. 한국노총이 청년들과의 거리를 좁혀보고자 시도했던 이 영상은 실제로 2030세대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지난해에는 유튜브를 활용한 다양한 미디어콘텐츠를 선보였다. 2018년에 선보였던 ‘노발대발’을 유뷰트로 옮겨와 ‘보이는 노발대발’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직장 생활 속에서 겪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있긔 없긔’는 지난해 8월에 선보인 후 방학 기간을 거쳐 시즌2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노총은 콘텐츠를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청년들과 직접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황희경 선전홍보본부 차장은 “콘텐츠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것은 문화라고 생각했다”며 “하나의 콘텐츠도 좋지만 청년들과 공유하고, 대상을 확장시킬 수 있는 문화를 형성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고 영상공모전을 기획하게 된 취지를 설명했다.

황 차장은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노동에 대한 시선이 어떤지, 또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며 “대중 입장에서 난생처음으로 노동의 콘텐츠를 고민하고 한국노총에서도 영상공모전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공모전 이름 앞에 ‘난생처음’을 붙였다”고 말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한국노총의 ‘난생처음 노동영상제’다. 노동에 관심 있는 청년이라면 누구나 공모가 가능했다. 취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보고자 공모전에 참여하는 청년들이 많지만 ‘노동’을 주제로 한 공모전은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접수 기간 중 많은 문의를 쏟아졌다고 한다.

공모전 접수 초반에는 노동조합의 파업 출정식 영상 등이 접수돼 걱정도 많았다. 황 차장은 “‘노동’이라는 주제에 어려움을 많이 느낀 것 같다”며 “실제로 광화문 집회를 찍어서 보내야 한다거나 막노동을 하는 장면을 찍어서 보내야 하냐는 질문을 받아 당황스러운 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노동’이란 단어가 어색했을 청년들을 위해 한국노총은 추가로 공모전을 설명하는 카드뉴스를 제작했다. ‘노동’에 대해 가지고 있던 심리장벽을 허물기 위해 조금 더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예시로 ‘내가 첫 면접 본 썰’이나 ‘부모님이 주신 용돈 받은 경험(의미 분명하게)’ 등 조금 더 내용을 구체화했다. 그 후 주제에 대한 문의는 적어졌고, 영상들이 접수되기 시작했다.

수십 편의 영상이 들어왔고, 이를 보며 느낀 것은 ‘다양성’이라고 했다. 황 차장은 “많은 사람이 주제에 대해 어려워했는데 접수된 영상을 보니 3D 애니메이션, 브이로그 등 다양했다”며 “주제에 대해 설명하니 생각과 표현의 확산이 많이 된 것 같았고, 공모전 의도와 맞아떨어짐에서 오는 만족감에 감동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접수된 영상들은 한국노총 내부 심사위원 3인과 외부 심사위원 3인으로 구성된 전문가 심사단의 점수 80%, SNS 댓글과 ‘좋아요’ 집계를 통한 일반인 심사 점수 20%를 합산해 수상작을 선정했다. 심사에서는 대중성과 공감성, 기획 의도 반영 정도를 중심으로 평가했다.

심사 결과 3등 리스펙노동상에 ▲사북에서 바라본 우리의 노동-이동수(청년정치크루) ▲퇴짜(청년백수 전성시대 티저 영상)-염주원 ▲내 삶의 노동이 더 가치있기를-Worker가 선정됐고, 2등 노동프렌들리상에는 ▲근로냐 노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강성찬이 선정됐다. 1등 한국노총상은 ▲웃잡사(웃음을 잡는 사람들)-인피니티88이 받았다. 수상자들을 직접 만나 영상의 의미와 수상소감을 직접 들어봤다.

청년들이 생각하는 노동이란

#청년의 눈으로 바라본 사북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된 <사북에서 바라본 우리의 노동>은 1980년 사북항쟁 현장을 직접 돌아보며 비용절감을 위해 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위험한 작업환경을 강요하는 것이 정당한지 묻는 영상이다. 현장감이 잘 느껴지고, 40년 전 사북항쟁을 조명해 당시와 다르지 않은 현재의 노동문제를 상기시킨 기획 의도가 좋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사북에서 바라본 우리의 노동’ 청년정치크루.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Q. 수상소감

A. 이번에 사북사건을 다루면서 1980년대 석탄 생산량이 한 해 2,000만 톤이나 됐는데 평균 200명의 광부가 산업재해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석탄 10만 톤 당 광부 한 사람의 인생과 맞바꾼 자원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잘 살게 됐으니 그분들에 대한 노고를 잊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결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도 한국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 남아있는 것 같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분들 역시 한국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청년세대들도 이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 좋겠다.

Q. ‘난생처음 노동영상제’에 참여하게 된 계기

A. 사북사건을 두고 양면적인 의견으로 나뉘는데, 관심을 가지고 조사하면서 우리 또래에게 객관적으로 알리고 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북사건과 관련해서 책을 쓰고 있는 와중 한국노총에서 ‘난생처음 노동영상제’를 한다는 이야기를 접했다. 이전에도 한국노총 ‘있긔 없긔 시즌1’을 함께 진행하기도 했기 때문에 참여를 결심하게 됐다.

Q. 영상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A. 40년이 지난 사건이기 때문에 사북사건을 취재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 당시 광부들이 일했던 환경과 거주했던 곳을 보여주면서 이만큼 열악한 곳에서 생활했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 또한, 사북사건이라는 노동사에서 중요한 역사를 다뤄 직접 현장을 보여준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영상을 촬영하며 아쉬웠던 점은 오랜 시간이 지난 사건이고 현재는 석탄 산업이 활발하지 않아 관계자를 만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노동을 시작하지 못한 청년들의 이야기

영화 티저영상 형식으로 만든 <퇴짜 : 청년백수 전성시대>는 영화 ‘타짜’의 명대사들을 취준생의 마음으로 패러디한 영상이다. 타짜를 퇴짜로 바꾼 제목, 구성과 속도감이 좋고 취업 전쟁의 살벌함을 보여주면서도 재미를 잃지 않았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퇴짜 : 청년백수 전성시대’ 염동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염동수

Q. 수상소감

A. 수상 발표가 11월 말경에 나왔는데, 크리스마스를 일찍 겪은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이 ‘노동’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청년들의 시각에서 요즘 유행하는 요소들을 활용해 해학적으로 다루고 싶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청년들의 시선에 맞춰 평가를 잘 해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Q. ‘난생처음 노동영상제’에 참여하게 된 계기

A. 공모전이라고 하는 게 자신이 그동안 다져왔던 영역에 대해 확인하기 위한 장이라고 생각한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영상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다양한 공모전들이 많은데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영상제인지가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난생처음 노동영상제’는 ‘노동’을 주제로 하고 있었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공모전 참여를 생각하게 됐다.

Q. 영상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A. 청년들의 경우 취직을 하지 못해서 노동의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한 이들이 많다.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노동’이 무거운 게 아니라 마음 편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신경 썼다. 좌절만 하기보다 명대사를 차용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제작된 <내 삶의 노동이 더 가치 있기를>은 아르바이트로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와 꼭 이루고 싶은 꿈을 꺼내 보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고 있는 영상이다. 뮤직비디오라는 형식의 신선함과 일하는 청년의 일상을 현실감 있게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내 삶의 노동이 더 가치 있기를’ Worker.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강민석 Worker 대표

Q. 수상소감

A. 우리 팀에서 원했던 방향은 ‘노동’이라는 용어가 청년들에게 생소하고 무거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생각을 바꾸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노동’이라는 단어를 대체해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정면 돌파한다는 마음으로 ‘노동’을 긍정적으로 표현할 방법을 증명해보고 싶었다. 특히, 20살 새내기 대학생의 눈으로 보는 알바와 그 성과들을 표현해 노동을 설명하고 싶었다.

Q. ‘난생처음 노동영상제’에 참여하게 된 계기

A. 현재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는데 대학생 새내기들을 만나면서 이 친구들이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1학년 정나빈 학생과 ‘Worker’라는 이름의 팀을 꾸렸다. ‘난생처음 노동영상제’는 청년들을 위한 공모전이니 지원을 해보자고 제안해 참여하게 됐다.

Q. 영상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A.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이 미디어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집중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최소 3분 정도 돼야 사람들이 집중해서 무슨 내용일지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영상 시간을 먼저 정하고 촬영과 편집을 진행했다. 청년들에게 우리도 알바라는 노동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노동하는 이유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이나 등록금 등 다소 무거운 이유도 있지만, 해외여행 등 꿈을 위해 투자한다는 긍정적이고 친밀한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

#노동을 바라보는 한국의 불편한 진실

퀴즈 토크쇼 형식의 <근로냐 노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독일과 프랑스의 초중등 노동 교육과정을 문제로 풀어보는 영상이다. 토크를 통한 유쾌한 정보 전달과 짧은 시간 동안 한국의 노동교육 실태와 외국의 노동교육 수준을 비교해 많은 시사점을 전달해줬다는 평가가 있었다.

‘근로냐 노동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강성찬. ⓒ한국노동조합총연맹

강성찬

Q. 수상소감

A. 1등을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아쉽지만, 수상하게 돼서 굉장히 기쁘다. 공모전에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상금 때문이었는데 상금도 타게 돼서 이번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기쁘다.

Q. ‘난생처음 노동영상제’에 참여하게 된 계기

A. 다양한 공모전을 참여하고 있는데, 참여를 결정하는 조건은 ‘재미’다. ‘난생처음 노동영상제’를 홍보하는 영상을 보고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재미나게 홍보를 했으니 참여하면 재미있는 작품이 나올 것 같아서 선뜻 참여를 결정하게 됐다.

Q. 영상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A.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노동에 관한 공부를 많이 했는데 선진국과 비교해보니 한국의 노동교육이 정말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격차를 보여주고 문제의식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다. 외국에서는 ‘노동’이라는 것을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것에 비해 한국이 이렇게 뒤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 내용을 긍정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기 위해 퀴즈쇼 형식으로 진행하게 됐다.

#노동의 의미를 찾아서

다큐멘터리 형식의 <웃잡사, 웃음을 잡는 사람들>은 개그맨으로 살고 싶은 꿈 대신 보안요원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선택한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상이다. ‘노동’이라는 주제를 무겁지 않게 공감 가는 시각으로 그려냈고 자기 직업에 당당한 청년 노동자를 잘 표현했다는 평가와 자신의 노동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노동의 가치를 강조한 기획의도가 훌륭하다는 심사평이 있었다.

‘웃잡사, 웃음을 잡는 사람들’ 인피니티88.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허유리 인피니티88 대표

Q. 수상소감

A. 수상을 기대하지 못했다. 영상미나 기술이 부족해 메시지에 집중했다. 우리의 마음과 메시지 전달을 잘 봐줘서 감사했다. 우리 팀은 ASTA IBS라는 회사의 직원으로, 파견 형태로 일하고 있는데 회사에서도 한마음으로 기뻐해줬다. 촬영 과정에서도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좋은 결과를 받아서 행복한 연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Q. ‘난생처음 노동영상제’에 참여하게 된 계기

A. 저는 작가를 꿈꾸고 있고, 같이 일하는 동료 중 영화감독을 꿈꾸는 윤슬기 씨, 개그맨을 꿈꿨던 김영민 씨와 함께 무언가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팀(인피니티 88)을 꾸리게 됐다.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보니 노동과 관련된 일을 해보자는 얘기를 하게 됐는데 마침 공모전 사이트에 ‘난생처음 노동영상제’를 발견해 바로 참여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Q. 영상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A. 수동적으로 억지로 버티듯이 일하는 청년들이 많아 안타까움이 있었다. 우리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일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상을 통해 활력 있게 주도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일하면서 느끼는 행복을 전달하고 싶었다.

청년과 노동, 친해질 수 있을까?

두 달여 간 진행한 ‘난생처음 노동영상제’가 막을 내렸다. 황희경 선전홍보부 차장은 “아직 노동에 대한 과제가 많다고 생각했다”며 “소통을 하는 방법에 대해 한국노총이 해야 할 일이 많은 것 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기존 방식이 아니라 계속해서 뉴미디어의 다양한 방식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며 “새로운 채널이나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한국노총 내부에서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는 만큼 한국노총도 다양한 채널을 만들어 접촉면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황 차장은 “한국노총도 대중화된 미디어와 싸워야 한다”며 “보다 적극적으로 뉴미디어를 운영해 소통하고, 화려함만 추구하기보다는 우리가 왜 제작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 던지면서 방향을 잡아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청년들은 그동안 ‘노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진 적이 별로 없었다. 이번 ‘난생처음 노동영상제’에 참여한 청년들은 낯설고 어렵게만 ‘노동’을 접하게 되면서 사고의 변화를 할 수 있게 됐다. 청년과 노동이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서 그 기회의 장을 넓힐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