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윤의 취식로드] 피, 땀, 소금
[백승윤의 취식로드] 피, 땀, 소금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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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윤의 취식로드] 길 위에서 취재하고, 밥도 먹고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문정동에 법조단지 조성이 한창이던 몇 해 전 여름, 건설현장 잡부로 지낼 때 이야기다.

공사가 한창이던 때, 단지 내 공원 호수 바닥엔 진흙뿐이었다. 어깨에 삽, 손에는 포대뭉치를 든 나와 나이 지긋한 세 사람. 그렇게 네 사람은 호수 바닥으로 내려갔다. 상수도관에서 흘러나온 퇴적물이 발등을 덮을 만큼 쌓여있었다. 그날 우리에겐 삽으로 진흙을 퍼내 포대에 담는 업무가 주어졌다.

여름. 햇빛. 삽질 서너 번에 이마를 타고 땀이 흘렀다. “호수가 아니라 바다를 만들고 있고만” 가장 나이 많은 인부가 이마를 훔치며 말했다. 오전 내내 땀을 쏟으며 네 사람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나는 사람인가 염전인가’ 흙을 담은 포대가 늘어갈수록 우리가 흘린 땀으로 호수 밑바닥에 소금성이 쌓이는 듯했다. 정수리에서 흐른 땀이 양말까지 적셨을 때, ‘뭘 모르던’ 나는 삽을 팽개치고 현장소장에게 갔다. 땀을 식혀줄 그늘막이 필요하다고 말하자, 그는 천일염 한 봉지를 내주었다. 빠져나간 염분을 보충하란 뜻이었다.

현장에선 여름이면 종종 소금을 주곤 한다. 물론 한 여름의 육체노동자에게 소금은 소중하다. 하지만 쉴 시간을, 그늘을, 더 많은 일손을 주지 않고, 절대 쓰러지지는 말라며 쥐어주는 소금에선 정말 짠 내가 난다.

그렇다고 쉬엄쉬엄 하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높은 지대에서 날려 온 흙먼지, 상수도관에서 조금씩 흘러나오는 물과 진흙은 호수를 악취구덩이로 만든다. 오래 두면 민원도 쌓인다. 소장은 일꾼들을 재촉한다. 맘에 안 들면 때려 치고 나가는 게 일용직이라지만, 현장에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사람들에게 그럴 용기는 별로 없다. 몇 개월 용돈 벌러 온 나도 눈치가 보이는데, 생계를 위해 땀 흘리는 저들이야 오죽할까. 뙤약볕이 버거워도 까탈스런 소장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다시 소금성을 쌓아갔다.

죽은 노동자들 소식이 들릴 때, 현장이 궁금해지는 건 그래서다. 여전히 많은 일터에는 줄 하나에 의지한 고소작업자, 홀로 보수작업을 하는 기술자가 있다. 안전보다 비용을 중시하는 관행은 남겨두고서 노동자의 부주의만 탓할 순 없다. 끝내 피 흘리기 전까지 그들은 얼마나 많은 소금성을 쌓았을까. 호숫가의 우리들처럼, 도시 곳곳에는 누군가의 입맛을 맞추려던 일꾼들의 애꿎은 땀이 스며있다.

이제 진흙을 퍼낸 호수엔 물이 채워져 있고, 법조단지 건물엔 사람들이 들어차 있다. 잡부들이 떠난 호숫가엔 또 다른 일꾼들이 모인다. 점심시간이 되면 법원, 검찰청, 준법지원센터에서 나온 사람들이 호숫가 벤치에서 휴식을 취한다. 호숫가의 바람이 업무로 쌓인 그들의 피로를 잠깐 식혀 주리라. 헌데 그들은 알고 있을까. 공원 속 호수에 바다보다 짠 소금이 쌓여있단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