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버스는 타는데… 안전한가요?”
“어쩔 수 없이 버스는 타는데… 안전한가요?”
  • 최은혜 기자
  • 승인 2020.05.19 00:00
  • 수정 2020.05.20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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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확산으로 매회 버스 방역 및 소독
고등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방역 지원 나선 사람들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서울 시내버스 방역 업무

‘노동’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는 단편적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 그리고 그 속도에 맞춰 일하는 노동자. 노동을 이런 단편적인 이미지로만 볼 수 있을까요? 노동하는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하는 ‘우리’에 주목해보려고 합니다. 듣고 싶은 혹은 들려주고 싶은 ‘우리’의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지난 1월 20일,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처음 발생했다. 설 명절을 지나고 코로나19가 급격하게 확산하자, 우리 사회도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재택근무가 확산됐고 출퇴근시차제를 적용하는 기업이 늘어났다. 환경을 위해 대중교통 이용을 장려하던 목소리는 자차 이용을 권유하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버스에 사람이 없다. 지난 2월 1주부터 4월 2주까지 수송 인원은 6억 4,162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5.42%에 해당한다. 코로나19 감염 공포 때문이다.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 버스를 이용해야만 하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그들은 최대한 버스 기물 및 타인과의 접촉을 줄인다.

시민의 발, 버스는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할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4월 3일, 서울시 성북구에 위치한 도원교통으로 향했다.

도원교통 외경.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도원교통 외경.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3월부터 매회 방역 및 소독
코로나19로 단기 인력충원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면서 많은 사업장에서 인력을 줄이기 위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연차 사용을 강요하거나 무급휴직, 권고사직 등이 성행한다. 이에 민주노총은 코로나19 제보센터를, 한국노총은 코로나19 고용위기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도원교통은 단기적이지만 인력을 충원했다. 지난 3월부터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로 돌아오는 모든 버스에 매회 방역 및 소독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는 하루에 한 번 정도 버스를 소독했다. 이는 오롯이 청소노동자의 몫이었다. 매일 수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버스의 청결을 담당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청소노동자에게만 맡긴 것은 아니다. 자신이 운행하는 버스에 각별한 애정이 있는 운수노동자와 사무직노동자 역시 청소노동자의 손이 닿지 못할 때 버스 소독에 동참했다.

박용덕 도원교통 인사·기획팀장은 “2월 초부터 청소노동자와 도원교통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버스 소독업무를 맡아서 했다”며 “3월, 시에서 매회 운행 종료 시 버스 방역 및 소독 진행 매뉴얼이 내려왔고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에서 물품 및 인건비 지원 공문이 내려오면서 새롭게 인력을 채용했다”고 밝혔다.

채용한 인력은 지난 3월 9일부터 출근했다. 도원교통이 운행하는 버스에만 구인공고를 붙였는데도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박용덕 팀장은 구인공고가 붙었던 당시 “정말 온종일 전화만 받았다”고 표현했다. 물론 여전히 문의가 이어진다. 현재는 구인이 완료돼 문의가 오면 예비명단에 적어둔다.

도원교통은 3개의 차고지에 각 5명씩 구인했다. 평일에 3명, 주말에 2명이 출근한다. 평일의 경우, 오전에는 방역 담당으로 한 명만 출근하는데,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기존에 일하던 청소노동자가 소독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방역업무란 펌프 등으로 소독약품을 버스 내부에 살포하는 것을 의미하고 소독업무란 소독약품을 걸레에 묻혀 손잡이나 봉 등 사람들의 손이 많이 닿는 곳을 닦아주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
일하면서 힘든 것 역시 제각각

오후 2시 30분, 바삐 움직이며 버스를 소독하는 도원교통의 청소노동자 손미진(가명) 씨를 만났다. 1년 넘게 도원교통에서 일했다는 미진 씨는 오전 6시 30분에 출근해 하루를 시작한다. 오전 6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 먹고 준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을 꼬박 각 버스를 돌아다닌다. 정릉차고지에만 64대의 버스. 미진 씨의 손을 거치지 않은 버스는 없다.

손미진(가명) 씨가 버스 구석구석 소독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손미진(가명) 씨가 버스 구석구석 소독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버스가 운행을 마치고 차고지로 돌아오면, 미진 씨는 바쁘게 버스에 오른다. 바구니 가득 소독용품이 들어있다. 차고지로 돌아오는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다시 운행을 나가는 시간을 정해져 있기에 미진 씨의 손은 바쁘기만 하다. 미진 씨는 승객의 손이 닿을 법한 건 모두 소독약품으로 닦는다. 버스 손잡이, 좌석에 있는 손잡이, 봉, 하차 벨, 카드단말기, 창문 손잡이를 비롯해 저상버스 하차 문의 체인까지도 닦는다. 누군가의 손이 닿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운 점이 없는지 묻자 “기존에 하던 청소업무에서 버스 소독업무가 추가돼 일이 많아진 점이 힘들다”고 토로했다. 도원교통은 버스 내부의 청결함을 강조한다. 코로나19로 내부 청결을 무시할 수는 없기에 청소업무와 소독업무를 짧은 시간 내에 마치는 것은 50대의 미진 씨에게는 약간 벅찬 일인 것이다. 그런데도 미진 씨는 “일이 많아졌어도 승객의 안전을 위해 신경 써서 버스 소독을 열심히 하고 있다”며 “안심하고 버스를 이용해줬으면 좋겠다”는 당부의 말을 전하고는 퇴근 준비를 위해 자리를 옮겼다.

박용덕 팀장은 “버스 소독 및 방역을 위해 추가로 구인한 인력은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다”며 “개학이 연기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도 있고 주말에는 자영업자나 직장인도 이 일을 하겠다고 연락이 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현재 일하는 노동자 중에는 개업하기로 한 식당이 코로나19로 개업이 미뤄지면서 남는 시간 생계를 위해 이 일에 뛰어든 셰프도 있다고 했다.

박재현(가명) 씨는 갓 대학을 졸업한 취업준비생으로, 우연히 버스에서 구인공고를 보고 버스 방역업무에 지원했다. 재현 씨는 3월 10일 지원해 2주를 기다려 23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오후 1시에 출근한 재현 씨는 방역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재현 씨는 오후 조로 오후 1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일한다. 오전 조는 벌써 퇴근한 상황이었다.

박재현(가명) 씨가 버스 바닥에 약품을 뿌리며 방역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박재현(가명) 씨가 버스 바닥에 약품을 뿌리며 방역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이연우 기자 yulee@laborplus.co.kr

주로 의자 아래 발이 닿는 부분과 구석을 신경 쓰며 약품을 뿌린다는 재현 씨는 5L가 들어가는 약통에 4L 정도의 약을 채워 들고 다녔다. 약통을 손으로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꽉 채우면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4L 정도 채우면 버스 4~5대를 방역할 수 있다. 방역업무를 하면서 힘든 점이 없는지 물었더니, 재현 씨는 “약통을 들고 버스를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힘들다”며 “버스 실내가 좁은 것도 불편한 것 중 하나”라고 답했다. 재현 씨는 약통에 약이 떨어졌다며 급하게 소독약을 채우러 사무실로 이동했다.

미진 씨가 퇴근한 이후, 오후 3시부터 밤 11시까지 소독업무를 담당하는 전진수(가명) 씨는 대학로에서 활약하는 연출가 겸 배우다. 진수 씨는 코로나19로 준비하던 공연들이 연기되면서 생계를 위해 버스 소독업무를 시작했다. 공연 연기가 결정된 날, 올라 탄 버스에 마침 구인공고가 붙어 있어 연락했는데, 그렇게 첫 출근한 날이 3월 9일이다. 진수 씨는 도원교통이 구인한 첫날부터 근무한 유일한 노동자였다.

진수 씨는 “창작작업을 하던 사람이라 단순작업을 하려니까 짜증이 나기도 하고 비참해지는 기분도 들고 그렇다”며 “일에 경중이 있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일하다 보면 자신과 싸움을 해야 할 때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이어 4월 8일 이후에는 연습을 재개하기로 해 일을 그만둔다고 밝히기도 했다.

취재를 마치고 도원교통에서 나왔다. 사무실 건너편, 기사 휴게실의 작은 창 너머로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휴게실 밖에서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던 운수노동자 두세 명은 기자를 보고는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휴게실에는 잘 안 들어간다”며 “매일 소독은 하지만 창문도 작고 밀폐된 공간이라서 요즘은 휴게실 밖이나 건물 옥상 등에서 흩어져서 쉰다”고 말했다. 버스를 둘러싼 노동자들의 작은 수고가 모여 오늘도 버스는 ‘코로나19’라는 태풍에도 안전운행 중이다.