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윤의 취식로드] 끝내 쓰지 못한 기사의 주인공, 간호사 A
[백승윤의 취식로드] 끝내 쓰지 못한 기사의 주인공, 간호사 A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0.03.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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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윤의 취식로드] 길 위에서 취재하고, 밥도 먹고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기자님, 그런데 이름은 밝히지 않았으면 해요."

‎3‎월 ‎13‎일 ‎금요일(!) ‏‎오후 4시경. 수화기 너머 취재원이 말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느 병원의 간호사 A였다. 일선에서 코로나19 수습에 힘쓰는 의료진에 대한 기사를 써보고자 접촉한 취재원이었다. A의 한마디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며칠을 준비한 기사 하나가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밀려왔다.

기자에게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는 건 신상 공개가 부담스럽기 때문이었다. A의 업무 특성상 이름 석 자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신상을 감출 수는 없었다. 업무, 일과, 사건을 기사에 나열하면 그의 근무지와 이름도 줄줄이 매달린 고구마 줄기처럼 딸려 나올 터였다. 직장동료는 당연하고, 그의 SNS 팔로워만 돼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업무, 일과, 사건 중 어느 하나라도 빼먹을 순 없는 기사였다. 결국, '간호사 OOO 씨의 30일'은 불발로 그쳤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 취재에 응했던 이틀 전만 해도, 신상이 공개되는 것을 개의치 않던 A였다. 그를 처음 소개해준 사람도 A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걸 꺼리지 않을 인물이라 했다. 그의 부정을 밝히려는 취재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욕심이 이해심을 앞섰다. 코로나19로 ‘의료계 노동자의 실상’에 집중하는 보도 시류에 나도 기사 하나 올려보고 싶었다. 그 욕심을 채우기에 A는 꼭 알맞은 취재원이었다.

A는 "직장을 옮긴 지 며칠 안 돼서"라고 이유를 말했다. 돌이켜보면 그것만으로도 이유는 충분했다. 드러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젠가 내 이름 석 자가 인터넷에 처음으로 검색되던 날에는 귓바퀴가 뜨끈해졌던 경험도 있다. 그럼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볼 수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며 대화를 이어가던 중, A가 신상 공개를 꺼리는 속사정을 알게 됐다. 

"부모님은 모르세요. 코로나19 방역 업무에 투입된 걸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어요. 못했어요. 걱정을 너무 많이 하셨거든요. 평소와 같은 일을 하는 줄로 아세요."

직장을 옮기고, 새로운 직장으로 옮긴지 며칠 안 돼 터져버린 코로나19 사태에 A는 자신의 근황을 숨겨야만 했다. 인터뷰를 준비했던 이틀간, 가면을 쓰고 있던 자신의 처지가 불현듯 떠올랐을 것이다. A의 한마디에 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기사 하나만 생각하다 헤아리지 못한 현장 노동자의 고충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기사는 쓰지 못했고, 미련도 사라졌지만, A가 들려준 말 한 단락은 전해도 괜찮을 듯싶다.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했을 2월에는, 현장에 있는 모두가 우왕좌왕했어요. 신종 바이러스에 관한 의학 정보가 부족해서 검사를 시행하고 환자를 돌보는 게 두려웠어요. 감염자와 의심자, 일반 환자의 동선, 병실 배치, 업무분담도 서둘러서 조절해야 했어요. 치료를 받지 못해 화를 내는 일반 환자들도 종종, 아니 많았죠. 경력 많은 수간호사님도 쉽지 않아 보였어요. 갑갑한 방호복에 숨이 차서 실신하는 동료도 있었고요. 다들 투덜대며 의견을 나눴죠.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고, 경험들을 모으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아졌어요. 우리는 그렇게 조금씩 안정을 되찾아가는 중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