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광모의 노동일기] 마스크 아래의 얼굴
[손광모의 노동일기] 마스크 아래의 얼굴
  • 손광모 기자
  • 승인 2020.02.17 14:10
  • 수정 2020.02.17 14: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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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노동을 글로 적습니다. 노동이 글이 되는 순간 노동자의 삶은 충만해진다고 믿습니다. 당신의 노동도 글로 담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살고 싶습니다.
손광모 기자 gmson@laborplus.co.kr

요즘 길에서 사람들의 얼굴, 혹은 표정을 보기가 어렵다. 마스크 위로 둥둥 경계하는 눈동자만 보일 뿐이다. 가벼운 기침도 조심스럽다. 최근 새해가 밝고서도 한동안 얼굴을 보지 못한 친구를 만났다. 반갑게 들뜬 마음에 친구의 손을 덥석 잡으려 했지만, 웬일인지 친구는 손보다 팔꿈치를 먼저 내밀었다. 얼굴을 드러내고 악수하는 일이 가장 보편적으로 인간의 호의를 표현하는 일이었건만, 요 몇 달간 급격한 변화가 초래된 것이었다.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가 만든 어색한 풍경이었다.

얼굴을 드러내고 사람을 대하는 것보다 꼭꼭 숨기는 게 안심이 되는 특이한 상황에 왔다. 코로나19는 손부터 시선 그리고 점차 생각까지 사람들을 홀로 떼어놨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해외에서 동양인 인종차별 사례가 이따금씩 들려온다. 발병지인 중국과 붙어있는 모든 국가들이 위험한 것이 아니냐는 서양인의 의문은 참으로 그럴듯하면서도 투박하다. 의심을 받게 되는 당사자로서는 너무나 부당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우리들도 모든 중국인을 경계한다. 서양인들을 무지몽매하다고 마냥 비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반대로 코로나19는 사람들이 어디까지나 ‘지구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드러냈다. 지난 7일 현대자동차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공장이 1~2주 휴업했다. 다른 완성차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부품을 수급하지 못했던 이유였다. 한국인이 현대차를 가지고 한국의 도로를 달리기 위해서는 중국인이 생산한 자동차 부품이 필요했다.

새삼스레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상품을 소비하며 살아가는 한, 타인의 노동 없이는 살 수 없다. 상품에 서려있는 타인의 ‘얼굴’을 기억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조지 오웰은 영국 북부 탄광마을을 돌아다니며, 편하게 소비하는 모든 상품들의 이면에 광부들의 수고스러운 노동인 석탄이 있다고 적었다. 비록 누군가가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을 한다고 해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수십 미터 땅 아래에서 석탄을 캐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우리의 생활을 유지시키기 위해 누군가는 특히 더 수고스러운 노동을 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상품들이 컨베이어 벨트에서 나온다. 누군가는 컨베이어 앞에서 2교대 내지는 3교대씩 노동을 한다. 편한 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산된 상품 아래에는 높은 확률로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그만큼 중국인들에게 우리의 생활이 일정부분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일 게다.

그렇기에 ‘얼굴’을 가리면서 코로나19를 대비하는 일은 우려스럽다. 바이러스에는 얼굴이 없다. 사람은 바이러스가 아니다. 중국인 또한 바이러스가 아니다. 그러니 마스크를 써도 마스크 아래 얼굴은 잊지 말자. 한국에서 퇴소하는 우한 교민에게 보내는 따뜻한 말을 생각하자. 우리가 마스크를 쓰는 건 누군가의 얼굴을 지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손잡고 살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