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사장님의 살림살이, 나아지려면 아직 멀었다
편의점 사장님의 살림살이, 나아지려면 아직 멀었다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2.08 05:05
  • 수정 2020.02.08 05: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의점업계 자율적 출점제한 … ‘FA편의점’ 유치 경쟁?
‘류현진급’ 편의점만 해당 … 대다수 가맹점주 처지는 ‘그대로’

[리포트] ‘FA편의점’으로 가맹점주 살림살이 나아졌나?

편의점업계에도 ‘스토브리그(Stove League)’의 시즌이 왔다. 스토브리그는 주로 야구에서 구단 간에 선수영입과 트레이드를 진행하는 비경기 시즌을 일컫는 말이다. 편의점업계의 스토브리그가 찾아왔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때를 거슬러 2014년으로 돌아가 보자. 2014년은 편의점 점포 수가 증가세로 전환하는 시점이다. 2014년 1,241개를 시작으로 2015년 3,348개, 2016년 4,614개, 2017년 5,307개가 늘어났다. 통상 5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하는 프랜차이즈업계 관행을 감안하면, 지난해 이후 2022년까지 1만 개가 넘는 계약만료 편의점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운동선수로 따지면 자유계약신분(Free Agent)인 편의점들이 쏟아지는 셈이다. 대한민국 전체 편의점이 4만여 개 정도라는 걸 감안했을 때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편의점업계의 스토브리그는 주요 편의점 가맹본부들이 ‘FA편의점’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을 시작했다는 말이다. 가맹본부의 경쟁이 시작되면서 ‘을’이었던 가맹점주가 ‘갑’의 위치로 올라섰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편의점 사장님들의 살림살이는 정말 나아졌을까?

ⓒ 참여와혁신DB

자율규약으로 FA편의점 몸값 상승?

‘FA편의점’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2018년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편의점업계에서 2018년은 중요한 해였다. 2014년부터 편의점 점포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자 가맹점주는 물론이고 가맹본부까지 과당경쟁에 몸서리를 쳤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2018년 한국의 편의점 점포 수는 4만1,106개였다. 인구 비례로 따졌을 때 ‘편의점 왕국’이라고 불리는 일본보다 약 2배가량 많은 수치다. 거기에 신규구단 ‘이마트24’의 등장도 기존 구단(편의점 가맹본부)을 긴장케 했다.

결국 주요 편의점 가맹본부들은(㈜지에스리테일(GS25), ㈜BGF리테일(CU), ㈜코리아세븐(세븐일레븐), 한국미니스톱㈜(미니스톱), ㈜씨스페이시스(C·Space), ㈜이마트24(이마트24)) 2018년 12월 4일 ‘편의점업계 근거리 출점 자제를 위한 자율규약’을 맺었다. 출점예정지 인근에 경쟁사 편의점이 있는 경우에 출점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실제로 자율규약은 효과가 있었다. 2019년 편의점 출점 수 증가는 약 2,500여개로 전년도 증가율에 비해 절반가량 떨어졌다.

공급이 제한되고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이면 가격은 자연스럽게 오른다. 신규출점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가맹본부는 브랜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계약이 만료된 편의점, 즉 FA편의점을 확보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계약조건이 가맹점주들에게 좀 더 유리하게 조정된다는 것이 ‘FA편의점’ 현상의 요지다.

실제로 많은 언론사에서 FA편의점을 주목했다. 2019년 10월 18일 <한국경제> 기사(<“편의점 간판 바꿔 달면 1억 드려요”…FA 점주 치열한 쟁탈전>)나 2020년 1월 6일 <한겨레> 기사(<편의점 3천 곳 ‘FA’에…편의점 본사 “점주를 잡아라”>)가 그 예다. 기사들은 유치전이 치열해지면서 가맹점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알바생’과 트러블을 해결할 법률서비스 지원이나 운영 지원금 상향, 심지어는 자녀 학자금 지원 등 혜택이 보도되기도 했다.

자율출점 자제에도 경쟁은 계속됐다

하지만 실제 가맹점주의 살림살이는 언론에 알려진 내용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가맹본부의 자율규약으로 신규출점 수는 둔화했지만 현장 가맹점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호준 한국편의점살리기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자율규약의 핵심을 “장사 좀 되려고 하면 옆에 경쟁점이 생겨서 문제였고, 이를 방지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호준 사무국장은 “가맹점주 사이에서 자율규약은 기대는 많이 모았으나 실제로 효과는 별로 없었다. 현장에서는 자율규약이 시행됐는데 왜 자꾸 옆에서 출점을 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며 자율규약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자율규약의 구체적인 내용에는 허점이 많다. 우선 법적인 강제력이 없다. 가맹본부가 반드시 선점해야 한다고 판단한다면 신규편의점을 유치할 수 있다. 또, 자율규약에서 근접 출점의 기준은 담배 소매인 조항에 근거를 둔다. 각 지자체에 따라서 50~100m로 규정된다. 여기서 문제는 반경 거리가 아니라 ‘도보 거리’ 기준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편의점 출입구 위치에 따라 입점 가부가 판단되는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호준 사무국장은 “신규출점 수가 둔화되긴 했다. 하지만 이미 2017~2018년에 편의점이 포화상태에 왔기 때문에 자율규약이 없어도 둔화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며, “자율규약은 이미 포화상태인 편의점 업계에서 가맹본부 간 출혈 경쟁을 막자는 의미가 컸다”고 지적했다.

2019년 5월 8일 유투브 채널 자영업테레비에서 ‘편의점 근접출점 제한 자율규약의 실태’라는 영상을 게시했다. 영상에서 장영진 한국편의점살리기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는 자율규약의 효과가 2019년 들어 떨어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 자영업테레비

FA편의점 효과, “빈익빈 부익부”

또한 ‘FA편의점 현상’도 과장된 부분이 많다. 이호준 사무국장은 가맹점주의 계약 유형을 자세히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편의점은 크게 직영점과 가맹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직영점은 본사에서 직접 운영한다. 임대료가 과도하게 비싸거나 규모가 큰 입지에 들어선다. 그만큼 점포 수가 적다.

편의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건 가맹점이다. 여기서 가맹점은 다시 일반가맹점과 위탁가맹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각은 계약 조건이 다르다. 일반가맹점은 가맹점주가 건물주와 직접 매장 임대 계약을 맺고, 가맹본부와 협의하여 매장을 ‘유치’한 편의점이다. 반면, 위탁가맹점은 가맹본부가 위치 등을 선점해서 건물주와 매장 임대 계약을 맺고, 가맹점주에게는 운영을 ‘위탁’하는 방식의 편의점이다.

위탁가맹점에서도 월세부담과 수익부담 방식을 두고 세부적인 차이가 나기도 한다. 가령 월세를 모두 본사에서 부담하고 수익배분을 적게 가져가거나, 월세를 일정부분 분담하는 대신 수익배분을 많이 가져가는 형식이 있다. 위탁가맹점은 전체 가맹점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이호준 사무국장은 소위 ‘FA 대박’을 치는 편의점은 이미 잘 나가는 편의점에 한정돼 있다고 지적한다. 매출이 아주 높아서 실제 점포를 놓쳤을 때 가맹본부에서 손해를 보는 편의점만 영입 경쟁이 치열하다는 것이다. 위탁가맹점의 경우는 재계약 시즌이 돌아와도 더 나은 조건을 바랄 수 없다. “계속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라는 식”이다.

“저희 매장도 작년 여름에 재계약을 했어요. FA편의점에 혜택을 준다고 하는데, 매출이 진짜 잘 나오는 점포는 가능해요. 그런데 그 경우도 일정 이상은 못 준다는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저도 재계약 때 가맹본부로부터 수익배분(로열티) 2% 이상은 못 주겠다고 제시받았죠. 사실 5년 뒤 수익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최저임금이나 임대료 오르는 걸 봤을 때 최소 4%는 올라야 운영이 가능하다고 봤어요. 그런데 가맹본부에서는 2%이상 줄 수 없다고 했죠. 실제로 현장에서는 달라요.”

노동법의 보호? 아직은 ‘공정한 계약’이 우선

편의점 자율규약이나 FA편의점 현상에도 대다수의 가맹점주들의 열악한 처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정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호 방식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 현실이다.

특히 가맹점 중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위탁가맹점주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될 여지가 크다. 노동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2014년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행한 <프랜차이즈 노동관계 연구-하청노동 연구I>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업계를 ‘점포하청’으로 규정하고 가맹점주를 원청(가맹본부)에 종속돼 있는 특수한 형태의 하청노동자로 인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에 노동자성(사용자성)을 판단하는 ‘지배종속성’ 대신 ‘지시종속성’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명절을 앞두고 자영업자는 자유롭게 휴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가맹점주는 가맹본부의 방침에 따라야 한다. 가맹점주가 운영을 자율적으로 한다고 하나 운영방식에 있어서 가맹본부의 ‘지시’에 불응할 수 없다. ‘지시종속성’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가맹점주는 아직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하기를 머뭇거리고 있다. 홍춘호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자영업자는 피고용인이면서도 고용주이기도 하다. 노동자성도 절반 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고용주의 역할도 있기 때문에 노동법으로 포괄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직 주체의 수준도 스스로를 노동자로 규정지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 가맹점주들은 노동법의 보호보다는 불공정 계약 개선이나 수익구조 투명성 강화 등 ‘공정한 계약’을 더욱 바란다. 이호준 사무국장은 “노동자성이 있다고 하면 맞지만, 가맹점주가 노동자냐 아니냐 하는 건 신중하게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가맹점주가 살려면 누구에게 몫을 나누자고 말할 건가라는 문제죠. 사실 경기가 좋고 물가도 오른다고 하면 누가 고민을 하겠어요? 경제가 계속 침체되는 상황에서 문제를 타개하려면 불공정 거래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그래서 실제로 봤더니 불공정 자체가 없는데도 제조사, 가맹본부, 가맹점주, 건물주 모두 다 힘들다고 하면, 그러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서로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야죠. 그런데 각 이해당사자들이 영업비밀이라고 하니, 그 자체가 밝혀지기 힘들죠.”

사장님들의 ‘인간적인 삶’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다’는 것. 누가 뭐래도 ‘사장님’이라고 불리는 자영업자의 가장 큰 메리트다. 하지만 이호준 사무국장은 이번 설날 명절에 본인의 편의점을 닫을 수 없었다.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은 대다수 자영업자들의 공통된 모습일 것이다. 이호준 사무국장은 가맹점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활동을 이어오면서 ‘소상인으로서 인간다운 삶’이 뭔지 계속 고민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자유롭게 계약하는 주체’도 결국 ‘인간’이다.

“편의점 같은 경우에 가맹계약 자체가 1년 365일 24시간 일해야 한다고 적혀 있잖아요? 그래서 법으로는 따질 수가 없어요. 이를테면 제가 24시간 쉬지 않는 자판기를 샀는데, 갑자기 자판기가 스스로 ‘야간에는 손님도 없는데 전원 스위치를 꺼두자’고 이야기하는 격이죠. 자판기를 구입한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요? 서로 간의 입장차가 있는 거죠. 하지만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서 가맹점주로서, 소상인으로서 인간다운 삶은 무엇이냐. 그런 것들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거죠. 예전에 전태일 열사가 살았을 당시에 노동자들이 12~14시간씩 일했잖아요? 노동자이 투쟁을 통해서 노동법을 쟁취해 왔고요. 가맹점주도 지금 겨우 시작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